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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시詩 2007. 10. 22. 16:16


이재훈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다
열대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텅 빈 숲의 적막이
털끝을 살살 오므려 움을 틔우는 시간
이름 모를 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허무의 군락 사이를 헤맸다
저녁마다 매연을 맡으며 구역질을 했다
벌거벗은 육체 사이에서 신음했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 시간,
꽃담을 지나 땀 흐르는 폭포를 지나
힘겹게 절정을 찾아 다녔다
빈 무덤을 넘어가며
전생의 길을 물었다
큰 호수를 만났을 때는
열망하던 일들이 모두 잠잠했다
위대한 숲의 시를 쓰고 싶었다
숲 속에 한 평짜리 오두막을 짓고
밤마다 호랑이의 배고픈 소리를 들으며
늘 지저귀고, 사분거리고, 비벼대는 숲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 싱그러움의 머리맡에서
토닥토닥 바람을 잠재우고
풀잎의 향기에 취해 혼절하고 싶었다
독수리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빙빙 돈다
폭우가 올 것 같다
빛나는 산은 신의 눈물과
천수관음인(千手觀音人)의 예언으로 존재하는 곳
화신(化身)으로 지속된 땅에서
솟구치는 피를 즐겼다
저 산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라
이 땅은 자꾸 따뜻해져
만년의 눈[雪]이 제 몸을 녹여
앙상한 피부를 드러냈다
황혼에 몸을 적셔 본다
금빛으로 스러지는 내 몸이
아스팔트에 널려져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순백의 저 암암한 몸과
뒤엉킬 꿈을 꾸며

_ [시와사상], 200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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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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