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말줄임의 수사학
이재훈
(시인)
본성 회복을 반증의 어법으로 표출하는 ‘소외의 시인’
소외를 말하는 자에게는 늘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외적 혹은 내적 동인動因의 그물망이 논평의 뒤를 따라다니곤 한다. 가령, 소외의 언어가 거느리고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은 늘 자본과 인간의 상하관계 속에서 타진된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오래된 얘기지만, 소외는 결국 물질 획득을 위한 사회적 교류와 유대 속에서 발생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투입한 생산물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가치를 위해 쓰여진다는 것을 안다. 이 객체화 현상(objectification)은 노동하는 인간을 폭력적으로 만든다. 객체화가 주체의 소외를 낳을 때, 시의 언어는 인간 본성에 폭력적으로 가한 권위를 응전의 태도로서 드러낸다. 이것이 소외가 창조를 낳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소외를 말하는 일련의 언술들은 인간 본성의 회복을 반증의 어법으로 표출한다. 또한 소외의 현상이 발생하는 언어적 파장은 소외 이외의 것들을 생각지 못하게 하는 정서적 자장磁場을 함유含有하고 있다. 그만큼 소외는 절실한 삶을 생각하게 하는 충격적 반응이며, 존재 자체를 무화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실존의 무기이기도 하다. 다만, 소외의 언어를 바라보고 내면으로 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윤리적인 각성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 조현석은 소외의 시인이다. 그가 구현한 소외의 언어들은 정서적 카오스 상태에서 방금 빠져나와 더운 김을 내며 수런거리고 있다. 수사적 치장을 하지 않은 언어들은 서로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충혈된 눈으로 낯선 말을 중얼거린다. 새벽이슬이 내릴 때까지 사물거리는 감정의 편린들은 너무 큰 무게로 시인에게 연속적으로 떨어져내려, 시인은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또 다른 말을 이어간다. 그의 시편들 대다수에 차지하는 말줄임의 어법은 소외로 얽힌 내적 상황을 증언해주고 있는 방법론이다.
그럼 먼저 소외의 언어를 가지게 된 내면적 상흔과 그 내력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현대사회는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들었다. 즉 합리적 원칙에 의해 조직되는 관료제는 사회의 모든 구조를 원활하게 지탱해나가는 가장 편리한 장치이다. 그러나 이 조직화된 관료제는 개인을 소외시킨다. 굳이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문명도시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소외와 고독과 절망은 자본 문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혹독한 정신적 부산물이다.
도시 이방인의 소외와 절망적 인식, 그 외연의 확장
조현석은 혹독함을 이겨내는 힘으로 살아간다. 그 혹독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문명인의 운명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억울하다면 인간을 잡아먹는 이 거대한 문명도시를 버리면 그뿐이다. 그의 울분은 문명인이기 이전에 혼돈의 내적 상황을 시로 옮겨 적어야 하는 시인의 운명과도 일부분 결부되어 있다. 조현석은 일찍이 스스로를 ‘불법체류자’라고 지칭하며 도시 속에서 이방인임을 자처해왔다. 또한 1990년대 초 발간한 두 권의 시집을 통해 도시의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구체적인 일상의 세목을 통해 표출하였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불법, …체류자>는 그러한 시인의 정체성을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서의 삶을 하나의 허구로 인식하는 시적 테마를 통해 표출하였다.
그가 첫 번째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에서부터 두 번째 시집 <불법, …체류자>를 통과해 이어져온 도시인의 소외와 절망적 인식은 이번 시집을 통해 더욱 그 외연이 확장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생물학적 나이로 불혹을 넘긴 시인이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면서, 더욱 시인으로서 가지는 본질에 대한 갈망이 큰 실존의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곳저곳,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흩어져 있는, 함부로 뱉은 욕지거리와
근사하게 포장된 칭찬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입술 움찔거린 청탁請託과
떼로 굴러가게 만들었던 밀어密語들이여
화려한 수식어 덕지덕지 늘여 붙이며
공포스러운 백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지 못하고 써내려갔던
마구 갈겨온 단어와 문장들이여
뒤흔들면 한 자도 남김없이 떨어져나갈
비곗덩어리 살점들로
수만의 밤과 낮을 태워도 이젠 쓸모없다
볼펜 쥐어야 할 손에 다시 든
술 한 잔 또 한 잔에 늘어나기만 하는
이 검은 오물들, 냄새나는 말 쓰레기들
― 「지껄이다」 전문
그가 삶 속에서 터득한 것은 지껄임이다. 그 지껄임은 현명한 구실을 하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반성적 도구일 뿐이다. “함부로 뱉은 욕지거리”와 “근사하게 포장된 칭찬들”, “청탁請託”과 “밀어密語들”, “마구 갈겨온 단어와 문장들”은 모두 시인의 내면과 삶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부정적 지껄임의 증거들이다. 시인은 이 “냄새나는 말 쓰레기들”을 태우기 위해 볼펜을 쥐어야 할 손에 ‘술 한 잔’을 든다. 시집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 지껄임에 대한 반성은 시인이 계속해서 시의 언어를 망설이게 만드는 내면적 이유이기도 하다.
