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다시 뜨고, 봄이 새롭게 오고, 생명이 나고 죽는 것. 이런 끝없는 반복의 과정에서 리듬을 발견한다. 리듬Rhythm은 바로 인간과 자연, 우주가 존재하는 기본 원리이자 그들의 존재를 가시화시키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들이 갖는 리듬의 양상은 동일하지 않다. 우주에서 미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각기 다른 리듬을 타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리듬이란 모든 존재가 가진 본질적인 것이면서도 한편으론 각기 다른 규칙을 가진 개별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형시로부터의 해방이 시인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리듬의 발견과 자유로운 시화詩化를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의 리듬, 좁게 말하면 운율이라는 것은, 각 시인들의 호흡과 기질, 그리고 언어 습관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인들의 개성과 미의식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원리이다. 따라서 시어 자체의 물리적 존재성과 리듬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개개의 시어들이 그저 의미로만 환원되기 때문에 시인들의 독창성을 찾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최근 시단에서는 운율과 관련하여 산문화의 경향이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산문시에도 엄연히 시적 운율과 함축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런 고민은 일반 자유시 형과 다른 운율을 가진 산문시의 리듬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읽힌다. 이런 의미에서 현 시단은, 시인들의 감수성과 상상력, 미의식의 변화와 함께 리듬 역시 전통적인 운율 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지점에 와 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최근에 읽은 시집들을 중심으로 2000년대 시인들이 구사하는 리듬의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마침표를 사용하고 있는 시인의 의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 밑에 누워 있습니다. 기타에서 떨어지는 마른 고독이 목젖을 열게 합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말들이 우르르 목덜미로 떨어집니다. 말들이 저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등 뒤로 차오릅니다. 나는 말 위에 떠 있고, 아버지는 저 말 속에 계십니다. 내가 뱉어 놓은 검은 말속에서 기타를 연주하십니다. 말이 진화하면 물이 된다지요. 고도로 단련된 연금술인 셈입니다. 허공에 산화되어 사라지는 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말을 배웠습니다. 내 말은 이미 물이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옵니다.
― 이재훈, 「기타가 있는 궁전」 부분
이재훈 시인은 산문시의 경우 대부분 마침표를 사용한다. 마침표가 시인의 호흡과 생각에 일종의 마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리듬의식을 자연스럽게 생산한다. 이때 한 문장의 종결을 표시하는 마침표는 산문시를 행 단위로 읽게 함으로써 길고 짧은 행의 구분에서 느껴지는 반복적 리듬의 변화를 보여준다. 한편 시인은 산문시에서 각 시행들의 의미가 응집되고 절제되도록, 한 행 안에 의미와 이미지를 응축시키고 있다. 의미상으로도 기타를 연주하는 아버지와 노래를 부르는 나의 대비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인이 갇힌 검은 말, 아직 흘러가거나 산화되지 않는 갇힌 말 속에서 들리는 기타소리가 마침표 안에서 울린다. 말에 갇힌 자의 고독과 슬픔이 여운을 남기지 않는, 짧은 문장의 반복과 마침표 안에 응집되어 있다.
...(중략)...
가면놀이
고양이가 탁자를 긁으며 옹알거린다 고양이의 목을 쓰다듬고 싶다 말랑말랑한 등뼈를 만지고 싶다 암소가 탁자에 걸터앉아 느릿하게 몸을 꼰다 로큰롤이 연발로 발사된다 모두 몸을 흔들며 잘도 피한다 낙서가 가득한 벽에 총탄 자국이 어지럽다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서로를 향해 난사한다 춤을 춘다 춤을 추며 총을 쏜다 고양이의 입술에 쥐꼬리가 걸려 있다 암소의 배가 불룩하다 배에다 연발총을 쏜다 가죽소리만 창창 난다 고양이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고양이가 암소 뱃속에 있다
― 이재훈, 「신촌, 우드스탁, 가면놀이」 부분
위의 시에서도 역시 몸으로부터의 리듬,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세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위의 시는 한 장이 한 연으로 된 산문시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는데, 이는 현재 상황의 혼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면’과 가면 밑의 실제 얼굴들, 고양이와 암소, 로큰롤 음악과 총탄의 발사, 고양이를 밴 암소 등 이질적인 것들이 열기와 에너지 속에 혼재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리듬의 특성은 우선 후반부로 갈수록 급박한 리듬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옹알거린다’, ‘쓰다듬고 싶다’, ‘만지고 싶다’는 느긋한 속도감을 주었던 서술어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발사된다’, ‘피한다’, ‘어지럽다’, ‘난사한다’, ‘춤을 춘다’, ‘총을 쏜다’를 거쳐 고양이가 암소 뱃속에 있다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에까지 급박하게 진행된다. 이런 속도감은 로큰롤의 빠르고 강한 에너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둘째로는 리듬이 몸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느릿하다’, ‘몸을 꼬다’, ‘흔들며 피하다’, ‘춤을 춘다’, ‘가죽소리만 창창 난다’ 등은 모두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몸의 움직임을 통해 시적 공간이 술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훈 시인 역시 에코가 메아리치는 몸을 상상한다. “아름다운 내 몸, 거울에 비추어, 아아아 에코가 흐느끼네”(「수선화」) 라는 시인의 고백은 시각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 그 자체의 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시인들의 리듬은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율동과 호흡, 숨결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시의 리듬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리듬을 살고, 리듬을 창조한다. 반복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몸의 리듬을 고르는 그들은, 보는 시가 아니라 듣는 시를 씀으로써 시의 원형原型인 노래에 가까이 간다. 그러하므로 이제 독자들은 시를 읽고 보면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넘어 시인의 몸이 연주하는 리듬의 변주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_ 현대시, 2007년 7월호
'이재훈_관련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기한_ 우주를 건너는 힘으로서의 서정 정신 (0) | 2007.08.18 |
---|---|
시의 위반_ 진순애 (0) | 2007.08.14 |
죽음과 시의 변주들_ 이성혁 (0) | 2007.07.13 |
[빗소리] 평 / 조해옥 (0) | 2007.07.05 |
서정성의 경계와 세 가지 시향 / 전동진 (0) | 2007.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