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젓가락,스테인레스 스틸, 660*770*570.2006.
생명을 가장 아름다운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는 몸
이재훈(시인)
가능하다면 나는 이 글을 사양했어야 했다. 글 쓰는 일을 업(業)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예술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글은 아무래도 미술평론가의 몫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좀 문외한인 편이다. 좋아는 하지만 열정적인 전문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가 도일의 작업에 한 마디 거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한때 도일 兄과 황산벌 아래 작업실에서 머리를 맞대며 예술운운하던 시절을 겪은 인연 때문이다. 그 당시 조각가 도일은 [당위]라는 독특한 예술집단을 이끌며 일명 ‘연산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스스로를 야단(野壇)이라 칭하며 “나(몸)는 가장 광범위한 역사적 실체다”라고 외치던 한 예술가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당시 나는 [당위]의 일원이 되어 당위지에 잡문을 쓰고, 그의 작업장 넌출관에서 장작을 패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며 삶과 예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그늘 속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수혜받은 사람 중의 하나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작품에 대한 열렬한 관객이자 마니아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저작詛嚼 Chew] 연작은 이전에 비해 한껏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이전 작품들은 한 마디로 딱딱한 껍질이었다. 그의 예술 철학이 너무 완고해 어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일방향적 전달에 가까웠다. 물론 이런 부분은 다른 측면에서는 아주 좋은 예에 속하기도 한다. 즉 그의 작품은 비교적 주제가 선명하고 강한, 선 굵은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 [저작詛嚼 Chew] 연작들은 그 단단한 껍질에 구멍을 열어 숨을 통하게 한 느낌이다.
도일은 근본주의자이다. 그의 관심은 시원(始原)이나 진리의 본질에 가닿아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발 디디고 있는 삶 또한 중요한 정신적 발판으로 삼는다. 또한 완성된 어른의 눈이 아닌, 정체성 속에서 여전히 흔들리는 자아를 탐구하길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호성 속에 있는 자아가 작품의 빈 공간 안을 자유롭게 유영하도록 방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공간과 움직임의 연속이 전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통합(Unity)의 정신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띠는 것 중의 하나로 질료의 선택을 들 수 있다. 작가, 특히 조각가의 경우 예술가가 선택한 질료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굳이 뒤샹이나 팝아트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현대미술에서 질료 선택이 예술가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오래된 역사이다. 도일이 택한 매체는 철이다. 철은 도일의 초창기 작업에서부터 등장하는 재료이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일련의 Gun 연작을 발표해 왔으며 1994년 발행된 [징후SYPTOM] 그룹전에서도 [M-16A1 사격방법]이라는 작품을 통해 숟가락, 젓가락, 나이프, 포크 등으로 제작된 작품을 발표했다. 아상블라쥬 기법을 통해 제작된 이러한 작품들은 식량전쟁에 대한 경고이자 그 위험성을 알레고리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준 매체들 또한 일상의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숟가락, 젓가락, 포크, 밥그릇이나 국그릇 등이다. 이런 점은 재료의 공공성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작품에 그대로 전달하려는 작가의 시도라고 본다. 숟가락, 젓가락 같은 식도구들의 경우 개인만이 사용하는 개별성의 차원에서보다 가족, 지역, 사회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문화적 공공성을 띠는 특성을 지닌다. 많은 사람들의 몸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즉 먹는 것이나 쉬는 것의 용도를 가진 사물들은 기(氣)가 센 재료들이라 하겠다. 작가는 이런 재료들을 고물상이나 폐업하는 가게를 통해 재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들 재료는 제철소로 가서 또다른 재료의 철로 윤회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술가 도일이라는 용광로를 만나면서 하나의 예술품으로 환생한 것이다.
이러한 재료, 즉 매체지향을 가진 도일의 작업은 재료가 가진 공공성을 바탕으로 두드리고 붙이고 녹이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꽃으로 탄생한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또한 생명을 가장 아름다운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는 몸이다. 작가는 꽃을 잉태하고 있는 줄기나 뿌리를 기(器)라는 형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기(器)의 공간은 막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하나의 그물망처럼 보인다. 그물망은 공(空)과 허(虛)를 담은 순환과 윤회의 세계를 지향한다. 하나의 열려 있는 공(空)에서 꽃으로 화(化)한 모습들은 다양한 파장으로 변주된다. 그것은 스텐을 두드려 만든 나뭇가지로, 혹은 오묘한 색감의 몸을 지닌 넓은 동판으로 확산된다. 순환이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작품은 숟가락, 젓가락과 청주잔으로 제작된 사람의 형상들이 여덟팔자(字) 모양을 그리며 설치된 작품이다. 이 작품 또한 108개의 인간상을 통해 백팔번뇌를 연상케 하고,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이어지고 순환하는 무한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작품들 속에서 또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은 작품의 디테일한 부분들이다. 예를 들면 스텐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작품에서 숟가락과 찻수저로 만든 작은 나비 같은 것들이다. 그 작은 나비는 자아에 잠깐 스쳐 앉았다 간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 존재들은 건강한 생명력을 얻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또한 철을 용접하며 얻은 접합점의 반짝임 같은 것들은 작품을 더욱 미적으로 만들어주는 디테일한 부분들이다.
도일의 이번 작품은 여러 사물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는 세계, 즉 전체성에 대한 커다란 상징으로 읽힌다. 그의 작품은 철이라는 매체와 전체성의 의식, 공간과 선과 붙임을 활용한 형태가 모두 조화롭게 이루어낸 세계이다. 그는 언제나 진지한 열정으로 작품을 생산해내는, 오로지 작품 속에 자신의 영혼 전체를 밀어 넣는 예술가이다. 이제 그의 다음 작품은 어떨지를 상상하고 기다리는 관심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인사아트센터 2007.6.27일부터 7.3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