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음악이 기도라면

 

이재훈

 

 

우울한 음악을 좋아했다. 한때는 병적으로 좋아했다. 남들은 사춘기에 겪는 우울을 늦게서야 앓기 시작했다. 까닭 모를 우울을 친구로 삼았다. 늘 땅만 보며 걸었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용인하지 못했다.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우울한 곡들이 되레 위로가 되던 시절이었다. 요절한 유재하를 그리워했고, 김현식이 사망한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절이었다. 나중 김광석이 자살하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우울하고 거칠고 처절한 곡들만 탐하면서 스스로 유폐된 채 말도 안 되는 문학의 성채를 쌓아가던 때, 여러 음악들을 만났다.

<글루미 선데이>는 위험한 곡이라고 했다. 이 곡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고 한다. 음악이 가지는 전설이나 풍문은 자주 김을 빼게 만든다. 막연한 기대는 막연한 느낌만을 남기고, 우월한 기대는 부정적인 느낌을 만들기 마련이다. 글루미 선데이가 내겐 그랬다. 너무 대단한 곡이었지만,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곡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조금 우울했고, 조금은 편안했다. 빌리 홀리데이가 부르는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좋아서 미치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레이 찰스가 부르는 글루미 선데이는 낭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노래 때문에 일요일이 조금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일요일은 원래 그런 날이니까.

사랑은 내 생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누가 이 우울하고 폐쇄적이고 백수인 스무 살의 청년을 좋아할 것인가. 하지만 우울한 백수 청년에게 감지되는 모성적 연민을 사랑의 느낌으로 착각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다. 잠깐씩 연애도 아닌 연애 비슷한 것을 하기도 했다. 손을 잡았던가. 눈빛을 마주 했던가. 입을 맞추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연애를 하며 우울한 음악을 많이 들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세상의 모든 우울이 나라는 필터를 통해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영혼의 기품으로 변화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사랑이라는 마음을 건드릴 수도 있을까 바랐다. 참으로 치기어린 마음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위로였다. 음악이 나를 위로할 때, 한없이 자유로운 공기를 느꼈다.

무슨 음악들이 있었을까. 개빈 브라이어스의 <Jesus'Blood Never Failed Me Yet>. 나중 탐 웨이츠도 불렀다. 음악이 너무 길었지만, 긴 음악이 가지는 오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약물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의 <Between The Bars><Miss Misery>는 한때 어둠이 밀려올 때마다 듣고 싶었던 곡이었다. 존 서먼의 바리톤 섹소폰은 압권이다. 존 서먼의 <Private City> 앨범을 틀어놓으면 시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내게 가장 처절하고 우울한 곡은 마우로 펠로시였다. 마우로 펠로시의 <suicidio><Al Mercato Degli Uomini Piccoli>는 한없이 가라앉고 끝도 없이 침울해진다. 매번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였다.

우울한 음악들을 예전처럼 많이 듣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경쾌함보다는 우울함 쪽이 훨씬 좋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우울한 음악들을 통해 더 우울해지려는 것보다는 그 우울함을 즐기며 견디려했던 것 같다. 음악이 주는 덕목 중에 성찰이 있다면, 우울한 음악은 그 덕목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경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죽기 전이라면? 아무리 우울해도 죽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죽음은 용기와 태도와 실존의 자긍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면 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옆에 함께 있었던 강도의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혼의 구원과 용서와 감사와 회개가 점철된 가장 나약한 자의 고백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자주 내 입에서 흥얼대는 노래다. <Amazing grace>. 우리나라에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가로 번안되어 있다. 마할리아 잭슨이 불렀던 Amazing grace, 사랑과평화가 불렀던 Amazing grace, 윤복희와 인순이가 불렀던 Amazing grace, 박정현이나 소향이 불렀던 Amazing grace. 그 모든 Amazing grace가 내게는 모두 뜨거운 벅참이다. 전주 부분에 파이프 오르간이 깔리는 마할리아 잭슨의 곡이라면 더욱 좋겠다.

- <더 멀리> 마지막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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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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