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弔詞)


낙타의 시인 김충규.
당신은 낙타의 짐을 홀로 지고 몽상의 숲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순백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모두 당신의 고통과 삶의 무게와 슬픔에 적잖이 놀랐고, 그 모든 통각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당신의 시를 보며, 뛰어난 시인이 출현했다고 귓속말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시 밑에 적혀 있는 당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우리들 모두 당신보다 당신의 시를 먼저 만났을 겁니다.
당신은 태어나자마자 얻은 흉터와 같은 언어로 뜨거운 마음을 잠시 식혔겠지만, 당신이 시단에 제출한 언어는 저 막막한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고독한 단독자의 발자국 같았습니다.
당신이 온몸으로 발열하여 새긴 오감의 언어들을 이제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깝고, 너무도 원통하고,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더 오래오래 계셔야 할 분인데, 왜 이리 서둘러 저 먼 길을 가셨냐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니 이 참담한 울분을 이루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마지막까지 오로지 시였으며, 시인이었고, 시인으로 남았습니다.
몽상의 숲에서 거둬들인 당신의 마지막 말들은 온통 시 얘기뿐이었습니다. 완전한 시, 완벽한 시라는 불가능을 향해 늘 온몸을 불살랐던 당신의 열정을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할 겁니다. 당신의 뜨거운 말이 우리의 가슴으로 밀려들면 축축한 물의 언어가 된다는 신기한 체험을 자꾸만 곱씹어봅니다. 잊지 않으렵니다. 당신의 시와 살냄새 풀풀 풍기는 당신의 문장들을.
당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늘 자상하고, 따뜻한 시인이었습니다. 늘 아내와 자식들을 걱정했던 성실한 가장이었으며, 친구들에게는 의리있는 사내였고, 자신의 시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엄격한 시인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저희들이 부끄러운 밤입니다.
남아 있는 저희들이 서러운 밤입니다.
당신은 끝내 시인이었다는,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가장 소중한 추억을 남긴 채
저 먼 나라로 몸을 뉘이셨습니다.
이제 행복한 시만 쓰며
부디,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소서.

남아 있는 시인들의 말을 대신 받아
이재훈 올림.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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