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 이재훈(1972~ )
내 몸은 미끈한 살덩이였다. 푸른 잎사귀에 숨은 청개구리처럼, 천형을 가진 작은 울음이었다. 봄이 되자 몸이 조금씩 부풀어올랐다. 탕자의 우리 속에서도, 소문 무성한 저잣거리 에서도, 밟히지 않고, 물도 먹고, 햇살도 받았다. 미치도록 긴 가뭄이 찾아왔을 때, 내 살갗이 벗겨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가시가 솟아나왔다. 나도 모르게 자꾸 어딘가를 찌르고 싶도록 붉게 성난 가시. 그러나 난 그 가시를 감춰야 했다. 매일매일 가시를 깎아냈다. 미끈한 살덩이 속에서 가시들이 서로를 찌르는 소리. 아침에 일어나면 검은 피 먹은 가시가 턱밑으로 삐져나와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잔다. 빗소리를 듣기 위해 자는 것인지 자기 위해 빗소리를 듣는 것인지. 나방이 유리창에 제 몸을 찧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잔다. 간혹 꿈의 껍질을 두드리는 비명소리. 내 최초의 몸은 미끈한 살덩이. 천형을 가진 작은 울음. 푸른 잎사귀에 숨은 청개구리. 기억을 달래주며 내리는 비가 평화의 모체가 되듯, 꿈에 비명이 가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빗소리 그치고 긴 가뭄이 찾아와 벗겨진 살갗과 어딘가를 찌르고 싶은, 붉게 성난 가시. 감추고 깎아내도 마침내 가시끼리 서로 찌르는 도저(到底)한 분노. 생의 근육이 빠져나가는 밤. 자존(自尊)에 박힌 가시 흉스럽게 가문 밤에 곤두서고, 죄를 덮는 사랑은 오지 아니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할 때, 두려움 없이 만드는 용서는 어디에 있는가. 기적이 세계를 목 놓아 불러 평화를 부를 때 검은 피 먹은 가시 끝끝내 턱밑으로 삐져나오고 있는데. <박주택·시인>
_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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