줄 세운 바지와 와이셔츠만 입은
한 사내가 담배를 연신 물고
입에서 내뿜는 연기의 꼬리가 잘릴 때마다
용틀임하는 바람의 반대로 뒤틀려 사라지고
덜컹대는 길이 그 끝에 끌려온다
기다리는 버스는 도무지 오지 않는다
시간은 담배를 쥔 손가락에 붙들려 있고
계속 피워대는 담배에 살 없는 볼만 더 패일 뿐
간혹 마른기침 커억, 컥 대고
피 섞인 침을 길바닥에 내뱉는다
버스 정거장 뒤편 대리석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펼쳐들면 끌려온 길이
그리로 꼬깃꼬깃 접혀 들어오고
감옥 같은 오피스텔에서 석방된 사람들은
폐병 걸린 버스에 실려 서울로 나가고
사내가 기다리는 통근버스는 오지 않는다
먼지 쌓인 구두 앞에 필터 끝까지 탄 수북한 꽁초들
해는 어느새 현기증 나는 정수리 위로
또다시 담배를 피워 문 사내의 몸은
신문지 뒤로 길처럼 자꾸 오그라지고
하얀 와이셔츠는 검은 먼지만 들러붙고
아침부터 그림자 길어지는 퇴근 시간까지
곯은 그 사내의 키는 아침보다 작아지고
사내가 앉은 정거장 길 건너로 라이트를 켠 버스들이
쏜살같이 달려간다, 곧 하루가 저물 것이다
통근버스는 언제 오려는지, 사내는 궁금하지 않은 듯
더 넓게 펼쳐진 신문 뒤에서 머리를 내밀거나
애처로운 눈빛도 보여주지 않는다
― 「출근하다」 전문
조현석은 많은 시편에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적 삶의 모습을 영화를 찍듯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의 시도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내의 고독과 소외, 불안을 그리고 있다. 출근하는 모습의 “한 사내”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내의 모습이다. 피로에 찌든 모습의 사내는 결국 일상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범속한 문명인이다.
문명인의 실상은 “계속 피워대는 담배”로 피로를 참으며, “피 섞인 침을 길바닥에 내뱉”는 건강을 지니고 있다. 출근하는 자들은 “감옥 같은 오피스텔”에 갇혀 있다. 버스는 “폐병 걸린” 병든 물건이다. 오지 않는 통근버스도 마찬가지이다. 하루는 곧 저문다. 사내는 통근버스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즉, 일상으로 다시 매몰될 시간을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러설 수 없어… 다가서는 아찔한… 노란 벽
받아들일 수 없어… 긴, 타인에 의한 쉼이라니
지난 이십 몇 년보다 길었던… 오늘… 하루, … 기나긴
회색 손때와 볼펜똥 덕지덕지한 책상 한가운데 덩그라니
던져진 희디흰… 봉투, … 한 일 년쯤, 푹… 쉬라는 말씀
볼썽사나운 불순물처럼 생활 위를 떠다니던 만성…, 피로
언제쯤 푹 쉬어보나 수없이 되뇌이며 쳇바퀴 돌았는데
번개처럼 내려온 강…, 제… 무급휴직
…(중략)…
새벽… 같이, 오래 묵은 습관으로 떠지는
말똥말똥한 눈과 정신…은, 아 어…쩌란 말인가
식은 새벽밥 우겨 넣고 내일도 출근할 거야, 변함없이!
정말 물러날 수 없어… 제일 먼저 사무실 문 열며
출근하는 꿈,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받아들일 수 없어…
지난 이십 몇 년보다 길었던… 오늘… 퇴근하는 하루
― 「아른거리다」 부분
문명사회의 한 개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수적이다. 무직으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우리 사회 중년의 실업은 청년 실업 못지않게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위의 시는 무급휴직으로 불안한 중년의 모습을 신랄하게 담고 있다.
