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문(拷問), 나의 주인
대자본의 영웅인 바퀴들
톱니바퀴에 대해서라면 얘기하고 싶어
나는 정치를 모르고 돈을 모르지
감각의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광대
모호한 질서들이 난무하는 도시의 산책자
- 이재훈 「결락(缺落)」중에서
바람이 분다. 아니나 다를까 목이 다시 아파온다. 고추장을 찍어 한 입 먹다가 창밖을 본다. 누가 고추장 같은 벌건 노을을 하늘에 처발라놓았다. 언젠가는 남해바닷가 끝자락에 가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유보된 삶이 도시변방을 산책 한다. 누가 말한다. 남해 끝자락이라고! 요즘은 그런 곳이 더 비싸!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각본을 쓴다. 때때로 운명을, 예언을, 고통을 몸에 문지르며 자본주의에서 자꾸 멀어져 가는 일에 대해 쓴다. 다가가면 자꾸 멀어지는 이상한 삶이다. 이 도시의 ‘톱니바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와 분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뜻일 테다. 그 속에서 소외와 고독, 불안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뜻일 테다. 문학행위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하여, 문학이 노동이 되기 위하여서는 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계획 속에는‘언젠가는’이라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숨겨져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끝없이 마찰을 일으킨다.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톱니바퀴들은 끝없이 제 살에 상처를 내며 또한 고장이 나고 만다.
이재훈 시인은 톱니바퀴의 세상에서의 불화를 ‘결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낸시 헤드웨이의 <세계 신화 사전>에 의하면 어리석은 험담꾼과 뇌물을 건네는 자들을 위한 방으로 ‘톱니의 방’이 있다. 시인에게 이 ‘톱니의 방’은 “아주 작은 나사와 구멍들이 얽혀있는 공장”이다. “톱니바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자신의 심리에 대해 거울 속의 자신에게 속삭이듯이 어조는 다정하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누구에게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톱니바퀴’속에서의 삶은 ‘몸’과 ‘톱니바퀴’를 동일하게 만들어버린다.
톱니바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이 세계는 아주 작은 나사와 구멍들이 얽혀있는 공장
사실 말이야
하늘도 구름도
빛과 공기의 구멍들이
서로 교합한 증거물들
톱니바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쉬지 않고 몸에서 소리가 나지
째깍째깍 죽음을 단축시키는 소리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톱니바퀴
- 이재훈,「결락」(<시와표현>, 2011년 창간호) 부분
이재훈 시인에게 도시는 “모호한 질서들이 난무”하는 곳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모호하게 잘 어울려 돌아가는 곳. 시인은 적응해야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이재훈 시인의 다른 시 「밀랍蜜蠟」을 보자.
나의 기착지는 어디일까
뼈들이 비대하게 자라고
피의 색깔이 변하는 이 도시
스스로의 시간에 묶여
하늘의 목소리는 듣지 못하지
어제는 네 시간을 준비하고
두 시간을 강의하여 차비를 얻어왔지
싸우고 차지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지
내장을 편하게 하는 법칙들
홀로 슬프고, 홀로 애달픈 몸의 성분들
-이재훈,「밀랍 蜜蠟」(<현대문학>, 2011년 6월호) 부분
위 시에서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고통이 배여있음을 알 수 있다. 정작 시인 자신은“싸우고 차지하는 법을”살아내지 못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그런 삶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서있다. 두 편의 시에서 만져지는 것은 자아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하는 이의 고독과 원죄의식이다.「결락缺落」에서 “잉태의 소리가 가득해”라는 문장은「밀랍蜜蠟」에서 다시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 마오/ 이 땅이 당신에게 어머니를 선사했잖소/어머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오/당신의 피를 받아 마시는 신비의 여인이오/당신이 체험했던 가장 깊고 따뜻한 말”이라는 문장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두 문장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결락缺落」에서의‘잉태’가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다면 ‘어머니’는 한없이 따뜻한 의미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톱니바퀴’의 몸은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무언가를 잉태하지만 정작 중요한‘어머니’를 잃어버렸다. “당신이 체험했던 가장 깊고 따뜻한 말”인 ‘어머니’에서 시인은 상실한 존재자, 시인 자신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정치와 노동, 분배의 문제는 언제나 불리하다. 그 어떤 싸움에서도 유리하지 않다. 시인은 “감각의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도시의 산책자”이기에 “정치를 모르고 돈을” 모른다. 그러나 정치와 노동, 분배와 연대에 익숙해져버린 자들과 함께 생존해가야 한다. 몸의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몸이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는 곳. 이런 도시의 풍경을 이재훈 시인은“비릿한 고통의 풍경들”이라고 한다.
몸을 만져보면
구멍 난 몸 여기저기서 물컹한 피가 흐르지
아프지않고 따뜻해
추억이라 하기엔 낭만적이지
이미 오래전 언약된 여행
자 이제 갈 때가 되었지
-이재훈,「밀랍蜜蠟」(<현대문학>, 2011년 6월호) 부분
시인의 예언처럼 “이제 갈 때가” 되었다. ‘언젠가는’은 너무 빨리 올 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있는 이의 얼굴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몇 번이나 더 만나 밥과 술을 먹고 남의 험담을 하고 손을 흔들게 될까. 언젠가는 남해끝자락 작은 마을에 가서 살고 싶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면 이 도시의 변방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당신을 향한 증오와 사랑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에.
_ <시와경계>,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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