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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9 이재훈의 <고분(古墳)>을 읽고

고분(古墳)

 

이재훈

 

 

벽에 귀를 갖다 대면 물소리가 들린다. 아득하다. 눈을 감으면 당신의 소리가 들린다. 나는 늘 아득한 것만을 탐했다. 물소리, 물소리. 축축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몸이 소리가 된다. 어떤 채비도 없이 탐험은 시작된다. 돌로 된 벽. 사이사이 틈. 틈 사이사이 어둠. 슬며시 그 얇은 어둠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내 몸은 돌이 되지 못하고, 역사가 되지 못하고, 흐물흐물 유형도 무형도 아닌 정욕의 애액이 되어 돌 속에 분신한다. 돌 속에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파닥거리며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돌이 흔들거린다. 돌 속에서, 돌 속의 물속에서 노래를 부르자니 숨이 가빴다. 내 몸의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다. 살갗이 울퉁불퉁하게 딱딱해진다. 온몸이 물이 된다. 물속에서 돌이 되는 순간. 물이 돌이 되는 꿈. 돌이 된 몸속에서 아득한 물결 소리가 철썩인다.

_ <시인동네> 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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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잘 다니지 않는 도로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금은 몇 년 동안 선을 조금씩 더 벌려 그곳에 민들레가 피었다. 고분은 도굴당했거나 오래되어서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물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물이 있는 곳은 늘 축축하기도 하지만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틈은 소우주를 확장시키고 융합하며 또 다른 개별성을 존재하게 한다.

화자는 틈을 만들기 위해 축축함을, 물소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 틈을 만들고 어둠의 틈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다시 돌 속을 축축하게 하고 고체의 개념을 녹여서 물이 되게 한다. 돌 속에 강이 흐른다. "돌 속의 물속에서 노래를 부르자니 숨이 가빴다" 현대의학으로 인해 오래 살고 있는 우리도 하나의 고분이다. 돌 같은 육체 속에 갇혀 다시 물 같은 흐름 속에 갇혀 시의 노래를 부르는 시인은 숨이 가쁠 것이다. 고단할 것이다. 하지만 돌 속에 강물을 만들고 살아가는 시인의 가슴은 행복할 것이다.

돌이 된 몸속에서도 시인은 몸에 새겨진 물무늬를 바라보며 물결소리를 잃지 않는다.

(이인철 시인)

 

_ <시와세계>, 2013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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