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리얼리티

산문 2012. 7. 5. 17:55

명왕성 리얼리티

 

 

이재훈

 

 

 

1.
이 짧은 글은 시에 대한 해설보다는 시 속에 내재된 내 삶의 몇 가지 편린들이다.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에는 삶의 여러 사연들이 녹아 있는 시편들이 많다.

 

 

파릇파릇한 우주에
내 몸을 던지고 싶다.
성난 가시와 붉은 피부를 가진
장미로 태어나고 싶다.
- <비비디 바비디 부> 부분

 

 

늘 이런 식이다. 거대한 우주와 싸우고 싶은 객기. 언제부터 나는 우주의 변신술을 탐했을까. 아마도 이 땅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닐까. “누구의 소유도 아닌 몸”(<비상>)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일까. 시인이라는 자의식 때문에 괴로웠다. 어디를 가든 ‘나는 시인이지’라는 다소 과장된 자만이 날 옭아맸다. 내 삶은 그저 그런, 퍽퍽한 일상을 겨우 살아내는 시간들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이었다가 일용근로자였다가 백수건달이었다가 독학자”(<비상>)가 되는 일상이었다. 그러한 일상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보는 밤의 시간들을 즐겼다. 나는 밤을 사랑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밤, 공중이 없는 하늘을 준 밤, 사방이 꽃천지를 만들어 준 밤. 불면의 밤들. 숙취의 밤들.
그런 일상 가운데 한 줌 먼지로 돌아갈 내 영혼의 지난함을 생각했다. 오죽하면 “소멸이 내 먹는 밥”이라고 했을까.(<연금술사의 꿈>)

 

 

나는 육십억 분의 일일 뿐. 페트병에 가득 담긴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맥주 캔. 먹다 남긴 컵라면. 참기 힘든 소음. 역겨운 화장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로부터.

계곡의 하얀 물보라를 헤치고, 난파된 얼음 위에 올라서 저물어 가는 사람들의 삶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면 아주 쓸쓸하겠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아무도 없이 고독하겠다.
- <매일 출근하는 폐인> 부분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매일 출근을 했다. 2호선은 순환선이었다. 끝없이 돌고 도는 내 삶의 주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지옥철’ 2호선에서 더 절실한 존재의 간절함을 보았다. “아름다운 눈을 가진 인간들”(<미궁의 열두 번째 통로>)이라는 싯귀는 지하철에서 건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전철이 한강 위를 지날 때면 강을 바라본다. 지하에서 강물 위로 나와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을 보는 눈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매일 출근하는 폐인으로 살면서, 2호선의 전기문명적 실존을 겪으면서 지하철 무가지 신문에서 ‘명왕성 되다’라는 단어를 만났다. 기사를 찢어 주머니에 넣고, 혼자 중얼거리며 흐뭇해하던 생각이 난다. 명왕성 되다, 명왕성 되다. 참 멋진 말이야. ‘명왕성 되다’는 알려진대로 태양계 행성 지위 박탈을 계기로 ‘격하하다’ ‘추락하다’라는 의미가 추가된 단어 ‘pluto’의 과거분사형 ‘Plutoed’이다. 나는 스스로 명왕성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애걸복걸 자본문명에 의탁하거나, 모른체하면서 생뚱맞게 살아가거나 모두 명왕성 될 테니까.
나의 변신술은 더 남달라졌다. “때론 동물이었다가 때론 식물이고/ 때론 명징했다가 때론 무질서합니다./ 나 또한 상징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인간에게 욕망은 살아가게끔 하는 동력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기력에 빠져 지내면서, 제발 내게 찾아와라, 그 어떤 욕망이여, 라고 되뇌었다. 원초적 욕망 이외의 것들이 내겐 필요했다. 그러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 친구가 이 세상을 등졌다.

 

 

강에 뼛가루를 뿌렸다지. 하얀색 행사용 면장갑을 끼고 만졌지. 뜨거운 그대의 뼛가루. 숨소리가 들린다지. 뼛가루끼리 서로 얽혀 스삭스삭 소리 들린다지. 형, 형아. 아직 따뜻한 형. 그대의 동생이 울다가 나를 보며 웃는다지. 형님, 만져보세요. 아직 형이 따뜻해요. 마지막은 흔적이 이유라지. 귀에 그대의 목소리가 흘러내린다지. 그대 안에 잠든 열망을 찢기로 했다지. 아아 우리는 정탐꾼이었지. 세상을 향해 깃발을 들기로 했는데. 이 애매한 고통이 무언가를 이제 알겠는데. 비가 많이 내린 날. 어머니의 물에서 나온 그대. 비와 함께 물로 가다, 물속에 묻혔다지. 그 물길이 통하는 곳에 햇살이 슬쩍 몸을 뉘였다지.
- <대황하 4> 전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생각했다. 물에서 나와 물로 간 친구를 생각했다. 십년 전 들었던 쿠스코의 음악을 우연히 다시 들었고, 대황화라는 곡을 다시 들었다. 그때부터 물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꿈틀댔다. 대황하 연작은 그때부터 10편 이상이 씌어졌다. 누런 황톳물을 통해 나는 무엇을 간절히 바랐던 것일까. 물과 어머니, 시간, 존재, 구원, 그리고 비상. 물의 이미지를 통해 오를 수 있는 상징의 첨탑까지 오르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니던 “소음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땅”(<新林洞>) 신림에서 월곡으로 이사왔다. 이제는 6호선을 타고 다닌다.

 

 

나는 근원을 바랐다.
기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어둠이 안겨주는 거대한 정적을,
위대한 침묵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상처받은 한 친구를 생각했고
갚아야 할 빚의 액수를 생각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바쁜 거리의 일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산책길엔 언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길목과 길목이 혀를 내밀어
내 몸을 떠받치고 있을 뿐.
타인의 인격을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었다.
장 그르니에가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빛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환호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는,
심장을 꺼내 거리에 내던지고 싶었다.
심장이 몸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은,
그 짧은 시간만큼은 황홀하겠지.
언덕이 있는 곳은 월곡(月谷),
달빛이 있는 골짜기다.
언덕을 오르고
또 한 언덕을 오르면
마치 기적처럼 달빛에 닿는,
존재의 비밀을 한순간에 깨칠
그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산타크루즈를 오르며 쬔
그 햇살의 순간처럼.
- <월곡 그리고 산타크루즈> 부분

 

 

월곡으로 이사온 뒤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월곡은 번화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네온사인도 호객꾼도 없었다. 내게 월곡은 장 그르니에가 오르던 아프리카의 산타쿠르즈 언덕과도 같다. 언덕을 오르고, 또 언덕을 오르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당도한다. 그토록 원망했던 “나의 메디나,/ 시인들의 공화국” 서울. 이제 이 땅과 명왕성의 그 긴 침묵을 깨트려야 할 때이다.
아직 십 분의 일도 말을 못했는데. 명왕성 리얼리티는 아직 멀었는데, 원고량은 이미 넘쳐버렸다. 늘 이런 식이다. 아껴두련다. 다음 회 이어지는 리얼리티를 위해.

 

_ <시에>, 2011년 가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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