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오늘의 한국시는 이분법적 틀로 거칠게 재단하거나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의 경향과 세대, 방법론, 지향점 등을 반으로 양분하여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놓고 작품을 평가한다. 많은 시인의 경우, 딱히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는 게 부적절하다. 양극화된 사회를 반영한 탓인지, 이분법적인 잣대로 인해 시의 고유한 개성을 상실한 채 두루뭉술한 평가에 묻혀 있는 시인들 또한 많이 있다. 사실 이원적 대립으로 현상을 보는 인식은 오래되고 본질적인 방법이다. 기호의 본질은 다른 기호와의 차이와 구별에 의해 그 의미가 인식된다. 그러나 탈구조주의 사회에서는 차이를 벗어나거나 없애는 것을 지향한다.
시창작의 현장에서 많은 시인들은 자신의 경향과 다른 시편들을 좋아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고백하는 서로 다른 시에 대한 애정은 평단의 평가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번 기획은 시인들이 서로의 시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이 쓰는 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시, 자신의 태도와 경향과 가장 먼 시를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보자는 기획이다. 많은 시인들은 자신의 경향과 먼 시를 선정함으로써 역으로 자신의 경향이 드러남에 대해 고심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인들이 기꺼이 성실한 시읽기로 참여해 주었다. 이번 기획의 청탁 대상은 최근 본지에 작품이나 글을 발표한 시인들은 가급적 제외하였고, 1980년대 시인부터 2000년대 시인까지 활발한 시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인들로 선정했음을 밝힌다.
김백겸은 젊은 시인 김경인의 「네 눈동자」를 읽었다. 김경인의 시는 밤을 사유와 신화의 그물에 가두어 해석하는 자신과 다르게 풍경의 이미지만 가지고 내면의 상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한다.
조원규는 브레히트의 시 「바퀴 갈아 끼우기」를 선정했다. 조원규는 브레히트의 시에서 도발적인 사유가 빚어내는 아이러니의 대담함과 유머를 읽는다. 그것은 시인이 갖지 못한 문학적 자질들이다.
정한용은 박상순의 「나는 시간을 만든다」을 읽고 있다. 정한용은 “박상순의 시는 상상에서만 가능한 세계, 즉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결국 “박상순을 기존의 어떤 범주에 집어넣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최영철은 김언희의 「일식」을 읽었다. 시인은 “나와 비슷한 경로를 밟아 완성된 시보다 나와는 다른, 그래서 좀 낯설게 여겨지는 시들을 좋아하는 편이다”고 말한다. 헛된 기대와 막연한 몽상을 박살내며 세계를 박살내고 체면을 집어던지고 웃통을 벗어던지고 속 시원히 세계와 맞서는 시로 김언희를 꼽고 있다.
성선경 또한 김언희의 「출가」를 꼽았다. 김언희 시인의 시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자해적이고 위악적인 시어들, 안일한 사유에 갇혀 있는 기성의 시단을 흔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한다.
이경림은 강은교의 「자전自轉」을 읽었다. 시인은 강은교의 시에서 그 이전의 여성시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대담하고 광활한 우주적 질서를 보았고 그 속에서 하릴 없이 스러져 가는 모래보다 작은 존재들의 슬픈 운명을 보았다고 전한다.
서안나는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을 읽었다. 그는 “김행숙 시의 특성은 우연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건의 진술들이 겹쳐지고 있다. 이때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통한 내밀한 독백에서 탈주하여 객관화된 주관적 경험들은 각기 특이한 목소리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맹문재는 신달자의 「저 산의 녹음」을 읽었다. 맹문재 시인은 지금까지 성을 다룬 시를 발표한 적이 없고 페미니즘을 다룬 논문을 여러 편 썼지만, 창작을 통해 추구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여성들의 주체성을 적극적으로 나타낸 신달자의 시를 선정했다.
김태형은 송찬호의 「기록」을 읽었다. 니체와 달리, 시인의 펜이 찍어 쓸 잉크는 피가 아니라 이 도시 밑을 흐르는 썩은 폐수이며 그 결과물이 바로 「기록」이라고 전한다. “‘코끼리’는 문명의 온갖 더러운 폐수와 거품처럼 실체도 없이 무한히 확대 재생산되는 자본의 음흉한 거짓 기호, 텅 비어 있는 시뮬라크르 속에서 탄생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원은 조용미의 시를 읽으면 슬프고 내장이 꿈틀거리듯 아프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울 수 없고, 울지 못하게 하는 시가 조용미의 시라고 한다. 조용미 시의 지독한 견딤의 언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종환은 생명의 숭고와 깊이에 깊이 천착해온 시인이 김지하 시인이라고 말한다. 김지하는 여전히 은산철벽 앞에 딱 한 걸음이 유예된 삶,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 매화 같은 추위와 고독의 삶, 그러한 삶의 궁극 속에 “세 거룩한 빛과 일곱별, 풍류가 살풋 숨어”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유종인은 이하의 「大堤曲」을 읽었다. 유종인은 “이하라는 사내는 저마다 다르게 품고 있는 허무의 사랑, 사랑의 허무로 오늘 우리들 가슴 속에 스며 있다. 그 체위를 달리하는 눈길만이 다를 뿐이요, 그리하여 가장 비천하고 비천한 신분과 가장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사물과의 연대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내의 죽음은 그 몸뚱이만을 버렸을 따름이다”고 얘기한다.
