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위반한다. 무엇에 대하여,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으로 위반하는가? 자유에 이르는 시의 노정을 위해 무차별적인 장치로써 제도를 위반하고 질서를 위반하며 시간을 위반한다. 그리고 경직된 세상의 벽을 허물고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러므로 시의 위반은 인간의 위반과 달리 한량없다. 한량없는 위반이 자유를 불러오는 시의 힘이기 때문에 그러하며, 이와 같은 위반의 자유 속에서 시는 위반의 지평을 확장한다. 시의 위반이 이룩한 열린 문으로 온전한 영혼이 은밀히 내방하고, 상투적 삶이 ‘알몸의 생’이 되어 새로워진다.
오르한 파묵이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그림을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라고 한 대목이 있다. 이때 ‘이성의 침묵’이란 ‘이성의 칼’ 혹은 ‘언어의 칼을 휘두르는 시’와 ‘언어의 칼을 감춘 시’에 대한 은유로도 들린다. ‘언어의 칼을 휘두르는 시’와 ‘언어의 칼을 감춘 시’, 그리고 ‘언어를 왜곡시킨 시’와 ‘언어조차 침묵하게 한 시’와의 사이에는 ‘있음(존재)’과 ‘없음(부재)’ 사이만큼의 사이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성의 침묵’인 그림이 아니라 ‘시의 세계에서 침묵’은 부재로써 존재하므로, 결국 존재와 부재 사이에는 사이가 없는 셈이다. 이성의 언어 혹은 왜곡된 언어가 이끄는 위반의 장치는 부재하는 것의 존재성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역설로 존재하고, 그 뒤에서 시는 은밀히 침묵의 권리를 완성한다. 시의 위반은 완성을 향한 시의 권리이며 주로 왜곡된 언어의 전략적 작용이 낳는 역설적 힘이다.
(중략)
깨진 기왓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그 속에서 비닐에 덮여 자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콧대와 턱이 뿌연 비닐과 뒤엉켜, 툭 건드리면 바삭 부서질 것 같다. 팔딱팔딱, 손가락 사이로 심장 소리가 뛰어 올랐다. 모든 소리들이 긴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탔다. 녹색의 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이 반짝였다.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길을 물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보랏빛 옷만 남겼다. 깊은 숲길에 안개가 뿌옇고, 여인은 안개를 덮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 스윽.
― 이재훈, <동경銅鏡>(<문학사상>, 7월호) 전문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는 일탈된 시선이 무질서한 위반을 생산한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은 깨져버린 일생의 꿈이고, 잃어버린 신발의 영상이다. 잃어버린 신발은 잃어버린 일생의 꿈을 은유하고, 그것은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영혼의 결정체이며 시의 위반을 이끄는 기억의 언어이다. 무의식은 깊은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침묵의 샘이며, 침묵의 샘에서 길어 올려진 기억이 이재훈의 거울로 작용하고, 상투적인 일상을 ‘알몸의 생’으로 견인한다. 이재훈의 기억은 파편의 위반으로 돌아와 온전한 영혼의 거울을 환기시키고 있다.
- <현대시>,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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