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벽이다
엎드려 잘 때마다 이곳은
바닥이 아니라 무른 껍질이라 생각했다
배에 힘을 주면 지그시 열릴 것 같은
그 껍질을 깨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몸을 마음껏
비벼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주장해야 했다
쿵, 말문이 열리면 긴 오솔길이 펼쳐지곤 했다
한참을 걸었을 때 울창한 숲이 보였다
나는 구름을 먹고,
신성한 사랑에 대해 논했다
풀숲에는 소리가 고여 있었다
풀을 헤치니 소리가 서로 밥을 먹고 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나무의 텅 빈 몸에 구름을 토했다
검은 말들이 꿈틀댔다
가련한 밤,
문신을 새기는 꿈을 꾸었다
팔뚝 위에 피리를 새겨 넣자
내 몸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창밖엔 십자가가 흐른다
가로등이 떠다닌다
감정없이 장단만 있는 노래
이 방은 어둠이 몸 푸는 자리,
얼굴도 없고 가슴도 없다
빗방울도 없이
빗소리가 내리는 방
엎드려 자고 있으면
살포시 몸에 감기는
빈 말들의 뼈
_ <미네르바>, 200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