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큰 물고기를 잡았다.
한 아름이 넘치는 몸집이었다.
혹시나 죽을까 물고기를 수족관에 넣었다.
물고기의 눈이 나와 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고기는 내 자랑이었다.
눈물도 없이 날 바라보며
몸을 뒤채는 성실한 영혼.
동네 형들이 내게 침을 뱉던 날.
하얗다며 얼굴에 진흙을 바르던 날.
공중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오줌을 내갈겼다.
붉은 얼굴로 욕하는 연습을 했다.
다행히 집엔 물고기가 있었다.
수족관 유리에 입술을 대고 혀를 내밀었다.
차갑고 막막하여 아름다운 감촉.
침묵을 알아버린 호흡.
나는 방안에 박혀 물고기와 놀았다.
온몸이 달아올라 수족관에 다리를 비볐다.
물고기 때문이었다.
악한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풀밭 위에 누워 한없이 울게 된 것은.
나는 시퍼런 칼을 든 모험의 소년이고 싶었다.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방법쯤은 알고 있었다.
침착하고 고요하게 모두 죽이고 나면,
평정이 온다는 것을.
그것이 운명일지라도.
물고기를 호수에 풀어주었다.
물에 놓자마자 내 발등을 핥고
허벅지를 핥고 사타구니를 깨물고는
서서히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슬쩍, 물 위에 비치는 내 몸.
온몸에 비린내가 났다.
가랑이에서 썩은 내가 났다.
난삽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과분하게 영원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 <리토피아>, 2008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