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구름을 오고간 시인

 

 

이재훈

(시인)

 

 

 

김충규 시인은 2012년 봄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를 발표하고 마치, 오래도록 잠을 자려고 작정한 것처럼 이승의 옷을 서둘러 벗었다. 정말 ‘아무 망설임 없이’ 훌쩍, 잠들어버려 남아 있는 많은 이들을 애통하게 했다. 우리는 어느 지방 행사에 축시를 낭송하러 함께 간 인연으로 친해졌다. 처음엔 지방행사 귀퉁이에서 홀대받아 서러운 마음을 서로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이는 서로의 속마음에 헛헛한 웃음만 지었다. 저녁이 되자 너나없이 속엣 것을 다 풀어헤치며 시인으로서의 삶과 시 쓰기의 지난함을 고해성사하듯 한풀이했다. 그날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지 못했다. 통음을 하며 비슷한 족속들끼리 주고받는 쓴웃음을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구겨넣으려 했다. 그 후로 나는 과분하게 충규형의 사랑을 많이 받는 동생이자 시의 동력자로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김충규의 시는 사막에서 일구어낸 뜨거운 통증이었다. 마치 마음이 데일 것처럼 뜨거운 그의 통각과 허무는 시간성이 탈각된 언어 이전의 어떤 느낌이었다. 사막을 홀로 터덕터덕 걷는 낙타의 상징을 온몸에 분칠한 채 시에 온 생을 밀어 넣는 모습에서 시인의 가장 매력있는 순간을 언뜻 보기도 했다. 김충규의 시는 사막에서 혼자만 울부짖은 건 아니었다. 사막은 시인이 가장 빠르게 혹은 무모하게 먼저 택한 공간일 뿐이다. 그 길고 긴 사막을 빠져나와 물을 찾고 물속의 사원을 찾았다. 그러면서 시인에게 투영된 통증의 그림자를 수도자의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시간을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충규의 시는 늘 남과는 다른 강력한 고통의 자양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또 김충규만의, 김충규에게 가장 적절한 언어의 옷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행복을,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 아름답게 그려냈지만 종내에 남는 것은 아픈 말들이었다.

김충규의 시가 사막에서 물을 찾아 나서고, 그것도 모자라 공중을 배회하다가 몽상의 숲에까지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며 머리를 몇 번이나 끄덕였는지 모른다. 완전하고 완벽한 시는 이 세상에 없을 테지만, 완전한 시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김충규의 뒷모습을 보며 또한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김충규는 나중 ‘구름’에 제 존재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어둡고 축축한 비극이 구름으로 치환되는 찰나가 참 멋있었다. 그의 유고시집이 나온다니 그 구름 한가운데 “공중의 화원에서 수확한 빛”을 “몰래 당신의 침대 머리맡에 놓아주”고 싶은 날이다. 김충규 시인이 제 “심장을 꺼내 먹여” “숨을 얻고 허공을 헤엄친” 수많은 독자들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한 날이다. 그 흔한 그립다는 말이 너무 모자란 날이다.

 

_ 김충규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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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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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弔詞)


낙타의 시인 김충규.
당신은 낙타의 짐을 홀로 지고 몽상의 숲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순백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모두 당신의 고통과 삶의 무게와 슬픔에 적잖이 놀랐고, 그 모든 통각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당신의 시를 보며, 뛰어난 시인이 출현했다고 귓속말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시 밑에 적혀 있는 당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우리들 모두 당신보다 당신의 시를 먼저 만났을 겁니다.
당신은 태어나자마자 얻은 흉터와 같은 언어로 뜨거운 마음을 잠시 식혔겠지만, 당신이 시단에 제출한 언어는 저 막막한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고독한 단독자의 발자국 같았습니다.
당신이 온몸으로 발열하여 새긴 오감의 언어들을 이제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깝고, 너무도 원통하고,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더 오래오래 계셔야 할 분인데, 왜 이리 서둘러 저 먼 길을 가셨냐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니 이 참담한 울분을 이루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마지막까지 오로지 시였으며, 시인이었고, 시인으로 남았습니다.
몽상의 숲에서 거둬들인 당신의 마지막 말들은 온통 시 얘기뿐이었습니다. 완전한 시, 완벽한 시라는 불가능을 향해 늘 온몸을 불살랐던 당신의 열정을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할 겁니다. 당신의 뜨거운 말이 우리의 가슴으로 밀려들면 축축한 물의 언어가 된다는 신기한 체험을 자꾸만 곱씹어봅니다. 잊지 않으렵니다. 당신의 시와 살냄새 풀풀 풍기는 당신의 문장들을.
당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늘 자상하고, 따뜻한 시인이었습니다. 늘 아내와 자식들을 걱정했던 성실한 가장이었으며, 친구들에게는 의리있는 사내였고, 자신의 시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엄격한 시인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저희들이 부끄러운 밤입니다.
남아 있는 저희들이 서러운 밤입니다.
당신은 끝내 시인이었다는,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가장 소중한 추억을 남긴 채
저 먼 나라로 몸을 뉘이셨습니다.
이제 행복한 시만 쓰며
부디,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소서.

남아 있는 시인들의 말을 대신 받아
이재훈 올림.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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