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세대

시詩 2009. 7. 7. 13:56


서태지 세대

이재훈



아름다운 골목은 없다.
돌고 도는 것이 골목이며
참고 참는 것이 사랑이다.
첫 사랑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본드를 마시고, 부탄가스를 불었다.
정작 중요한 말이라고 세상에 떠도는 건
모호한 개념 정의들뿐.
됐어 됐어 이젠 그런 가르침은 됐어.*
유치하다 생각한 노래를 목청껏 불렀지만
우리에게 밤문화를 가르쳐준 선생님과
몇 푼의 참고서 값으로 위안을 삼는다.
대학도 회사도 모두 판매왕을 모집하여
고시원과 학원을 전전하였던 아름다운 시절.
희망도 아니고, 욕망도, 진리도 아닌
어수룩한 정당성으로 가득한 신자유주의.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나는 불편하다는 것.
정의와 진실이 정치적이라는 걸
한순간 깨달았을 때.
잔혹한 눈망울을 낼 수 없는 나는
숭고한 공간을 꿈꾸었던 나는
이 시대를 매일 버린다.
머릿속 꿈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선한 것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이십일 세기 문명에 무릎을 꿇는다.
내 손으로 만든 옷과 신발과 종이가
하나도 없는 무능한 세대.
조금 일찍 태어났더라면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고
울분으로 노래를 부르고
세상에 욕을 하고
그것으로 명예를 얻고 정치를 하고 돈을 벌고
후배들에게 내 아픔의 젊은 날을 얘기할 텐데.
체게바라의 페데로사를 끌고
동해와 남해를 거쳐 서해의 어귀에서
술을 마시고 낯선 여자를 만나고
모래밭에서 잠드는 낭만놀이를 했을 텐데.
손잡고 싶은 사람 하나 없어
집으로 향하지만
오늘도 우편함엔 밀린 고지서와
광고 전단지만 가득하다.

* 서태지, <교실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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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메모

나는 서태지와 동갑이다. 그러니까 좀 묵은 서태지 세대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서태지의 모든 노래들을 부르고 다녔다. 고등학교 중퇴,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음악의 길. 그의 모든 것이 내 삶과 오버랩되었던 시절. 다 추억이 되었다. 열심히 시를 썼지만 살기 힘들다. 외롭게 버텼지만 불안한 미래가 옥죈다. 누구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래도 시가 있었기에 버텼다고 했다. 우리 세대를 생각했다. 엄살의 시를 한 편 써봤다. 물론 ‘서태지’라는 이름을 꼭 빌리고 싶었다.

_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작가, 20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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