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잊어버릴까 그림을 그렸는데 입지
그는 꽃잎 같은 얼굴을 하고 몸은 짐승의 털이었습지
그 얼굴에서 진득한 침이 흐르기 시작했습지
은촛대 위에 까만 표지의 성경이 펼쳐져 있고
고개를 꺾은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지
옆구리에는 창이 꽂혀 있었는데
- 이재훈, <참 이상한 꿈이 있었단 말입지> 부분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현상은 이재훈의 시에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제시된다. 화자가 그리고 있는 꿈의 세계는 온통 암울하고 참담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짐승의 털', '침', '고개를 꺾은 십지가', '돼지의 꼬부라진 성기' 등과 같은 모습은 모두 혐오감을 자아내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너무도 낯익은 얼굴'이라 표현함으로써 이 충격적인 낯선 세계가 실상은 가장 친숙한 낯익은 세계, 즉 현실 세계라는 의도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러한 환상시의 저변에는 현실에 대한 직접화법이 아닌 시인이 만들어낸 환상의 영역을 통해 모순된 현실과 절망적 현실을 보다 과장되고 자극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 <리토피아>, 2007년 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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