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세계> 작품상 심사를 했다. <시와세계> 사무실에서.

시와세계 발행인 송준영 선생님과 김영남 선생님과 함께.

논의 끝에 김미정 시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래는 심사평이다.

 


 

본질과 현상의 해동점

 


이재훈

 

 


시와세계 작품상은 한 해 <시와세계>에 발표한 등단 만 5년에서 10년 사이 시인들의 시적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본심에 오른 10명의 작품들을 일독하니 모두 만만치 않은 시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각각 3~4명의 시인들을 천거하였고 이들 중에서 다수의 득표를 한 김미정, 최금진의 작품을 놓고 세세한 토의를 이어갔다. 나는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 최금진, 박장호, 유금옥, 김미정의 작품을 추천하였다.
최금진은 일반의 서정과 다른 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 그의 시에는 문명과 맞서는 현대인의 자아가 치열하게 그려진다. 자못 음울하고 비관적인 그의 세계에 대한 태도는 시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시인은 “나도 늙으면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아프리카에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현실의 시적 자아는 스스로와 맹렬하게 싸운다. “미친놈, 미친놈, 몽둥이를 들고 내가 나를 쫓아가며” “나는 가시에 찔리고 긁히며 숨는 산짐승”이라고 고백한다.(「송전탑 옆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늙어가는 첫사랑 애인에 대한 만연체의 전언들은 애잔함을 주기도 한다.
박장호는 독특한 주체의 언술을 가지고 있다. 젊은 감각이 빚어내는 환(幻)의 세계는 이 세계를 잊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열망하는 매개체로 존재한다. 그는 「허공의 개미집」에서 “나에겐 환각이 필요합니다”고 말하는데, 박장호의 시를 여러 편 읽다보면 그의 환각이 절박한 실존의 차원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환의 감각을 예리하게 견지해온 그의 작품에 앞으로 더 많은 시선이 가야함을 느낀다.
유금옥의 시는 성찰의 힘이 돋보였다. “우두커니 서서 새소리를 듣는 일”로 대표되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성실하게 돌본다. 그러한 시적 자아의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이가 자연스럽게 시와 동화됨을 느낀다. “새소리만 종이배에 태우고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일”(「나무와 나의 공통점」)이라거나 “나는 주머니 속에 새소리만 가득 넣고/아지랑이를 타려 해”(「매화역」)에 이르면 밑줄을 그어놓고 나도 함께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힘은 시인에게 큰 덕목이다.
김미정은 시의 언어가 어떠한 방식으로 운용될 수 있는지를 여러 차원에서 구사하고 있었다. 초기 작품들에 비해 시적 스타일이 많이 바뀐 점도 눈에 띄었다. 김미정의 시는 언어가 환기하는 방법론을 깨치고 스스로의 각성을 통해 시적 갱신을 이루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 「투명한 대화」는 대화와 소통의 의미를 유리라는 매개물을 통해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미지를 통해 제목의 상징성을 예리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드와 아이스크림」은 하드라는 시적 대상물을 통해 본질과 현상이라는 시적 인식을 이끌어내는 힘이 돋보였다. 딱딱한 하드가 녹는 시간 사이에 주체와 타자의 소통이 개입한다. 서로 손을 잡는 섬세한 행위 속에 바람의 본질을 깨우치고, 이를 하드와 연결시키고 있다. 하드와 아이스크림, 손가락과 태양, 모래와 바람의 이미지들이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또다른 의미를 발산하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앞으로의 작품들이 더 기대된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_ <시와세계> 2012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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