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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의 현황과 미래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이천 년대 이후 더욱 가속화된 문예지의 창간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랫동안 문예지 편집자로서 일을 해온 필자가 보더라도 현재의 문예지 수는 창작의 양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창간한 지 오래된 전통있는 문예지와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종합문예지들을 빼면 가히 문예지들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만하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하는 <문예연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잡지협회와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는 문학잡지의 수는 289종에 이른다. 물론 납본되지 않는 문예지들도 있으며, 문학에 국한되지 않는 종합지 성격을 가지면서 주요 문학작품의 발표장이 되는 잡지들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이를 권수로 따져보면 문예지는 한 해에 1,100권 이상 발행되는 셈이다. 한 권의 잡지에 대략 30~40편의 문학작품이 실린다고 가정하면 1년에 4만 편 가량의 문학작품이 발표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문예지는 가히 대단한 창작품 발표의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문예지의 지역편중화 현상도 여전한데 전체 289종 가운데 서울에서 발행되는 것이 무려 181종이며 경기도의 23종까지 합치면 서울 경기권에서 발행되는 문예지가 전체의 70%에 이른다. 그 외에 부산에서 발행되는 24종을 제하면 나머지 지역은 2%대의 미미한 형편이다.
또한 2011년에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우수문예지 발간사업으로 지원하는 잡지의 수는 총 37종이다.(PEN문학, 진보생활문예, 월간문학, 한국소설, 한국수필, 한국희곡, 청소년문학, 작가세계, 청소년 문학잡지 풋(20호를 끝으로 폐간), 실천문학, 시작, 아시아, 다층, 문학과사회, 문학들, 문학사상, 세계의문학, 서정시학, 시로여는세상, 시안, 시와동화, 시와반시, 시와사상, 시와세계, 시조시학, 아동문학평론, 어린이책이야기, 오늘의문예비평, 문예중앙, 창작과비평, 한국문학, 한국문학평론, 솟대문학, 미스터리, 현대문학, 현대시, 현대시학.) 이 37개 잡지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간지원을 받아 전국 국공립 도서관에 배포한다. 말하자면 발간 배포지원이다. 이중에서 기관에서 발행하는 기관지가 10종이며, 아동 청소년 잡지가 5종, 나머지 22종은 종합문예지와 시전문지이다. 이들 문예지들을 통해 한국문단에 새로운 담론과 창작품과 평론들이 발표된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문예지의 출간은 손해보는 장사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문예지의 손익분기점은 월간지의 경우 정기구독자가 3,000명 이상, 계간지는 5,000명 이상이 되어야 겨우 도달한다. 물론 이는 제작비와 인건비를 최저로 산출했을 때의 가능성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지금 상황에서 적자를 보지 않는 문예지는 몇 종을 빼고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예지들이 꾸준히 발간되는 것은 문예지들마다 각각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형 문학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종합문예지들의 경우는 가장 큰 손해를 보며 문예지들을 출간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입장에서 보면 문예지는 안정적인 작가를 확보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 문학의 경우, 작가를 확보하기 위해 출판사들마다 경쟁하고 있는 구도다. 이런 경쟁 구도 속에서 출판사가 발행하는 문예지는 작가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예지는 작가에게 작품발표와 연재 등으로 안정적인 원고료 수입을 제공하고, 문예지 발표 이후 출판사는 작가의 단행본 출간을 맡게 된다. 대부분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작품은 그 발행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다. 출판사는 문예지를 통해 작가를 확보하고, 미리 독자들에게 작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대형 문학출판사를 제외한 문예지들의 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문예지들이 꾸준히 창간되는 것은 예전에 비해 책 만들기가 경제적, 기술적으로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창작자들이 서로 십시일반하여 문예지를 발간하는 경우가 많다. 문예지 발간에 참여한 창작자들은 문예지를 통한 작품발표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시전문지들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런 경우 발행인과 문학동료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희생이 없이는 발간되기 힘들다. 그나마 몇몇 전통 있는 문예지들은 창작자들의 도움과 독자들의 호응을 바탕으로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창작자들은 한국문학에 큰 역할을 한 오래된 문예지들에 적은 고료를 받더라도 양질의 작품을 제공한다. 독자들도 전통있는 문예지의 발행이유와 정당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를 응원한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문예지들은 전국의 익명 독자들을 대상으로 발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문학단체나 문학동인 중심의 차원에서 잡지가 소화되고 있다. 문예지의 특성상 오랫동안 문학현장의 중심에서 역할을 해온 문예지에 대한 독자들의 충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시작하는 문예지가 문단의 중심에 서서 독자들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많은 문예지들은 소수의 독자층을 미리 마련해두고 동인지 형태의 발간을 한다.
