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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

시詩 2008. 1. 28. 14:34

이재훈


1. 골짜기
빛의 동네다.
도로 위에 빛의 뼈들이 달그락거리고
뭉텅한 안개 몸을 뒤엎으며 흐느적거린다.
아무리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프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달빛 교교한 언덕으로 올랐다.
하늘에 혀를 내밀었다.
달콤한 달빛으로 목을 축이는데
뒷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어떤 손.

2. 달
고요히 체념한 얼굴이다.
익숙한 손짓으로
제 눈과 코를 짓누른다.
애꾸눈이 된다.
먼지로 만들어진 얼굴.
아름다운 그림자를 가진 얼굴,
마지막 숨을 남겨 놓고 있다.
동살에 얼굴이 문드러져도
저렇게 늙어갈 수만 있다면.

3. 꼽추
새벽이 오면 늘 목이 막힌다.
내 등껍질에는 냄새가 난다.
고깃덩이가 익는 냄새.
빠른 걸음에 허벅지가 맞닿아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난다.
얼굴을 가린 채 희미한 빛을 바라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공기를 매만진다.
푸석푸석하고 누렇게 변한
빛의 몸.
달의 핏물이 배어 있다.

4. 묘지
날이 밝았다.
아침을 메우는 발자국 소리들.
귀가 따갑다.
귀를 막고 무릎을 꿇었다.
몸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구멍난 뼈에서 벌레가 기어나왔다.
깊은 땅 속에 박힌 손 하나.
골짜기에서 합창이 들렸다.

_ <시평>,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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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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