시에서는 중얼거림의 어법을 말줄임의 수사를 통해 표출한다. 끊어지는 말들과 말들 사이에서 불안의 심리적 상태가 더욱 강렬하게 작용되어 느껴진다. 말줄임을 통해 불안한 감정적 편린들이 시 속에 고스란히 모여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출근하다」의 그 사내는 불안한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평범한 직장인일 것이다. 「아른거리다」는 그러한 평범한 사내가 실직의 과정을 통해 겪는 심리적 불안을 그려내고 있다.
사오정, 오륙도 등의 단어가 이른 나이에 정년을 겪는 중년을 상징하는 신조어가 된 것은 이미 잘 아는 사실이다. 45세에 정년을 하고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는 이 말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인정을 받는 한 단면을 반영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도 강제 무급휴직을 당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외의 또 다른 원인은 ‘시인으로서 가지는 자의식’
새벽같이 눈이 떠지는 오래된 직장인의 습관을 토로하는 시적 자아의 자의식 속에는 다른 심오한 이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직 정당한 노동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사실 노동 말고는 먹고 살아가는 재화를 획득할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휴직이나 실직은 이 사회 구조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 사회라는 공동구성체 속에서 이탈된 상황을 의미한다. 이탈된 자가 느끼는 불안과 소외의식은 위의 불안한 심리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실내를 휘젓던 음악마저 죽여 버리면
더욱 커지는 침묵… 웅크렸다가 머리 드는
아니, 고요함을 뛰어넘는 정적
그 무게에 짓눌리기 싫어
30촉짜리 갓등 켜고 앉는다
…(중략)…
남들 출근하는 이 새벽에는
정말이지 갈 곳은 없다는…
생각에… 깊고 깊은 자괴감이 밀려든다
이 우울 어디다 벗어놔야 할까…
사람 붐비는 지하철 역사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가니
어느새 태양은 머리 위에 있다…
― 「타고 싶다」 부분
시인(시적 자아)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나날 속에서 침묵을 견뎌야만 한다. 더욱 고독한 내면과 현실로부터의 소외가 현실임을 경험해야 한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고요함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30촉짜리 갓등 켜고 앉는” 일이다. 이번 시에서도 말줄임표와 쉼표들이 반복되면서 혼잣말과 끊지 못하는 언어 사이를 종횡으로 옮겨 다니고 있다. 도시를 살아가는 한 개체의 고독과 우울은 “남들 출근하는 이 새벽”에 “정말이지 갈 곳은 없다는…” 고백을 통해 드러난다. 마지막에 “어느새 태양은 머리 위에 있”는 장면을 통해 한 개인의 소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모든 것은 어제처럼 굴러가는 현실을 반영한다.
출근하는 자도 출근하지 못하는 자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소외의식이다. 문명사회에서 인간이 자기동일성을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이나 세계, 공동체 집단, 사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불안한 상태를 언제든지 느끼는 것이다.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원인과 이유는 문명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겠지만 또 하나의 원인은 시인으로서 가지는 자의식 때문이다.
시인은 출근길처럼 “늘 소화불량”이며 “분주하다”(「뒤틀리다」). 현실은 상황이 어찌되었든 “소화불량은 계속”되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을 제공해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인이 맡는 공기는 “비린내가 진하고 역한 도저히 맡을 수 없는 냄새”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현실 또한 “역시 바깥은 치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는 “발을 떼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진한 피비린내”(「덤벼든다」)라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사회에 살아가면서도 종내에는 편입되지 않고 이탈하고 싶은 생각에 휩싸인다. 시인은 한밤내 “세상의 온갖 말”을 듣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뿌리 내리지 못한 공중의 나무들”이 시인이며 “밤이 되어서야” “얼어붙었던 입을 푸는” 나무들 같은 존재이다. 시인이 가진 “해독할 수 없는 지하의 언어들”(「되피우다」)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다.
침묵을 통해 말을 참는 법을 배우지만 긴 침묵은 또 다른 발화의 욕망만을 낳을 뿐이다. 참지 못해 뿜어져 나오는 시인의 발화는 정상적인 문장이 되지 못하고 불편한 문장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방법을 통해 표출된다.
