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의 시 낭독
http://www.munjang.or.kr/mai_multi/djh/content.asp?pKind=14&pID=24
윤성근, 「엘리엇 생각」
내가 짧은 능력과 식견으로 돼먹지 않은 두 편의
미간행 장시를 발표한 것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나는 당신을 닮고 싶었던 것.
미간행 장시를 발표한 것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나는 당신을 닮고 싶었던 것.
그러나 될 일도 될 턱도 없어 가슴에 묻고
예이츠도 키츠도 셰이머스 히니도 딜런 토마스도 아닌
많은 시인들 가운데 또 김수영도 정지용도 미당도 이상도 아닌
그 숱한 위대한 시인들 가운데 유독 당신 하나만을
칭송케 되었는데
예이츠도 키츠도 셰이머스 히니도 딜런 토마스도 아닌
많은 시인들 가운데 또 김수영도 정지용도 미당도 이상도 아닌
그 숱한 위대한 시인들 가운데 유독 당신 하나만을
칭송케 되었는데
어느 해 크리스마스 무렵 술 취해 막 이사한 아파트를 못 찾아
택시에서 어추어추 30분 이상 헤맬 때
당신의 시 「네 사중주」의 일 절 우리가 부단히 애써 인생을 살면
처음인 그 끝자리로 돌아오게 되리란 구절이 떠올라
곧장 택시 내린 곳으로 돌아와
뒤돌아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 성큼 집으로 찾아 들어갔던 것.
택시에서 어추어추 30분 이상 헤맬 때
당신의 시 「네 사중주」의 일 절 우리가 부단히 애써 인생을 살면
처음인 그 끝자리로 돌아오게 되리란 구절이 떠올라
곧장 택시 내린 곳으로 돌아와
뒤돌아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 성큼 집으로 찾아 들어갔던 것.
혹시 이런 모습을 시인이 내려다보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
일순 계면쩍어하면서.
일순 계면쩍어하면서.
● 시_ 윤성근 - 1960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시집 『우리가 사는 세상』『먼지의 세상』『소돔』『나는 햄릿이다』『나 한사람의 전쟁』 등이 있음. 2011년 영면함.
●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 출전_ 『나 한사람의 전쟁』(마음산책)●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발표했다는 시인의 미간행 장시가 궁금하다. ‘도시서정’이라는 말이, 요즘의 ‘미래파’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시단에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윤성근은 이 도시, 서울의 ‘착란과 착란으로 얼빠진 얼굴들’(엘리엇의 「네 사중주」에서)의 잿빛 그림자를 시니컬하게, 그러나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시인이었다. 참으로 유니크한 시를 썼던 이이가 생전에 마지막 시집을 낸 게 1992년이니, 20년 가까이 그는 대체 왜 침묵했단 말이냐? 하긴 20년이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지만, 너무도 짧은 하루들의 한 덩어리일 따름이다. 20년, 금방이다. 아주 가끔, 윤성근 씨는 이제 시 안 쓰나 생각했을 뿐, 20년이나 지난 줄 나도 몰랐다. 미안하다…….
「엘리엇 생각」이 실린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유고시집이다. 절박한 병상에서 쓴 시들이 어찌나 맑고 따뜻하고, 꾸밈없고 거침없는지! 「엘리엇 생각」도 찬물을 들이키듯 시원스레 썼다. 만취해서도 시를 줄줄이 욀 정도라니. 엘리엇에 대한 시인의 순정이 미소롭다.
친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를 ‘차도남’ 혹은 ‘까도남’이라 생각했었는데, 『나 한사람의 전쟁』을 보고 좀 놀랐다. 실은 이렇게 정 많고 온유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받은 그 인상은 그의 수줍음 때문이었나? 아니면, 그의 시에서 받아온 인상 때문?
그가 소장한 SF소설을 한 트렁크씩 몇 차례 빌려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아내를 통해 빌린 것이지만, 그가 아주 까칠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던 듯하다.
술과 헤비메탈과 SF소설을 사랑했던 시인, 윤성근. 삼가 명복을 빈다.
「엘리엇 생각」이 실린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유고시집이다. 절박한 병상에서 쓴 시들이 어찌나 맑고 따뜻하고, 꾸밈없고 거침없는지! 「엘리엇 생각」도 찬물을 들이키듯 시원스레 썼다. 만취해서도 시를 줄줄이 욀 정도라니. 엘리엇에 대한 시인의 순정이 미소롭다.
친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를 ‘차도남’ 혹은 ‘까도남’이라 생각했었는데, 『나 한사람의 전쟁』을 보고 좀 놀랐다. 실은 이렇게 정 많고 온유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받은 그 인상은 그의 수줍음 때문이었나? 아니면, 그의 시에서 받아온 인상 때문?
그가 소장한 SF소설을 한 트렁크씩 몇 차례 빌려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아내를 통해 빌린 것이지만, 그가 아주 까칠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던 듯하다.
술과 헤비메탈과 SF소설을 사랑했던 시인, 윤성근. 삼가 명복을 빈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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