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심사평❙
실재계의 목소리
원구식
지난해 한국시는 우리의 경제사정만큼이나 피폐하였다. 시인은 이미 호모사케르인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맑스가 세상에 나왔듯이, 오늘의 정보혁명은 또 다른 맑스의 출현을 예감케 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자살률이 1위인 까닭은 세계에서 정보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기술혁명은 고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절망을 넘어선 청년들의 실업은 구조화가 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시장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는 이미 오래 전에 버려졌다. 그런 와중에 나는 이번 심사에서 김안, 박진성, 이재훈, 이현승, 최금진 시인을 추천하였다. 모두 지친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한국 시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우리들의 전사이다. 어느 시인이 수상하여도 본상의 명예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번에 수상자로 선정된 이재훈 시인은 수도원에서 거리로 나온 실재계의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구도를 열망하는 나르치스의 언어와 세속에 빠진 골드문트의 언어가 혼재되어 있다. 이 두 목소리가 길항하며 부딪칠 때 이재훈의 시는 묘한 빛을 발한다. 그것은 마치 실재계가 상징계로 침입하는 것과 같다. 실재계는 언어에 의해 포착되지 않은 세계이다. 기표도 기의도 없는 삶의 영역, 그래서 시인은 “날 구원해주는 것은 언어가 없는 원시의 감각”(「나르치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감각을 소유한 시인은 “전투력을 가진 말들이” 서로 왕 노릇을 하려고 뽐을 내는 길거리에서 “이 세계에 없는 언어를 찾아나”선다.(「거리의 왕 노릇」) 그리하여 그가 평원에서 “아무 언어도 없이 심연에 잠길” 때, “저 우주에 몸을 눕히고 별들을 덮을” 때(「평원의 밤」), 혼잡한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퇴출한 명왕성으로 사라질 때, 상징계의 꼭두각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문득 우리의 맨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수상을 축하한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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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전인적 복기 의지
박주택
수상작을 선정한다는 것은 작품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시인이 그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작품을 써왔는지도 중요한 가치 평가로 작용한다. 상호연관성 속에서 관계 짓는 이 잣대는 이런 의미에서 전체적이고 통일적이다. 시가 시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전인적 삶으로부터 현시된다. 시가 역사이고 정신인 것은 시간과 함께 지속적으로 삶 속에 자신을 투여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한 편의 시에는 미적 체험으로서의 선명한 자기 인식이 녹아 있다.
이번 수상자인 이재훈 시인은 그간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2005)와 <명왕성 되다>(2011)를 상재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시인이다. 그의 시편들은 동시대의 현실을 가장 새로운 묵시의 형식으로 시화하면서, 동시에 난파된 젊음에 대한 우수와 자긍을 겹쳐놓은 독특한 현실 환기의 세계다라는 평가(유성호)와 함께, 유한한 것들을 무한에 대고자 하는 상상적 결단이라는 평가(조강석)를 받아왔다.
수상작인 「거리의 왕 노릇」은 속도와 비생명적 일상 속에서 전투와 명령만 있는 세상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며 통박한다. 일찍이 벤야민이 도시 산책자의 시선으로 생명을 억압하는 기제들에 대해 신령상실을 탄식한 것처럼 이재훈은 영혼과 말의 부재를 공간의 부재로 대체하며 배설과 오물의 길에 서성인다. 대지에 서 있지만 대지에서 유폐된 채 서로 왕 노릇하려고 생명과 죽음을 능가하려는 부끄러움이 없는 영혼들을 조롱하고 야유한다. 십자가 없는 어두움과 허공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조용한 잠이 없는 모퉁이 속에서 쭈글해진 어머니 배에 귀를 갖다 대며(「사수자리」) 신의 안부에 고통스럽게 침묵하는 이교도처럼(「빌딩나무 숲」) 처형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바라본다.(「연옥의 산」)
이재훈의 시는 그간 도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혼 없는 형식의 세계를 개성적인 시각으로 묘파해왔다. 일관되게 자신의 시적 세계를 밀고 나가는 그의 추동력은 존재의 시원을 상기시키며 성소로서의 낙원 의지를 복기해 왔다. 이번 수상으로 그의 시가 우리시의 부족한 부면을 더욱 광활하게 개척하기를 고대하며 현대시 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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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시원始原을 추구하는 순례자의 언어
