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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3 꽃의 시인 김춘수 - 주제로 읽는 현대시 산책 10


꽃의 시인 김춘수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 일반적으로 ‘꽃’이라고 하면 예쁘고 아름다운 감성적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춘수에게 ‘꽃’은 이러한 의미가 아니다. 김춘수 시인이 말하는 꽃은 존재의 대상이다.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시 <꽃>으로 인해 김춘수는 꽃의 시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김춘수 시인은 한국 시단에 아주 독특한 시세계를 가진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관념시’와 ‘무의미시’, 그리고 이 둘의 변증법적 지양을 거친 ‘의미’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진화해왔다. 그로 인해 시인의 문학적 역정은 언제나 문제적이었으며 또한 가장 독특한 경지에 있었다.

김춘수 시인은 1922년 경남 통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유복한 가정환경과 개방적 사고를 가진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호주 선교사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의 경험은 시인에게 이그조티즘(이국취향)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체험이 독특한 시적 세계관과 미적 관심에 대한 최초의 자각이다.

시인은 통영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경기중학에 입학한다. 이후 일본대학 시절 천황비판으로 옥살이를 한 경험도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대학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추방되어 퇴학당하고 한국으로 건너온다. 통영중학교와 마산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5년 경북대학교 교수, 1978년 영남대학교 문리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특이한 이력은 1981년 제11대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한 것이다.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은 시인으로서의 삶과 너무나 다른 일이었다. 이후 작고하기 전까지 김춘수 시인은 정치활동 경험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시와 시론을 묶은 <김춘수 전집>(현대문학)이 2004년 출간되었다.

김춘수 시인은 1948년에 첫 시집 <구름과 장미> 이후 한국 시단에서 가장 독특하고 모던한 시의 경향을 보이게 된다. 196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시적 실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김춘수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무의미시’이다. 대상과의 거리가 상실된다는 것. 대상을 지울 때에 대상의 구속으로부터 시인은 해방되고, 어떤 의미부여의 행위로부터도 해방된다. 그러나 무의미시가 가지고 있는 서술적 이미지의 세계에서 이미지는 의도하지 않아도 의미를 띄게 된다. 이 의미를 지우기 위해 탈이미지로 가게 된다. 탈이미지는 리듬만으로 시를 쓴다는 것인데 이것은 시인이 고백한대로 언어도단의 세계이다.

무의미시의 막다른 골목에서 시인은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시인은 다시 의미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이 의미의 세계는 이전의 관념시와는 다른 변증법적 지양을 거친 세계이다. 이 관념시와 무의미시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형성된 시집들이 후기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거울 속의 천사>, <쉰 한 편의 비가> 등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꽃> 전문

김춘수의 시 <꽃>은 전국민이 모두 아는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비교적 초기작품이긴 하지만, 김춘수가 가진 존재의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게 하는 시이다. 어떠한 대상이든지 불러주기 전에는 아무런 이름이 없다. 산의 이름 모를 들풀도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이름을 가진 존재로서 의미를 띄는 것이다. 그 의미가 바로 시에 말하는 ‘꽃’으로 상징할 수 있다.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은 존재는 늘 불안하다. 그리고 너와 나 모두 무엇이 되고 싶은 열망과 소망이 있다. 어떤 의미로든지 타인과 이 세계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시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전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서로간의 존재에 대한 가치가 희박하다. 인터넷 공간과 블로그, 미니홈피, 트위터, 그외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 디지털미디어 기기, 스마트폰 등으로 대화가 단절되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적어진다. 가상공간에서 포장된 나와 타인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춘수의 <꽃>을 읽고 있으면 타인을 가만히 불러보고 싶게 한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어떤 의미라고 속삭이고 싶게 한다. 찬바람이 분다. 외롭다고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쳐다볼 게 아니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지인들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한다면 어떨까. 따스한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까. 그동안 잊었던 내 존재가 그에게로 가서 새로운 존재로 남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참 포근하고 훈훈한 날들이 될 것이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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