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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1.31 올랭피아

만(灣)

시詩 2008. 2. 3. 00:32

이재훈


웃음이 사방에 번지는 날.
선생님께서 묶어놓은 밧줄을 풀고
거리를 나섰다.
몸에 핀 동그란 열꽃이
펑펑 터져 붉고, 푸르고, 검은 파문이
살갗에 차올랐다.
얼굴 없는 안개의 밤,
죽음의 그림자를 막연하게 살피던 밤,
한밤 내 웃었다.
접힌 주름 사이로 웃음의 까닭을 세어보는데
온몸이 얽어 있었다.
밤새 축축하고 끈적해진 공기가
얽은 피부를 핥고 있었다.
숯덩이처럼 뜨거운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보석을 입안 가득 물고 있었다.
몇 백 년이 흘렀을까.
놀라운 비약이 있었고,
시대는 공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행복과는 먼 밤들을 채워나갔다.
간혹 알몸으로 욕조에 들어가
낯선 배꼽을 만졌다.
움푹, 깊숙한 골이 생겼다.
웃음의 까닭도 모르고
자꾸 웃고만 있었다.

_ <작가와사회>,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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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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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피아

시詩 2008. 1. 31. 10:3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네, 올랭피아

얼굴을 폭로하지 않겠다. 다만 네 몸만 열 수 있으면 되겠다. 나는 단정하며, 울지도 않으며, 매달리지도 않는다. 널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관심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들만 보았으면 더없이 좋겠다. 나는 검고 너는 하얗고, 나는 몸을 숨기고 너는 발가벗었다.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는 너는, 파렴치한 부자들도 풍요롭게 받아들일 줄 아는 너는, 신성한 오로라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병적이고, 너는 유희적이야. 나는 머릿기름을 발라 올린 단정한 남자를 좋아하고, 너는 술 취한 밤처럼 헝크러진 머리칼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지. 나는 영혼이 없고, 갈망이 없고, 희망도 없지. 너는 사랑 하나면 된다 했지.

금빛 구두를 벗지 않았으면 좋겠다. 금빛 팔찌를 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머리의 꽃장식과 별처럼 앙징맞은 귀걸이도 그냥 그대로면 좋겠다. 이방인의 세계야, 아아, 분신(焚身)이 아름다운 세계야. 코카인을 가득 털어 넣고 몸을 내어주면 더더욱 황홀한 세계야. 그렇지만 내 꽃은 빼앗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도둑처럼 훔쳐만 보고, 너는 성녀처럼 기도하지. 내 몸엔 새가 쪼은 흔적으로, 꽃가지가 할퀸 상처로 가득하지. 나는 온몸에 덮을 천이 필요하고, 너는 목과 손과 발에 장식할 금이 필요하지. 왼손으로 가린 너의 음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너는 언제나 아름다운 행위만을 원하지. 아아, 나는 눕고 싶어. 네 몸을 잊고 신비한 밤을 맞고 싶어. 달창난 내 피부가 아니라, 네 몸에 풍기는 값싼 향내를 사랑하고 싶어. 너무 많이 생각했어, 너무 많이 두려워했지. 너는 아름답고, 나는 추한 하녀지. 하얀 침대가 젖빛으로 가득한, 나른한 오후지.

_ <작가와 사회>,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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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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