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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크리스마스

산문 2012. 12. 7. 10:28

대선과 크리스마스

 

   

이재훈 (시인) 

 

 

 

 

 

내가 처음 대선을 치른 것은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였다. 당시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양김의 시대가 마지막으로 시대를 호령하는 때였다.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우는 정치스타 김대중과 김영삼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정치계의 화두이며 핵심이었다. 김영삼 후보는 민정당의 노태우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과 합당, 적들과의 동침을 자행하며 민자당을 출범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14대 대선에서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문민정부에 이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기까지의 대선 여정들은 내 청춘의 정점을 수놓은 추억들과 함께 했다.

14대 대선 때 나는 재수생이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배부른 사치처럼 느껴졌고,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은 극도로 높아져 있었다. 대학생들의 시위와 시민들의 공분과 가열차게 돌아가는 대선 정국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들처럼 여겨졌다. 혼자만의 내면에 파묻혀 세상을 바라볼 때였다. 가끔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무정부주의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을 하였고, 힘들게 공부를 하였으며 결혼을 했고 자녀를 키우고 있다. 지금은 비정규직의 삶을 살며 도시인으로서의 명분을 합리화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고 삶의 규모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지금은 여러 열린 창을 통해 정치에 대해 일거수 일투족을 관람하고 얘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염원이 피로 승화된 우리 시대의 아픈 역사이자 상징이다. 5.18의 뜨거운 피와 가슴과 열망과 눈물이 없었다면 민주화의 정치사는 아마 한참 뒤늦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 성당 지하실 사진전에서 본 광주 민주화운동의 처참한 모습들을 잊을 수 없다.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며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도저히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별달리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공권력에 의해 인권은 유린되고 있으며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는 이전보다 더한 모욕을 안기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예의도 상식도 배려도 없이 오로지 개인의 이기심만 팽배한 사회에서 오로지 돈만이 모든 삶의 지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각박한 현실, 신자유주의로 치장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려본다. 지금이야말로 5.18의 희생과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숭고한 피의 의미를 생각할 때 아닌가.

정치는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정책 하나 하나가 직접적으로 우리 삶과 밀착되어 있다. 삼포세대(취업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라 불리는 청년들의 미래, 사교육과 등록금으로 인해 자녀들을 교육하기 어려운 환경, 명예 퇴직이나 조기 퇴직으로 인한 50대 이상의 실업문제, 노인층의 증가로 인한 복지 문제 등등이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난제들 중 하나이다. 정책 하나가 달라진다는 의미는 이런 문제들이 하나씩 풀어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기존 청치에 대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는 투표를 하는 행위이다. 투표행위를 통해 위정자들에게 국민들의 뜻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찍을 사람 없고, 좋아하는 후보자가 없다고 해서 투표권을 포기한다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아닐까. 의무를 다했을 때에야 정치권에 불만을 제기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얼마나 더 위정자들에게 당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뜩하기만 하다.

역대 대선 투표율은 14대 81.9%, 15대 80.7%, 16대 70.8%, 17대 63%로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투표율이 더 이상 낮아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정치권에서는 투표시간 연장안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투표시간 연장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들어보면 투표율을 높이자는 취지에 대한 반론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자들의 토론회도 찾아볼 수 없다. 15대 대선에서는 54회, 16대에서는 27회, 17대에서는 11회의 대선 후보자 TV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18대 대선에서는 투표일이 한 달 남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토론회도 열리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고, 듣고, 판단하라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올바른 판단과 투표행위를 통해 5.18의 정신은 올곧게 이어질 것이다. 국민들의 참정권 행사가 없이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바꾸고 싶으면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투표행위가 아닐까. 13대 직선제 때부터 대선일은 늘 12월 중순이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축제의 마지막 달이다. 대선 또한 우리에게 축제이고 싶다. 벌써부터 12월의 그날이 기다려진다.

 

_ 5.18기념재단 계간지 <주먹밥> 2012년 겨울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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