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읽는 현대시 산책 ③
― 유치환 편


의지와 생명의 시인 유치환


이재훈(시인)



2008년은 청마 유치환(1908~1967)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 시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청마 유치환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청마의 고향인 경남 통영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유치환의 대표작인 시 「깃발」의 표제를 딴 ‘깃발 축제’가 개최되었고, 거제에서는 청마기념관이 들어섰다. 청마 유치환의 생가도 복원되었으며, 유치환이 지인들에게 수천통의 편지를 부쳤던 우체국 옛터에 흉상도 세워졌다.
유치환은 한국 시단에 굵직한 소나무 같은 존재이다. 일제 강점기, 대부분의 시인들이 여리고 섬세한 감수성을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 드러낸 시편들을 발표하였다. 이른바 초창기 현대시는 여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한 감수성의 전통이 큰 맥을 이루었다. 이러한 시사적 측면에서 유치환은 단연 이채로운 존재였다. 선 굵은 남성적 어조에 거친 이미지와 관념적 시어를 가감없이 사용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치환이 남성적 어조를 가졌다고 해서 그의 시가 마냥 거친 것만은 아니다. 유치환은 사랑편지를 무려 오천여 통이나 남긴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유치환의 작고 후, 시조시인 이영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오천여 통의 편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유치환은 시조시인 이영도에 대한 연모의 정을 편지를 통해 전달했고, “사랑 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되는 「행복」과 같은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연애시를 남기기도 했다.
유치환의 시에서 무엇보다 가장 유치환다운 시는 「생명의 서(書)」가 아닐까 한다. 「생명의 서」는 유치환의 대표적인 작품이며 「깃발」과 함께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생명의 서(書)」 전문

위의 시가 쓰여진 공간적 배경은 북만주이다. 1940년 되던 해에 유치환은 가족들을 이끌고 북만주로 이주한다. 유치환이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피해 달아난 곳이 바로 북만주이다.
유치환에게 있어 북만주에서의 생활은 중요한 체험이다. 유치환은 만주에서 농장의 관리인으로 일했다. 그 농장은 유치환의 형인 극작가 유치진의 처가에서 개간한 벌판이었다. 농장 관리인으로 비교적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생활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다른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황막한 벌판에서 조국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죄책감과 끝없이 이어지는 고독과 절망적인 인식 때문이었다.
도피의 공간에서 그 모든 고통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피한 자신의 모습에서 더 비참한 감정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유치환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 극복의 공간이 바로 “아라비아의 사막”이다. 시에서 그리고 있는 “아라비아의 사막”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공간은 아니다. 그곳은 수행의 공간이며, 새로운 사유를 위해 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다.
시인은 북만주의 고통을 ‘의지’의 힘으로 다시 이겨내고자 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발견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성이 무너졌을 때 감정 또한 함께 무너진다. 그렇기에 매순간이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만주벌판에서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을 시인은 꿈꾸었던 것이다.
유치환은 삶의 의지를 통해 생명을 희구한 시인이다. 시인은 단독자로서 운명처럼 자신과 마주하고 싶다는 다짐을 한다. 그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새로운 생명의 꿈틀거림을 의미한다. 시인은 늘 본질에 대한 탐구의 태도를 보여준다.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워 새로운 ‘나’와 대면하고 싶은 게 시인의 생각이다. 그것을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다.
나라 안팎의 모든 사회, 경제, 문화의 기반들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요즘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유치환의 「생명의 서」를 읽는다. 이 시를 읽으면 어느새 마음에 강한 삶의 의지가 들어참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시만큼 더 값진 문학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다시 한 번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겨울밤이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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