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시인 이상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시인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 1910~1937). 만 26년 7개월을 살다 요절한 천재 시인. 시인 이상의 이름 앞에는 늘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이상의 시는 늘 가장 문제적이었으며, 지금 현재에도 가장 문제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한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탈장르, 새로운 실험과 전위 미학 등의 말들이 등장할 때마다 가장 최전방에 서 있던 시인이다. 이미 한 세기 일찍 모든 문학적 실험들을 가장 개성적인 문학적 태도와 신념을 가지고 구현해 나간 시인이다.
2010년은 시인 이상이 탄생한 지 100주년 되는 해이다. 많은 문학 단체와 지자체와 예술 각 방면에서 이상을 추모하고 기리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교하아트센터에서는 이상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상이 문을 열어 가게를 시작했던 ‘제비다방’을 모티브로 한 작품전을 갖는다. 이상이 차렸던 ‘제비다방’은 2년여 만에 문을 닫아 실패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당시 김유정, 박태원 같은 문화 예술인들이 문우의 정을 나누고 문학과 예술을 논하던 장소였다. 그런 의미에서 제비다방은 유럽의 살롱과 같이 중요한 문학적 생산처였으며, 문인들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더불어 이상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연내 마련된다고 한다. 이상 100주기를 추모하는 학술행사나 출판 등도 활발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이미 출간된 이상 전집뿐 아니라 이상 관련 서적이 출간을 준비 중에 있다. 가수 조용남도 이상 시 해설서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최근 출간했다.
이상을 추모하고 기리는 행사는 외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한국의 예술가 20여명이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 이상을 기리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문화예술기획모임인 ‘랩 201’은 파리시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복합문화공간 라 제네랄과 공동으로 ‘2010 파리/서울 이상-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상은 시뿐만 아니라 소설, 건축가, 예술 곳곳에서도 후대에 큰 영향력을 끼친 문인이다.
이상의 삶은 괴팍하기로 소문나 있다. 평생 폐결핵을 앓았으며,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이상은 이발업에 종사하던 부친을 이른 나이에 떠나 백부 밑에서 성장했다.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취직하였지만, 적응을 하지 못해 곧 그만두었다.
1931년 처녀시 <이상한가역반응>, <오감도(烏瞰圖)>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4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다. 그러나 이 연재시는 한국 문단을 통틀어 가장 문제적인 독자들의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상은 이천 점의 작품 중에서 삼십 편을 고르느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문법 파괴, 띄어쓰기 무시, 이해 불가능한 수사 등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이상의 시에 당황했다. “무슨 미친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당장 신문사로 가서 원고를 불사르자”, “작가를 죽여야 한다” 등의 격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이상의 시를 연재하기로 한 작가 이태준은 항상 사직서를 품고 다녀야만 했다. 이태준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오감도>는 30회 연재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15회로 끝나고 만다.
1937년에는 사상불온 혐의로 동경 니시칸다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한다. 그러나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향년 만 26년 7개월에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이상의 대표적인 시는 역시 <오감도>이지만, 이 시가 가지고 있는 난해함으로 인해 시의 유명세에 비해 독자들에게 두루 읽혀지지는 않았다. 대신 이상의 시 <거울>은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시가 아닐까 한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몰으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만은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 <거울> 전문
위의 시 <거울>은 식민지 시절 지식인의 고뇌를 초현실적인 기법과 무의식의 언어로 표출해내고 있는 시이다. 거울은 소리가 없으며, 거울 속에 비춰지는 나는 악수를 할 수 없는 이미지의 형상이다. 이러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재확인하고, 그것을 인지함으로 인해 지식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의식의 분열과 착란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해 시인은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있다. 이 시가 착란의 언어라고 하지만, 시의 구조를 볼 때 이성적으로 잘 질서화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시에서 보여주는 거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울 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대비해서 보여줌으로 인해 분열된 자아를 재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거울이라는 연결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된다. 이상의 성찰이 개성적인 까닭은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개성적인 주체를 서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편적인 감성과 보편적인 깨달음을 줄곧 받아왔다. 하지만 이상과 같이 전혀 낯설고, 다소 충격적인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또다른 자신을 반추하고 비춰보게 된다. 이것으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성찰을 넘어 미학적 체험의 즐거움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여름 이상의 시를 읽으며 ‘이상한 가역반응’을 느끼며, ‘무한건축육면각체’의 비밀들을 탐사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_ 논산문화,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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