어떻게… 이런 곳에까지
앞뒤가 떠오르지… 않는다
도무지… 믿어지질 않는다
천연색 꿈이 꾸어지던… 그날도
검은… 것이… 나를 지배했다
만약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다면
…태양도 검고 …건물도 검고
타들어 가는 피부마저… 검을까
하나밖에 없는… 거울도 검고
거울에 비치는 눈의 흰자위도 온통
검을까… 검은… 슬픔과 고독
검은 비애… 검은 울음은 어떨까
어떻게… 이런 곳에까지
앞뒤가 떠오르지… 않는다
도무지… 믿어지질 않는다
숨을 잠시 멈추었던 것뿐인데
머리… 속은 온통 검은 것뿐
검은 과거만… 떠오르고
검은 현실 난데없이 펼쳐지고
돌아갈 수 없는, 아 피할 수 없는
검은 미래만이 여기에서…
― 「검다」 전문
대표적으로 말줄임의 수사를 보여주고 있는 위의 시는 불안하고 절망적인 자아의 심리를 표현한 시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중얼거림은 시적 자아의 분열적이고 황폐화된 정신을 나타내는 것만을 표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내면의 상흔과 정서를 토로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언어 표출방식이다.
말줄임표 사이에 숨어 있는 행간은 더욱 중요한 시인의 삶의 이력이 될 것이다. 말줄임의 정서가 배태되기까지 구체적 삶의 예증은 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시에는 정서의 드러냄만 보일 뿐이다. 소외가 가져다준 분열적 상황을 극복할 만한 방안이 시 속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외를 극복하고 내면을 치유할 방안을 찾았다면 굳이 시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통과 우울 계속 진행된다는 암시의 ‘서술형 제목들’
조현석은 이번 시집에서 독특한 시제 짓기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몇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로 끝나는 서술형을 시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서술의 제목이 시집의 통일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서술형의 제목을 통해 소외를 감싸안는 내면의 고통과 우울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암시이다. 과거에도 진행되었으며 현재에도 앞으로의 미래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암시는 시제의 서술형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좀 과장된 해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조현석의 시를 윤리적 해석의 그물망에서 자유롭게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한 조현석은 시집의 4부에서 다수의 연시戀詩를 선보이고 있다. 그대에게 보내는 연서 혹은 편지를 날것의 언어를 통해 보여준다. 자칫 4부에 놓인 연시의 시편들이 소외 극복의 방안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연시는 또 다른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아픔과 절망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더 보태어지는 것이다. 그가 깨우친 사랑은 이별의 방식을 통해서이다. 즉 기대하지 않는 것, 절망을 일찍 깨우치는 것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대략 짚어보는 것이다.
조현석이 시 속에서 내놓은 소외 극복의 방식을 굳이 말한다면, 그것은 성찰의 방식을 통해서일 것이다. 성찰의 방식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사건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화들짝 놀란다
사방이 겨우 1미터도 안 되는 샤워부스 안
알몸으로 서면 온몸에 닭살이 돋아난다
이제 성수聖水를 맞으며 고백할 시간이다
오늘 안일했지만 무사함에 역시 감사해하며
눈앞을 가리며 사각斜角으로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차디찬 물은 이미 낡은 축복이다
차고 넘치기에, 혹여 분에 넘친 저주일지도 모른다
정수리 끝에 덕지덕지 묻혀온 반나절 동안의 비굴과
머리카락에 껌처럼 매달린, 나머지 반나절의 위선과
조금 살찐 목살에 들러붙은 구역질나던 욕지거리와
토실한 견장뼈 위에 내려앉은 능청스러움 따위가
거품에 스며들어 부풀어 오르다가 하수구로 쓸려갈 것이다
비릿한 장마처럼 퍼붓는 세찬 물줄기에도 등 뒤에 달라붙은
물이끼 같은 치욕은 떨어지지 않아 움찔움찔 사타구니가 지린다
가끔 심장이 멈출 만한 회한이 왼쪽 가슴을 짓누르고
부르르 몸을 끓게 하는 상대를 모를 적대감에 놀라기도 하지만
잠깐 생각을 멈추면 다시 속은 냉랭해진다
물방울 뚝뚝 흐르는 유리문 열고 전신거울 앞에 서면
소화되지 못한 욕정에 불룩해진 뱃살이 건드릴수록
더 출렁거리는 욕심이 가슴을 마구 짓눌러온다
비쩍 말라버린 비정상의 두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경건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한 샤워로 몸은 말끔해지지만
늘 불안한 마음은 씻어지지 않는다
― 「말끔하다」 전문
조현석에게 반성의 시간은 몸을 닦는 행위를 통해 가시화된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성찰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한다. 샤워 부스에서 쏟아지는 물을 ‘성수聖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지금 현실의 삶을 고백하고 싶은 내면적 욕망 때문이다. 차고 넘치는 샤워기의 물은 “이미 낡은 축복”이라 말한다. 그의 몸에 매달린 것은 무엇인가. “비굴”과 “위선”과 “욕지거리”와 “능청스러움 따위”가 몸 구석구석에 붙어 있다. 잘 떨어지지 않는 “물이끼 같은 치욕”도 벗겨낸다. 그럼에도 “소화되지 못한 욕정”은 남아 있다. 더 출렁거리는 욕심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다.
