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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8 송기한_ 우주를 건너는 힘으로서의 서정 정신
 언어를 비집고 나오는 힘의 실체 
 

깨진 기왓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그 속에서 비닐에 덮여 자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콧대와 턱이 뿌연 비닐과 뒤엉켜, 툭 건드리면 바삭 부서질 것 같다. 팔딱팔딱, 손가락 사이로 심장 소리가 뛰어 올랐다. 모든 소리들이 긴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탔다. 녹색의 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이 반짝였다.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길을 물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보랏빛 옷만 남겼다. 깊은 숲길에 안개가 뿌옇고, 여인은 안개를 덮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 스윽.
- 이재훈,  [동경(銅鏡)], 문학사상 2007년 7월호

위의 시는 무의식과 의식이 뒤엉켜 강한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단일한 의식의 서정적 언표로 이루어지는 대신 충동적 상상력이 돌발적 이미지들의 연쇄를 일으키는 이 작품은 일견 초현실주의적이고 해체적인 시적 의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시에서 의미의 일관성을 읽어 내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시에서 우리는 대개 시적 의미와 형태의 파괴를 이루어 낸 의도와 동력에 관심의 초점을 두기 마련이다. 초현실주의와 해체시가 무의식적 충동에 근거를 두고 일상적 규범과 질서의 파괴 및 일탈을 겨냥한다는 해석은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된다. 위의 시 역시 이러한 해석의 자장 안에 충분히 놓일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하다면 위의 시는 특정 시기에 우리가 무수히 보아 왔던 모던적인 혹은 포스트 모던적 실험시의 범위 안에 고스란히 포섭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간취되는 상상력의 방향은 단지 파괴와 해체에 그 지향성을 두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깨진 기왓장’, 즉 ‘동경’에서 연상된 ‘여인’에 대한 상상, ‘여인’의 ‘팔딱팔딱 뛰어 오르는’ ‘심장 소리’에의 귀 기울임과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이라는 고백, 그리고 시적 화자를 에워싸는 미세하고 두터운 분위기에 대한 묘사는 시인의 상상력에 일정한 공간성과 방향성이 있음을 감지케 하는 것이다. ‘꿈’과 ‘심장’, ‘울음’, ‘눈동자’ 등은 모두 생명력에 대한 상징물들로서 ‘여인을 덮고 있는 비닐’, ‘안개’와 같은 주변을 내리덮고 있는 암울한 공간적 실체들과 서로 대립을 이루고 있거니와 전자는 후자의 억압적 환경에 저항하여 자아의 생명에의 의지를 보존케 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생명체로 하여금 숨조차 쉴 수 없게 하는 주변의 어둡고 무거운 공기는 ‘심장의 팔딱’거림, ‘꿈’꾸는 행위, ‘수많은 논동자’의 헤매임, 상실로 인한 ‘울음’ 등의 생동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들에 의해 찢기고 소멸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상의 스토리는 이 시의 충동적 에네르기가 파괴와 해체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과 생명에로 정향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곧 시인은 초현실주의적이고 해체적인 기교시를 쓰고자 한 것이 아니라 숨 막히는 환경에 대한 공포와 그것으로부터의 초극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숨도 못 쉴 만큼 생명체를 덮어 누르는 그 공포스런 환경이란 ‘동경’에서 발견된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의 긴 시간성와 ‘깨진 파편들이 던져져 반짝’거리는 ‘사방’,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형상화하는 공간성으로 확정된다. 그 환경은 수천 년과 천지 사방에 걸치는 시공간인 바, 그것에서 우리는 인간을 짓누르는 우주적 너비의 무게를 짐작하게 된다. 인간의 억압과 숨 막힘, 그것은 단지 하나의 물질이나 선명한 실체가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전우주적인 규모로 미지의 존재들이 형성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규모와 무게의 억압을 시인은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이기기 위한 힘을 강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그 힘은 ‘심장’과 ‘꿈’ 등으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이들은 생명성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총체적 의지와 노력을 의미한다.

이로써 우리는 시인이 위치해 있는 지점을 이해하게 된다. 시인은 비단 기교적이고 사조적 측면에서 시를 쓰고 있지 않다. 그는 의식이 스스로 구획하는 한정된 세계에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획된 경계가 없는 지대, 무한한 지대, 곧 우주적 지대에서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서 우주를 느끼며 우주에 대해 말하고 우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그때 그 우주란 결코 순결함과 온화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간 묵은 무거움과 억압을 포함하고 있다.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생명성의 존재물들은 다시 말하면 우주의 이와 같은 난해한 환경을 이기기 위한 힘에 해당한다. 우주적 지대에 던져진 자아가 그 안의 무수한 짓누름의 존재들과 겨루고자 하는 것, 그리고 겨룰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 나는 이러한 의지가 다름 아닌 ‘정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시이느이 시 곳곳에서, 그 틈과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어 감춰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그러한 ‘정신’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송기한, [우주를 건너는 힘으로서의 서정 정신], 문학사상 2007년 8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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