김점용은 김소월의 「먼후일」을 읽었다. 김점용은 “소월의 시는 대책이 없어서 좋다. 그냥 처연하고 안쓰럽다. 거기에는 어떤 비극적인 운명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시적 언어의 운명이 체계와의 싸움이라면 소월의 체계는 운명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다.
김언은 최영철의 「토마토」를 읽었다. 최영철의 시를 두고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이야기. 이것은 살아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을 키워주면서 부풀리는 이야기. 거기서 우리는 삶의 한 정점을 보고 죽음의 반대편에서 빛나는 눈부심을 보고 잠시 웃는다. 아주 잠시 죽음을 잊게 하는 이 시를 두고 내가 써왔던 유령의 시들이 언짢아해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이영광은 조연호의 시를 읽었다. 그는 조연호의 시를 가리켜 시는 어렵지만 읽히는 시라고 말한다. 또한 조연호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바를, 특이한 수사학적 긴장을 통해,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쓰는 시인이라고 말한다.
조정인은 서정춘의 시를 읽었다. 조정인은 시 쓰기에도 각자 구별되는 엄연한 패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택한 것이 서정춘 시인이다. 시인은 “자신이 레이어드룩을 즐긴다면 서정춘의 패션은 간명한 절대 미감만을 추구한다”고 한다.
박상수는 송경동의 「잃어버린 안경」을 읽었다. 일하면서 시를 써보려고 했던 시인의 체험이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다. 작업장에서의 체험을 시로 쓸 때, 무엇보다도 그때처럼 은유와 상징이란 것이 위선적으로 보일 때가 없다는 것을 시인은 체험한다. 시인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어쩌면 뼛속까지 ‘쁘띠 부르주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이지는 최금진의 「웃는 사람들」을 읽었다. 최금진의 가난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참혹하고, 애써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세상과 끝없이 불화를 일으키고, 화해도 없음을 엿본다. 또한 자기염오를 통절하게 드러내는 최금진의 시를 ‘계통’의 문제와 결부되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육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읽는다.
고현정은 신용목의 「틈」을 읽었다. 시인은 마음의 금에 주목한다고 한다. 신용목의 “시가 반짝이는 소중한 영역. 그리고 그 주변. 시인은 현학적인 표현에서 물러날 줄도 안다. 나를 화나게 하고 그를 애처롭게 한다. 이건 순전히 내 마음대로의 시 읽기 방법이다”고 말하고 있다.
김경인은 김남주의 시 「자유」를 읽었다. 김남주의 시에서 “역사와 함께 하는 삶이 있다. 시를 무기로 삼는 전사의 촌스러움이 있고, 시 아니면 안 되는 절실함이 있다. 시 이전에 삶이 있고,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운동성이 있다” 말한다.
박진성은 김언의 「유령-되기」를 읽었다. 그의 시를 “오래 듣는 일에 골몰해 있던 사람이 해주는 나지막하지만 의미심장한 전언”으로 말한다. 거기에서 “유령은 실체가 없으므로 보이지는 않지만 잠행의 형식으로 ‘모든-사람이-되는-것’(들뢰즈)을 수행하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한다.
임현정은 나희덕의 「저 숲에 누가 있다」를 읽었다. 자신의 시가 “고무공처럼 튀어서 어두운 도시 막다른 곳에 다다른다면 그녀의 시는 느린 걸음으로 와서 나를 깊은 숲으로 데려가거나 때론 불이 꺼진 방으로 데려간다”고 말한다.
장석원은 정지용의 「비」를 읽었다. 장석원은 정지용 시의 고요가 좋다고 한다. 또한 “정지용이 건설한 이 종교적 침묵의 사원이 날 맑게 한다. 나는 극단적 침묵의 세계를 가득 채운 팽팽한 긴장에서 정지용의 힘을 느낀다”고 전한다.
김성규는 진은영의 「유괴」를 읽었다. 김성규는 “진은영의 시는 하나의 관점으로는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발랄하면서도 어둡고,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이다”고 말한다.
김안은 이시영의 「네슬레」를 읽었다. 이시영의 시편들에서 “죽은 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듣는다. 또한 “이 육성은 산문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를 시이게 하는 근원적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한아는 박인환의 「무도회」를 읽었다. 시인에게 박인환은 “최초로 문고리를 잡고 들어갔던 집”이다. 그에게 박인환의 기억은 “지금 다른 어느 집보다 시공간적으로 멀지만, 심리적으로는 가장 가깝다. 애증이 그만 왈칵 사무친다.”고 말한다.
이현호는 김영승의 「반성 21」을 읽었다. 그는 “「반성 21」은 그나마 그런 위악마저도 보이지 않고, 평이한 진술에 머물러 있었다. 한데 그 시가 이상하게 마음을 적시고 여운을 남겼다. 비시적非詩的인 것이 가장 시적인 이 역설.”이라고 이 시에 대해 말한다.
주영중은 진이정의 「생각에 대하여」를 읽고 있다. 그는 “진이정 시는 과잉의 언어를 추구한다. 구심력을 위한 말보다는 원심력을 위한 말들이 많다. 원심력으로 인해 튕겨나가려 하는 말들, 아니 그 힘이 미치는 자장 너머에서 또 다른 힘으로 작용한다”고 전한다.
다른 경향의 시는 자신이 쓸 수 없는 시이기도 하고, 자신이 놓쳤던 세계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시들을 애정으로 읽어보면서 자신의 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하였다. 앞으로 경향이 다른 시편들에게도 애정을 갖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_ 현대시,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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