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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그림자 여기저기에 무늬져 보이는 가늘게 갈아 만든 것 같은 반짝이는 격자무늬, 포장 덮개가 움푹 파이도록 고여 있는 빗물에 젖은 인력거, 그리고 멀리 소나무가 들여다보이는 배의 널조각 담장 사이에 섞여, 메밀국수집과 나란히 가리가네의 창고가 있다. 그날 밤 거의 11시가 되었을 무렵, 야나기바시를 건너, 사미센 소리가 들려오는 빗속을 걸어 가리가네의 창고로 향했다. 고리 모양이 펼펴진 화사한 게다 가게 앞을 돌아서자마자 보이기 시작하는 창고 속을 들여다보니, 가게를 지키고 있는 가리가네의 침울한 얼굴이 보였다. 나는 곧 어디선지 모르게 곰팡이 냄새가 떠돌고 냉기가 도는 운전수실로 들어가 가리가네와 만났다. 그는 내가 미처 꼭 닫지 못한 유리문을 꼭 닫고는, 무릎 위에 양손을 대고 정중히 고개 숙이고 인사를 하며, 아까는 여러모로 걱정을 끼쳐서 죄송했다고 사죄했다. 나는 곧 야마시타 부인의 고백을 그대로 그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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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우치의 말에 다시 가리가네의 눈은 한층 비범한 광채를 띤 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정수리가 높고 뾰족한데, 이렇게 실의에 빠졌을 때의 풍모에서 그때까지 감춰져 있던 비범한 힘이 그의 튀어나온 광대뼈 언저리로부터 숨을 내뿜는 듯이 번쩍번쩍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쌀겨로 생선을 누룩으로 만든다고 하면?" 나는 히사우치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생선에는 기름기가 많죠. 그러니까 비린내가 나고 어지간해서는 냄새가 빠지지 않으니까. 분명히 쌀겨에 생선 기름을 흡수시키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데."
"그렇습니다." 가리가네가 옆에서 말했다. 그리고 점차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나를 보면서,
"마쓰야마 선생님, 제가 또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확실한 게 아니잖아."
"아니요. 노무라 나오조 씨의 방법은 제 방법과 같습니다. 쌀겨에는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도 감화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가쓰오부시를 끓이고 남은 찌꺼기를 사용하지 않나. 그리고 이왕이면 뼈까지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죠. 저도 마지막에는 뼈까지 간장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는데, 뼈에는 인산캄슘이 들어 있어서 대단히 왕성하게 발효하기 때문에 뼈까지 간장으로 할 수 있으면 이상적이겠지요."
"그러면 이제 가쓰오부시 찌꺼지 같은 건 치워버리고 강변 어시장에서 생선 찌꺼기를 얻어다 해보면 어떨까? 그거라면 공짜고 거기다 운임비까지 저쪽에서 주지 않나?"
"그렇게 하게 해줄까요?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는데."
가리가네의 지금까지의 실망은 다시 한순간에 맑게 개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고 미소를 머굼고 잔 속의 차가워진 술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내가 따라준 술을 한 모금 입에 대고는 말했다.
"자, 드디어 내일부터 제가 그걸 해보겠습니다. 저에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잘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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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 중에, 이 친구도 역시 간장 발명에 열심인 친군데, 이 남자의 연구는 다른 사람들하고 또 조금 달라서, 뭐라던가, 간장을 액체로 만들지 않고 고체로, 말하자면 환약처럼 만들려고 한다지 뭡니까. 요컨대 항상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가볍고 작게 만들어 적은 양이라도 물만 넣으면 곧바로 많은 양의 간장이 되게끔 한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제부터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식량을 비행기에서 아군 진영으로 고속으로 떨어트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도 생길 수 있으니까. 가령 쌀 같은 걸 비행기에서 떨어트리면 쌀 한 가마니가 지상에 떨어지면 가속도가 붙어 6미터 정도나 땅속에 파묻히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간장도 웬만큼 가볍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6미터씩이나 땅속에 파묻히게 되면 어떤 거라도 식용으로 사용하게는 안 되죠. 이런 건 간장도 마찬가지죠. 확실힌 모르지만 이런 걸 처음 생각해낸 건, 야채류를 건조시켜 고체로 만들어 그걸 떨어트리려고 한 데서 비롯된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야채도 그렇고 간장도 그렇고, 고체로 만들려는 경쟁이 목하 각국에서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만, 막상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야채나 간장 등을 대량으로 제대로 고체화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로선 일본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일본은 세계 제일의 양잠국이기 때문에 건조기가 전국 방방곡곡 산간벽지에 이르기까지 퍼져 있기 때문이라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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