샤워를 통해 몸을 씻어내는 행위는 시인이 터득한 성찰과 고백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명인이 가지는 지난한 삶에 대한 모든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거행한 샤워는 “경건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한” 사건이다. “몸은 말끔해지지만/ 늘 불안한 마음은 씻어지지 않는” 굴레 속에 또다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을 아는 것이다.
비어 있던 속, 기름기 없던 뱃속으로
푹 삶아진 염소가 갈기갈기 찢겨져 들어왔다
술 몇 잔과 더불어 신선한 공기도 몇 됫박
소독되지 않은 단양 하선암 생수도 몇 컵
해체된 염소 몸이 남긴 갖은 부속물을
소주 반 잔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어
배 속 깊은 곳에 가두었다
밤새 되새김질하는 염소가 운다
울음이 깊을 때마다 몸이 요동쳤다
속 편해지려고 되지도 않은 되새김질을
나도 여러 번, 하고 또 했지만
날카로운 뿔에 받혀 상처가 난 듯 꾸르르륵…
더부룩했다, 밤새 염소가 풀밭이 아닌
융단 같은 위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낮에 몸 부딪는 축구를 해서인지
왼쪽 어깨가 아파 오른쪽으로 돌아눕고
등이 배겨 배를 깔고 돌아누웠던, 아침이
다가오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그놈이 울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먼동 무렵에
잠 깨어 물안개 피어오른 계곡을 거닐 때
예전에 잠시 그곳에서 뛰놀던 염소가
세차게 방파제를 때리던 태풍 속 파도처럼 요동쳤다
빠르게 달려간 구식 화장실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시끄럽게 괴롭히던 염소를 끄집어냈다
쫘르르 쏴아아아아아… 자신이 놀던 곳으로 염소는
회오리 물살에 묻혀 돌아가려던 것이다
찬바람 불고 찬비 내리는 단양 하선암 계곡
물가에 자리 잡고 앉아 몇몇이 두런거렸던 그날
― 「울다, 염소」 전문
시집의 시에서 염소는 죽은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죽은 고깃덩이에도 영혼이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살아 있는 염소와 음식을 구분하지 않는 시적 자아는 결국 시원始原을 갈구하는 영혼을 지닌 자이다. 시인은 염소의 부속물을 뱃속에 ‘가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자아가 타자인 염소를 장악하는 방법이다. 좀 더 의미를 넓혀 말하면 시인은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 그것을 음식물로 섭생하는 인간의 폭력성을 스스로의 몸을 통해 느끼고 있다.
이러한 육식의 폭력성은 본능적인 것이다. 그러나 본능적인 것은 인간의 이성 속에서는 늘 불편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죄책감은 인간의 몸을 통해 이성으로 전달된다. 위 속에서 염소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다. 염소의 원래 자리는 “풀밭”이며 “물안개 피어오른 계곡”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시인의 뱃속에 들어찬 염소의 살점을 참지 못해 한다. 결국 배변을 통해 염소를 배출해낸다. 이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배변’은 생리적인 현상을 넘어 본성의 지점,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고픈 시인의 지향점과 욕망을 잘 표현해준다.
조현석은 이번 시집을 통해 문명인으로서 살아가는 자아의 내면을 말줄임의 수사를 통해 보여준다. 눈여겨볼 것은 시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을 해부하듯 그려내고 있는 소외의 발화가 점차 사물로 전이된다는 점이다. 말하고 있는 자는 여전히 시인이지만, 말하는 자가 그려내는 대상은 ‘안’에서 ‘바깥’으로 옮겨가고 ‘자아’에서 ‘타자’로 이동된다. 자아가 바라보는 풍경 또한 자아의 심적 상태와 세계관으로 삼투되어 발현하고 있다.
“다디단 잠을 청해야 하는 새벽 4시”(「뒤뚱거리다」)의 시간에 깨지 않고 있는 시인의 뒷모습이 시집의 곳곳에 스며 있다. 시인은 이 거대한 도시를 “허옇게 녹아내린 도시”라고, “그날 얘기는 누구나 할 것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숨막힌 연무煙霧 속에서/ 녹아들었던 희망”을 슬쩍 얘기하는 시인은 시 때문에 비로소 꿈꿀 수 있는 것이다.
_ 조현석 시집, <울다, 염소>(한국문연, 2009)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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