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30일, 금요일, MBC FM라디오, 아침의 행진, 시가 있는 아침]
연금술사의 꿈
이재훈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미끈한 자동차도 아니고
달콤한 솜사탕도 아니다.
차갑고 텅 빈 사물에
쇳물을 들이붓고 싶다.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꿈을 꾸면
붉은 별 하나가 내게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손이 댈까 만지지도 못한 별이
마당에 내려와 날 또렷이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
슬픔을 우스운 몸짓으로 과장하지 않겠다.
해거름에 사양(斜陽)을 보며 사흘을 울겠다.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Q 배한봉 시인을 모셨습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A 오늘은 이재훈 시인의 시 <연금술사의 꿈>을 소개합니다.
*Q 이재훈 시인은 어떤 시인인가요?
*A 이재훈 시인은 [현대시]로 등단한 중견시인인데요. 최근 민음사에서 [명왕성 되다]라는 시집을 펴낸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시 <연금술사의 꿈>은 바로 이 시집의 제일 마지막에 실린 작품입니다.
*Q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A ‘mbc fm라디오 아침의 행진 가족’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 그 꿈을 금(金)이나 은(銀)과 같은 귀금속에 비유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얻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는 연금술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시 <연금술사의 꿈>은 바로 우리 모두의 꿈이자 이 시를 쓴 이재훈 시인의 꿈인 것입니다. 이재훈 시인은 시인이니까 ‘좋은 시를 쓰는 꿈’을 꾸겠군요. 그러니까 이 시의 제목을 직접적으로 한 번 바꿔보면 ‘좋은 시를 쓰려는 자의 꿈’ 정도가 될 수 있겠지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자기를 녹이고 소멸시켜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스스로를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라고 규정합니다. 그 “빛”은 바로 “꿈”속에서 “날 또렷이 노려보는” “붉은 별”의 빛입니다. 붉은 별은 바로 ‘시’의 상징인 것이지요. 시인들은 대부분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밤을 새우며 끙끙거리는 일이 다반사인데요. 이재훈 시인은 그동안 참 많이도 엎드려 울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대신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고 다짐하는군요. 그러니까 이 시 <연금술사의 꿈>은 자신을 녹여 성스러운 에밀레종을 만들어내듯 자신의 진기를 다 뽑아서 좋은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다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인 것입니다. 소멸함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 이것은 재생적이고 윤회적인 불교 정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묵은 한 해가 감으로써 새해가 시작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출근하면 종무식이며 여러 가지 일로 바쁜 일들이 많겠지요?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우리 모두 멋진 ‘연금술사’가 되어 새해에는 꼭 마음속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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