식육과 형벌의 세계를 견디는 날들

 

 

조동범

 

 


1. 실로Shiloh, 팔레스타인 그리고 상징들

 

팔레스타인의 옛 도시인 실로Shiloh의 의미는 ‘평화를 주는 자’, ‘의로운 메시아’이다. 실로는 유대인 정착촌이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협약을 통해 실로를 비롯한 유대인 정착촌을 철거하기로 했다. 실로는 불행한 과거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이재훈의 실로는 아픈 역사와 공간을 모티프로 삼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보편적인 상징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정치성과 무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치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도 않는다. 시인은 실로의 아픔과 상처의 이미지를 보편적인 감각으로 전환시킨다.
일단 실로의 의미를 파악한 독자의 마음은 팔레스타인의 옛 도시인 실로에 머물게 되지만 시를 통해 받아들이게 되는 세계는 실로를 포함한 모든 상처와 아픔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작품 안에 펼쳐진 세계는 실로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토로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로의 역사적 의미가 완전히 무화된 것은 아니다. 실로는 제목만으로도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상처와 아픔에 절심함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처와 아픔의 절실함을 드러내는 시의 제목은 작품과 결합하여 상징의 깊이와 절실함을 획득한다.

 

스스로 빛을 내는 작은 길. 사연 깃든 머리핀이 떨어진 길. 얼굴에 분칠한 채 누군가를 배웅하는 길. 홀로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은 속되다. 제 몸을 고이 닦고 닦아 원색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동물들. 깃털처럼 가벼운 스케치의 존재들. 앉아야 할 자리를 잃고 떠다니는 먼지 같은 마음들. 여러 갈래의 작은 길들이 가득하네. 흐드러진 꽃들이 마음에 툭, 쌓이는 길. 꽃이 혀를 내밀어 길 위를 맛보는 시간. 나는 세상에서 약속한 일들을 생각하네. 밤의 기나긴 뜨락에서 마주친 불빛 한 점. 나방을 혐오하지 마라, 그에겐 불빛이 모든 이유다. 저 길도 그럴까. 어둠 속이 모든 이유라고. 언제부터인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이 좋았네. 언제부터인가 정돈되지 않는 것들만 날 감동시키네. 여러 갈래의 좁은 길이 날 끌어당기네.
― 이재훈, 「실로Shiloh」 전문

 

그곳에 “작은 길”이 있다. 그 길은 “사연이 깃든 머리핀이 떨어진 길”이며 “얼굴에 분칠한 채 누군가를 배웅하는 길”이다. 「실로」의 공간은 “길”이며 그 길은 도달하고 싶은 곳과 연결되어 있다. 시인은 “여러 갈래의 작은 길”이 “흐드러진 꽃들이 마음에 툭, 쌓이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실로를 향해 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호명한 길은 실로로 향해 있는 실제의 길이 아니다. 시인은 실로라는 제목 아래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길을 드러냄으로써 길이 환기하는 아름답고 애틋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실로」는 이러한 양자의 감정 상태에 놓임으로써 이율배반이 전달하는 시적 감흥과 긴장을 극대화한다.
또한 실로로 향하는 공간인 길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홀로 자리를 깔고 앉아” 있으며,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럽게 흐느껴야 하는 격한 감정보다 관조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실로의 공간인 길이 비극을 환기하는 길이 아닌 것처럼 길 위의 사람들 역시 세계를 연민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조적 태도는 길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실로로 대표될 수 있는 비극적 세계까지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_ <시사사>, 2012년 3~4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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