오형엽
나는 예심을 거쳐 올라온 본심 대상 시인들 중에서 1차로 김중일, 박진성, 심보선, 윤의섭, 이재훈 시인을 추천했다. 1차 투표 결과 이재훈 시인이 3표, 박진성, 이현승, 최금진 시인이 각각 2표를 얻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네 시인이 작년 한 해 동안 발표한 시들을 놓고 작품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다각도의 논의가 진행된 후 심사위원들은 이재훈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재훈의 시는 세속도시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과 마케팅 문화의 힘에 맞서 존재론적 시원始原을 추구하면서 천상의 언어를 회복하려 한다. 수상작인 「거리의 왕 노릇」은 최근 이재훈 시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명의 한 구석에 제 이름을 새기려는 영혼들”과 “서로 왕 노릇하려고/생명을 능가하고, 죽음을 능가하는 이웃들”이 발설하는 “왕의 언어”, “법의 언어”, “왕을 심판하는 언어”에 저항하는 시인의 언어는 “이 세계에 없던 언어”이다. “문득 신들이 사는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다는 진술이 드러내듯, 이재훈의 최근 시는 신학과 문학이 만나는 사제적 언술로 우리의 현실을 질타한다. 이처럼 이재훈의 시는 신학적 상상력에 근거하지만, “아름다운 운율은 규칙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처럼 거리의 소음과 노동과 사랑을 시적 시선에서 놓치지 않는다. 군중과 농부와 회사원으로 구성되는 일상의 현실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체험에 공감하고 동참함으로써 이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구성한다. 그래서 이재훈 시의 화자가 드러내는 목소리는 군중과 농부와 회사원의 언어를 종합하고 그것을 순례자의 언어로 승화시켜 얻어진 것이다. 우리 시단에서 무의식적 욕망의 언어 및 사회적 윤리의 언어와 더불어 존재론적 시원을 추구하는 순례자의 언어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재훈 시인의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린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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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한 세기를 다루는 시인
조강석
2014년 현대시작품상을 이재훈 시인이 수상하는 것에는 문학 내적인 필연과 문학 외적인 우연이 결부되어 있다. 부차적인 우연에 대해서 가장 간명한 형식으로 먼저 얘기하는 게 좋겠다. 현대시작품상은 지난 한 해 동안 쓰인 가장 좋은 작품에 주어진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이재훈의 작품이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았다. 그리고 이재훈 시인은 우연히도 시상 주체와 관련된 불필요하고 근거 없는 오해와 결부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작품의 수월성에 대한 고민은 짧았지만 혹시라도 수월성과 우연의 성근 인과관계를 유독 필연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까봐 고민하는 시간이 몇 배 길었다. 그러나 필연은 필연이고 우연은 우연이다.
이제 필연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이 글을 쓰는 이나 읽는 이나 한 시대의 얼굴을 오래 지켜보고 있다. 하나의 시대가 어떻게 자신을 구조적으로 체계화하며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감산하는지를 제법 오래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자본이 국경 없는 제국의 섭생을 관장하고 다수결이 소수에 의해 입안된 구체적 이익을 출납하고 덧셈 뺄셈처럼 명료해 보이는 외설적 욕망과 전횡도 모두 각자도생의 이전투구처럼 비치게 하는 나팔수가 24시간 활약하는 시대에 출근하고 카드 긁고 퇴근하고 정산하는 삶을 부정할 수 없는 우리는, 생활하며, 그러나, 마음의 한 세기도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훈은 바로 그 마음의 한 세기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통치와 경영과 합리화와 욕망의 구조 속에서 그래도 하루를 살아야 하는 우리가 마음의 한 세기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있다. 시가 내감의 외화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사유의 귀결이기도 하다면 마음의 한 세기를 다루는 이 시인의 운산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표상에 대한 내밀한 사유와 적실한 이해로부터 비로소 우리는 폐기할 것들의 숙주로 살고 있는 이의 곤혹스러운 윤리가 모든 끝의 시작임을 배운다. 드물고 귀한 시선을 이제 우리시는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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