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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5

언론기사 2007. 3. 15. 11:33

[경남신문 / 시가 있는 간이역 12] 눈-이재훈
 
 
 
 
눈 / 이재훈

눈을 밟는다
눈이 시린 풍경을
꾹꾹 밟는다
그러나 눈은
온전히 밟혀지지 않고
자꾸만 발등 위로
심지어 무릎까지
올라온다
제 존재를
떠올리려 한다
덮어야 할.
밟혀야 할 운명을
내 발걸음에 의탁한 채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이 떠올라
내 발목을 쥐고
너도 나처럼
떠올라라
떠올라라
머리 위까지
눈이 날린다

-이재훈. <눈> 전문.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200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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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다. 눈이라도 내려 덮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눈 내리지 않으니 눈 대신 눈에 대한 시 한 편 읽어보자. 세상길이 아무리 탁류라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다리 아파도 함부로 쉴 수도 없는 것이 우리네 길 위의 삶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조용한 혁명’이다. 섬세함이다. 시인의 시선을 보라. 내리는 눈이 아니라 쌓여 밟히는 눈을 주목하고 있다. 그리하여 ‘밟혀야 할 운명’을 가진 눈이 밟는 자의 힘 반동을 이용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본다. 아름다운 눈의 혁명. 우리도 가만히 속삭여 보자. 떠올라라. 날아올라라. 머리 위까지! 그러면 우리 삶의 바닥 슬픔이 세상 끌고 가는 힘이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 배한봉(시인. 《시인시각》 편집주간)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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