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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시詩 2007. 9. 16. 10:30

이재훈


모퉁이에서 책을 뽑았어. 선풍기는 털털 돌고 불빛이 수직으로 내린 서가. 냄새가 났어. 겉장을 넘기니 굵직한 서명. 가장 먼저인 자가 차지한 잉크 내음. 알싸했어. 책등에 서식하는 곰팡이. 암내를 풍겼어. 책을 반쯤 열고 코를 갖다 대었어. 수르르 분진이 콧구멍으로 들어와. 달창난 먼지의 몸. 푸석한 살내음. 만질해진 책 모서리를 잡았어. 아릿한 분내음. 부서질까 만질 수 없는 글자의 몸. 읽지 못하고 만져야만 하는 몸. 가령, 꽃과 나무와 별과 사랑 따위. 말년휴가 때 여관에서 들었던 김현식의 노래도 그랬어. 창문없는 먼지의 방. 닳고 닳은 몸들이 가득한 방. 냄새가 났어. 또 한 生을 뽑아 들었어.

_ [서시] 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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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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