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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3 포르노그라피와 현대시의 페티시즘_ 허혜정

허혜정

부분과 파편과의 결함 외엔 아무 것도 아닌 물화된 관계는, 에로틱하다기보다는 포르노그래픽하다. 일찍이 우리 시단에서 이 물화된 관계의 불구성에 대한 시적 담론을 가장 의미있게 생산한 시인은 단연코 채호기이다. 사랑과 생식이 가능한 성이 아니라, 에리히 프롬이 ‘소도(sodomy)’라 언급한 불구적 성이 그의 시에는 가로놓여 있다. 영혼과 정신, 육체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찢겨진 채 달리고 있으며, 번성하는 자본주의는 무한히 소비될 수 있는 쾌락의 파편을 생산한다. 인위적으로 성적 상상을 자극하는 광고, 영화,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시스템은 거의 방류의 수준으로 성의 기표들을 쏟아놓는다. ‘충동’의 문법을 따라 현대인은 철저히 물질을 좇아간다. 갈증과 매혹이라는 에로틱한 유인력은 잔혹하게 파괴되고, 오로지 감각의 교환에 다름 아닌 음란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다. 이러한 시대의 무의식을 재현하는 젊은 시인들의 스타일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하자.

너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이미 네 기억은 삭제되었구나
푸른 물에서
살점들이 떨어져 내리고 빛나는 은빛
강철이 널 휘감을 때
나는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지

기억하지
거리에서 넌 바퀴에 깔려있었지
창자가 사람들의 발 밑에 널브러지고
너의 남은 뼈에서 벌레가 기어나왔지
흰 가운입은 자들에게 둘러싸여
앰뷸런스에 넌 실려가고
조간신문에 네 얼굴은 관념적으로
인쇄되어 나왔지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 바퀴소리를
들으며 넌 깊은 잠을 잤지

붉은 주단이 깔려있는 낭하를 지날 때
방문엔 은빛 케이블이 탯줄처럼
흘러나와 있었지
방 안에선 딸각 딸각
숨 쉬는 소리가 들렸지

너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이미 네 몸은 차가워졌구나
사람들은 너의 피로 물든
붉은 주단의 여관을
딸각 딸각
클릭하고 있었지

― 이재훈, <붉은 주단의 여관> 전문

위의 시는 ‘붉은 주단의 여관’으로 비유되는 성적 공간, 어쩌면 ‘은빛 케이블이 탯줄’처럼 늘어져 있는 인터넷 속의 가상공간에서 넘실거리는 것일지도 모를 쾌락을 노래하고 있다. 이미 죽어버리고 삭제되어버린 ‘너’는 이상한 성적 교살의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그녀는 단순히 차갑게 이미지로 응결된 쾌락의 이미작 아니다. “푸른 물에서/살점들이 떨어져 내리”는 풍경, “사람들의 발 밑에 널브러”진 ‘창자’, “너의 피로 물든/붉은 주단의 여관”을 통해 보면, 그녀는 ‘관념’ 저 너머에 저장되어 있는 욕망, 궁극적으로는 대중의 꿈으로 불려나온 잔혹의 기표이다. 이 불모화된 쾌락, 섹스와 죽음의 감각은 원초적인 상흔처럼 현대 예술 속에 흐릿하게 남겨져 있다.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라는 심리분석용어가 말해주듯이, 난폭한 광기와 욕망의 이미지는 현대시에서 대단히 빈번하게 분출한다. 이러한 포르노그라피의 전략은 인식과 지시의 언어에 대한 광범위한 회의와 연관되어 있다. 즉 점점 더 증가하는 감각적인 언어, 명징한 의미로 분석되길 거부하는 시적 스타일은 극단적인 잔혹으로 돌변할 수 있는 충동과 감각을 좇아간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탈정치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잔혹해진 쾌락은 현대문화의 거울효과 혹은 일종의 마취증을 영사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정치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비이성적인고 ‘장소 없는’ 욕망의 담화는, 실제로 현대문화의 풍경과도 상당히 흡사한 바가 있다.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로 도시를 휘젓고 남성의 시야를 ‘공격’하는 마네킨같은 여자들처럼 그들의 시는 인공적이고 도시적이며 가학적이다. 마치 포르노그라피처럼 현대시 속에서도 육체는 다리, 얼굴, 배꼽 등으로 다자인되어 독자의 욕망을 공격한다. 더 나아가, 육체의 기관성을 금속성으로 바뀐다. 날카롭게 조각나고 분해된 기계성, 금속성의 이미지는 자아의 심리적 육체의 파편성을 ‘전시’한다. 인공적으로 복제된 육체, 부품으로 잘려나간 기관들, 광택질의 머리칼, 뻣뻣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앤드로이드의 이미지들은 꿈의 스크린 속에서 끝없이, 조각과 부분으로 흩어져 방류된다. ‘딸깍딸깍’ 손가락이 선택하는 이미지처럼, 끝없이 옷을 바꿔 입듯, 기호적 소비를 요구하는(혹은 연출된) 육체는, 파트너의 미끄러짐, 즉 끝없이 환유를 따라가는 포르노그라피와 유사한 원리에 지배받는다. 극단적으로 분해된 기표들의 조합들은 현대인의 지적인 병증과 자의식의 파산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파편화는 끝없는 주체/세계의 틈을 벌림으로써 공포의 나락으로 바뀌기도 한다.
사회적 관계를 전복하고 사유의 형식을 공격하는 포르노그라피의 전략을 우리는, 하드코어적인 감각을 통해 현대인의 딱딱하고 차가운 심장의 공포를 노래하는 현대시 속에서 익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감각의 악귀’와도 같은 잔혹한 육체숭배는 현대시의 곳곳에서 출몰한다. 공적인 자아, 정체성을 무시하는 포르노그라피가 근대의 미학에 승리한 현대의 미학을 대변하듯, 인격적 전체성을 호명하는 사랑이 아니느 부분과 파편, 대체를 요구하는 페티시즘은 오늘날의 젊은 시인들의 감수성을 요약한다.

- 허혜정, <딩아돌하>, 2008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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