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이를 보내고 왔습니다.

서른여섯 해의 생일을 오일 남겨둔 채,

가족과 친구들과 동학들의 슬픔을 뒤로 한 채

편안한 곳으로 가는 인이를 배웅하고 왔습니다.

채 식지 않아 뜨거운 인이의 뼛가루를 바다에 뿌리고 왔습니다.

그의 육신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바다에 뿌려질 때,

참고 참았던 슬픔과 울분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그냥 먼 바다만 바라봤습니다.

너무 가까운 곳에 그의 마지막을 보내고 온 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다시 찾아오고 싶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울분으로 서러워지지는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왜, 라고 따져 묻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있을 땐 그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인이는 그냥 우리의 친구였기 때문이지요.

무엇이라고 규정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아도 되었던,

가장 가까운 곳에 항상 있었던 우리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멀리 보내지 못하겠지요.

가슴에 남아 문득문득, 우리에게 말을 걸겠지요.

히죽히죽 웃으며, 투정부리고 응석부리며, 옆구리를 쿡쿡 찌르겠지요.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겠지요.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많은 재산을 남기는 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는 것이

더 크고 값진 사람이라는 걸 살아가면서 깨닫습니다.

인이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우리들의 소망을 실천하고 갔습니다.

인이와 함께 나눈 수많았던 추억들.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어요. 모두 가슴에 깊이깊이 안고 있겠지요.

울분과 슬픔과 안타까움도 잊고 다시 가슴에다 종알거리며

인과 얘기할 수 있겠지요.

요즘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많이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 것.

인이가 이 세상에 마지막 숨을 쉰 날은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어머니의 물속에서 이 땅에 나왔으니, 비와 함께 물을 따라 가고,

또한 물속에 묻혔습니다.

너무 편안하여 물 같았던 우리의 친구.

제 슬픔까지 물처럼 흘려버릴 줄 알았던 친구.

인이가 따라간 물길은 하늘로 통하는 비밀계단입니다.

그 마음속 계단을 통해 자주 인이를 불러보겠지요.

인이를 보내고 이틀 동안 깊은 잠을 잤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존재와 슬픔의 의미에 대해, 친구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인이에게

평소에 잘 하지 못했던 말,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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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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