한국의 문예지 역사는 한국 문학의 역사라고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근대 잡지는 문예지의 창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근대문학은 문예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최초의 근대 잡지는 1908년에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少年)>이다. 이로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문예지의 성격을 띤 <조선문단(朝鮮文壇)>(1924)은 현재 문예지의 형태를 그대로 반영한 잡지였다. 대중들의 문예부흥을 주도했으며, 문예지를 통해 120편의 소설과 8백여 편의 시를 발표한 창작의 장이었다. 또한 최서해, 채만식, 박화성, 안수길 등을 신인으로 배출하면서 새로운 문학가를 배출하는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동인지 형태로 발간된 <창조(創造)>, <백조(白潮)>, <폐허(廢墟)>, <장미촌(薔薇村)>, <금성(金星)>, <시인부락(詩人部落)> 등의 문예지는 한국 근대문학의 우물 역할을 하면서 많은 작품과 작가를 배출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문예지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5년 창간되어 오늘날까지 발행되고 있는 <현대문학>은 가장 전통있는 잡지로 한국문학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66년에 창간된 <창작과비평>은 새로운 문예지의 역할을 수행한 잡지였다. 현실참여와 새로운 문학담론을 창출하면서, 한국 지성계에 진보적인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1970년에 창간된 <문학과지성>은 문학의 순수와 자유를 옹호하는 문학성을 강조했다. 이후 두 잡지는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서 한국문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이뿐 아니라, 1969년에 창간된 <현대시학>, 1972년에 창간된 <문학사상>, 1976년에 창간된 <세계의문학>, 1978년에 창간된 <문예중앙>, 1980년에 창간된 <실천문학>, 1989년에 창간된 <작가세계>, 1990년에 창간된 <현대시>, 1994년에 창간된 <문학동네> 등의 잡지는 한국문학 담론을 생산하고 새로운 문학인을 발굴하여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 잡지들이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주요 잡지들이 폐간되면서 잠시 문예지들이 주춤거렸지만 동인지와 무크지를 통해 이를 극복하였고, 대부분의 잡지가 다시 복간하여 현재에까지 이른다.
순수 시문예지들이 많아지는 것은 창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분명 반겨야 할 상황이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딱히 그렇지도 못하다. 문학의 활성화라는 명분에서는 더 할 말이 없겠지만, 이러한 현상이 오히려 문학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지는 깊이 숙고해봐야 한다. 문예지의 창간이 계속 이어지는 저간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문예지의 양적 팽창으로 인한 문제점 또한 여기저기 불거져 나오고 있다. 문예지를 감당하는 수요층이 어느 정도 한계에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 살 갉아먹기식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잡지의 수를 놓고 보더라도, 또 하나의 잡지가 창간되면 또 그렇고 그런 잡지가 하나 더 보태진다는 회의적인 시각으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현재 문예지의 팽창으로 인한 여러 문제점들 중에 세 가지 정도만 꼽아 볼 수 있겠다. 먼저 지면확대로 인한 작품의 하향평준화이다. 잡지의 양적 팽창으로 문학인들은 발표할 지면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아직 발표할만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발표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또한 작품을 발표하는 창작자들도 몇 인기있는 문인들로 집중되기 때문에 창작자들의 빈익빈부익부가 더욱 가속화되어 또다른 소외를 낳게 한다. 이것은 출판사, 잡지 편집자, 창작자들간의 인간관계도 큰 이유의 하나라고 봐야 한다. 둘째로, 비슷한 기획의 반복과 재생산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문예지들이 엇비슷한 기획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담론을 창출하는 잡지 본연의 역할보다는 구색맞추기 식의 지면채우기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마지막으로 편집권의 남용이다. 편집권은 권력이 아니라 좋은 필자를 모시기 위해 발로 뛰는 봉사자이다. 잡지를 만들어 또다른 편집권의 위용을 창작자들에게 내보이려는 처사는 심히 딱하기만 하다.
문예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현재까지 한국문학뿐 아니라 한국의 인문학적 지식을 공유하고 이끌어간 매체가 바로 문예지이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어 대중들의 관심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문학의 산파구실을 하는 문예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분야가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환금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이 시대에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문학현장을 책임지는 문예지의 존재는 크기만 하다. 요즘 기업이나 돈 있는 개인들은 메세나(Mecenat) 활동을 한다. 메세나의 대상에 문예지들도 포함된다면 좋겠다. 한 기업이 한 문예지를 후원한다면, 그 후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문화적 가치는 상당히 클 것이다. 문학의 가치는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올곧게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한 문예지 후원을 통해 창작자, 작품, 독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국문학을 활성화시키며,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마당이 바로 문예지이다. 국가의 문예지 발간 지원과 발행인들의 새로운 각성, 창작자들의 열의가 더한다면 앞으로 한국문학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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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 시인.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인터뷰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현재 몇몇 대학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하며, <현대시> 부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_ <기획회의>, 307호, 2011.11.05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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