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날의 기록들
― 이재훈 시인께
정재학
자주 그리운 재훈 형,
편지 자체를 정말 오랜만에 써보네. 정보화시대 자체가 편지 쓰기를 방해하고 있으니 나도 그 영향을 받나봐. 나는 스마트폰을 쓰지도 않고 016 구형 핸드폰을 쓰는 사람이지만 말이야. 사람들끼리 접촉은 많아지지만 깊은 교류는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그래서 형이 나의 깊은 친구라는 것이 항상 든든하고 고마워.
난 모든 것은 결국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서 ‘운명’이라든지 ‘필연’이라는 것은 별로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형과의 만남은 ‘좋은 우연’을 넘어 ‘필연’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을 것 같아. 우리는 드물게, 처음 본 이후 바로 특별한 친구가 되었으니까.
2001년 봄이었지. <현대시> 원고 마감을 넘겨 보내게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형에게 메일로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형의 아름다운 등단작 「수선화」를 비롯해서 발표작들을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형을 보고 싶었어. 찾아보니 그때 내가 보낸 메일은 지워졌는데 형의 답장은 남아 있더군. 우리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때와 같은 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지. ‘나는 시인이다’와 같은 자부심이 느껴지는 아이디 ipoet,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뷰캐넌’의 buchanan. 내가 최초로 받은 형의 메일에 “저도 꼭 뵙고 싶군요./ 정 시인의 시를 인상 깊게 읽고 있어서…/ 연락드릴게요” 하고 적힌 것을 보니 10년 전의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 해. 메일을 나눈 이후에 약속을 잡고 우리는 종로 대폿집에서 밤늦게까지 정종을 마셨어. 그 이후 나의 20대 후반과 30대는 형 없이는 얘기 할 수 없는 시절이 되었어. 평생 마실 술을 그 시절에 다 마셔버리고 평생 피울 담배도 그때 다 태워버린 것 같아. 2004년 여름밤 종로 어디에선가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내가 요즘 너무 무기력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지.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실험적인 시에 대한 고민이었을까. 사는 것 자체가 버거웠을까. 복합적이었겠지만 그 말을 했던 순간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 다시 그 술집에 가도 그때 우리가 마셨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쓸쓸한 날의 기록
― 정재학에게
무기력하다 했던가
마지막 술잔을 남겨놓고
우리가 귀가하는 순간
하늘 아래 어디쯤에선 꽃이 피었을 거다
꽃을 보고도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렇게 헤매었던가 우리 한낱
일렉기타의 음률과 철 지난 유행가에
더 감상적이었잖은가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백 년의 무명을 견딜 것이다
그렇게 철없이 살리라
더 이상 만질 것도,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는 어둠
소주 몇 병 먹고 어둠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만한 자족으로 그 어둠 속
텅 빈 공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옥상 위에 올라가 날아보자
네 몸이 땅에 떨어져 옆구리가 찢어지고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린다 해도
내가 믿는 예수처럼
그 옆구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어느 요절한 시인처럼
흉흉한 소문 속에 네 아픔이 기억될 수 있을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패한 서정시인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제 우리의 가난도 팔지 못하는,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보았다
무얼 견디는지도 모르는
몽롱한 얼굴이 날 바라보고 있다
메타시로도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야. 형이 발표하기 전에 나에게 며칠 전 쓴 시가 있다며 전화로 들려주었는데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서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이미 다 해먹고/ 남은 상상으로 목울대를 울리는”, 이 구절은 마치 우리 세대의 시인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 무기력했지만 우리의 몸짓과 말이 시가 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지. 형의 시만큼 좋은 시는 아니지만 나도 답시를 썼지. 그러고 보니 편지였어.
편지, 영월에서
― 이재훈 兄의 「쓸쓸한 날의 기록」에 부쳐
그때 우리가 있었던 곳은 형의 고향 강원도 영월이었습니다. 형은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태어난 동네를 찾고 있었어요. 눈 덮인 들판에서 전화도 했었죠. “엄마,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에요?” 나는 하필 바람과 다투며 지도를 쫓아 들판을 뛰어다녔습니다. 지도가 얼마나 뒹굴었을까. 그때 하늘에서는 새 한 마리 날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바람이 멀리 데려간 지도를 한참 만에 잡을 수 있었지요. 형이 태어난 곳은 이미 지도상에는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폐광촌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름이 없다고 그곳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형은 저에게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정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형은 시를 썼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서정시인입니다. 저에게 ‘서정시’는 늘 이상한 개념입니다. 시 자체가 서정인데 마치 그 말은 동어반복처럼 느껴집니다.
…(하략)…
형이 어머님께 전화를 하는 동안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서, 들고 있던 지도가 날아가서 한참을 지도를 잡으러 뛰어다녔던 기억이 생생해. 형은 고향에 갔지만 고향을 만날 수 없었지. 지도는 그저 현재의 지리적 기록일 뿐 형의 역사를 담을 수는 없어. 시적인 순간을 그대로 옮긴 편지였어. 갑자기 형의 두 번째 시집 중 한 구절이 생각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통각이 없는 시간들./ 모든 사물은 그저 멀리 있는 상징일 뿐입니다.// 요즘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제 존재가 바뀝니다./ 때론 동물이었다가 때론 식물이고/ 때론 명징했다가 때론 무질서합니다./ 나 또한 상징에 불과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인데, 머리가 맑았으면 좋겠어. 왜 이리 내 머리 속은 항상 구름이 껴 있는지……. 언제 우리 머리가 시리도록 찬바람 부는 산이나 겨울바다로 떠나보자. 우리가 맑아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몽롱한 눈동자라도 만나러.
_ <현대시>,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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