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가 고향이세요? 아, 감자바위시네요. 하하.
서로 고향 얘기를 주고 받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그리곤 강원도 어디어디를 얘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대부분 놀러다녀 온 이야기다. 설악산이 어떻고 경포대가 어떻고 속초를 위시한 동해안 일대 등의 얘기가 오가면 강원도 얘기를 거의 다 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강원도 사람들을 ‘감자바위’라고 부르는 데에는 ‘촌스러움’이라는 지역적 선입견이 포함되어 있다. 이 촌스러움 때문에 강원도는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자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산수자연은 도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혹적인 안식처인가. 그러니까 사람들은 강원도의 촌스러움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시 사람들이 강원도를 철저하게 소비의 방식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제 내린천이나 영월 동강의 변해가는 모습은 이를 증명해 주는 일들이다. 이제 우리는 강원도의 겉모습이 아니라 강원도의 깊은 마음을 이해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처럼 지역적 냄새가 많이 풍기지 않는다.어딜가나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은 금방 표시나는 데 반해 강원도 사람들은 여간해선 잘 알 수가 없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겉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속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성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속내 깊은 은근함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추암해수욕장 일출전야(2003)
강원도 ‘감자바위’들은 이름처럼 순박하다. 요즘은 순박하다, 착하다 라는 말이 좋은 말로 들리지 않게 돼버렸지만 강원도 사람들을 표현할 때 가장 적당한 표현이 순박하다는 말일 것이다. 대개 순박한 사람들은 자기표현에 서툴다. 그것은 타인과 자연스럽게 자기 감정을 표현할 일이 적음에서 생기는 쑥스러움 때문이다. 강원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으로 강원도 사람들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감정표현이 익숙치 않아서 생기는 오해이다.
감정표현이 서툰 것에는 지리적 특색이 큰 요인 중의 하나이다. 강원도의 북쪽은 함경도와 황해도, 서쪽은 경기도, 남쪽은 충청북도, 경상북도와 접하고 있다. 또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서로 양분되고 산악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세 탓에 지역 간 교통이 빈번하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설악산과 치악산 오대산 등의 험준한 산령이 남북을 길게 막아놓고 있고 이 산맥들이 쳐놓은 가지들 또한 작은 혈관처럼 넓게 뻗쳐 있다. 그래서 강원도 지역은 거의가 산악지형이다. 감자와 옥수수가 많이 나고 고랭지 농작물이 많이 생산되는 것 또한 이런 경우이다.
이러한 지형은 강원도 사람들을 진취적이지 못하고 고여있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미 자연을 정복하지 않고 자연과 순응하며 그 질서대로 사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기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고립되어 있고 고립된 만큼 폐쇄적이다. 또한 바깥의 문화를 흡수하는 데도 늦고 타지역에 대해 먼저 경계심부터 발동한다. 좋게 말하면 지역적인 고유의 색채가 아주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사람들의 무뚝뚝함은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더 딱딱하게 다가온다. 강원도 사투리는 다른 지역 사투리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영동지역은 서울로의 이주가 잦지 않고 또한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상경하기 때문에 사투리의 원형이 잘 유포되지 않았던 것 같다.
강원도의 사투리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영서지역은 오히려 서울의 문화권과 가깝기 때문에 표준어에 가까운 말씨를 쓴다. 그러나 영동지역은 옛부터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중앙과의 교류가 없었으므로 독특한 사투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강원도 북부지역이 함경남도와 인접해 있으므로 이쪽의 말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강원도 토박이 사투리를 북한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원도 사투리로 웃음을 선보인 개그맨 심원철이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선생 김봉두>는 강원도 사투리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제 강원도 사투리가 전국적인 문화코드가 될 수 있을 날도 멀지 않았다.
감정표현이 서툰 대신 한번 정주면 끝까지 가는 성미가 강원도 사람들이다. 그네들의 정은 타지역 사람들의 정붙임에 비해 유달리 질긴 편이다.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의리나 여자들의 살가움에 비해 강원도 사람들의 정붙임은 진득한 데가 있다. 한번 정을 붙이면 쉽사리 떨어질 줄 모른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일단 친해지면 뚝배기처럼 은근하고 오래간다. 또한 감정 표현이 서툰 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독일 줄 안다. 그 다독인 감정을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필 줄 안다. 강원도 사람들 사이에 큰 싸움이 없는 것 또한 이런 이유이다.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이 속도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부면에 걸쳐 떠오르는 시대다. 강원도 사람들의 은근함과 포근함이 이제 빛을 발할 때가 아닌가. 주변에 강원도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말을 걸어 보면 어떨까. “아, 감자바위세요?”
글 : 이재훈
출처 : WE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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