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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가 현대의 삶이 이룩한 위대한 진보의 표식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런 견해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을지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직업 선택의 자유란 것도 극심한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을 때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특징은 우리들 대다수에게 그 이전보다 선택―어떤 사람이 될지, 어떻게 행동할지, 누구 줄에 설지―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실존적 선택에 직면했을 때, 저것 아닌 ‘이것’을 선택하게끔 해주는 참다운 동기가 없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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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래로 서양의 역사는 어쨌건 진보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계몽주의 시대와 이후 시대야말로 이런 발전의 정점에 이른 시대라고 배워왔다. 자유의 자기충족성, 이성의 투명성, 남김없이 설명되고 통제되는 세계의 안정성, 이 모든 것이 역사의 진보를 가리킨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이 이야기 반대편에는 또 다른 이야기도 존재한다. 즉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탈마법화된 상태야말로 끝없는 쇠퇴와 상실의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탈마법화된 오늘의 세계를 거부하고 과거의 마법적인 시대를 지지한다. 자유의 대가로 안게 된 홀로서기의 짐, 이성의 거침없는 행진이 닦아놓은 무미건조하고도 무자비한 길, 남김없이 설명되고 통제되는 세계의 생기 없는 얼굴, 이 모든 것이 역사의 퇴보를 가리킨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야기도 옳지 않다면? 즉 경이와 매혹이 저 멀리로 사라졌다는 생각이 현대 세계를 오해한 결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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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열린 마음으로 대했다. 그것은 우리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서, 우리들 현대인은 내적인 자기응시에만 익숙한 나머지 우리의 정조들을 지극히 사적인 경험으로만 간주한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자기 자신을 내적인 경험과 신념을 통해서 이해하기보다는 널리 공유된 정조들에 휩싸여 사는 존재로 간주했다. 호메로스에게 정조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우리가 함께 처해 있는 상황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정조는 그 순간 가장 문제시되는 것을 드러내준다. 그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영웅적이고 열정적인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정조들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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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세계에서 감사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그 인물에게 결함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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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가 잠을 묘사한 다양한 방식들은 그의 인간 실존 개념에서 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잠은 행동하는 순간과 구분되는 비어 있는 삽화다. 잠들었을 때 우리는 더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호메로스의 세계에서 잠은 인간의 조건을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따금 신들이 인간을 방문해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주고, 인간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불안을 가라앉혀서 다시 신선한 욕망을 불어넣어주는 것도 바로 잠을 통해서이다. 호메로스에게 있어서 잠은 일종의 계율이다. 왜냐하면 잠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꼭 이룬다는 보장이 없는, 그런 행동의 표준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호메로스가 보기에 잠은 인간을 가장 잘 특징짓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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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궁극적 스토리는 우주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는 데 있지 않다. 비록 에이해브가 만난 모비 딕처럼 우리에게 무관심한 신도 있지만 말이다. 어린 선원 핍이 외롭게 버려진 미아처럼 바다에 조난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생각, 즉 세상은 “그의 신처럼 냉담하다”는 생각을 상기해보자. 하지만 그런 신과 달리 세상에는 또 다른 신들, 즉 즐겁고 성스러운 신들과 사악하고 복수심에 차 있는 신들도 있다. 우주는 번갈아가며 이런 신들의 모습을 띤다. 우주가 그 신들 가운데 궁극적으로 어떤 신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하나의 신도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신들의 만신전(萬神殿)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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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지혜로운 스승에게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아온 두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이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들은 이제 세상에 나갈 때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너희들의 인생은 복될 것이다."
제자들은 아쉬움과 흥분이 뒤섞인 채 스승을 떠나 각자의 길로 갔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다시 만난 것에 행복해했고, 상대방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으려는 기대감으로 들떴다.
첫 번째 제자가 두 번째 제자에게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 있는 많은 빛나는 것들을 보는 법을 배웠지. 하지만 여전히 불행하네. 슬프고 실망스러운 것들 역시 많이 보았기에 스승님의 충고를 따를 수 없다고 느낀다네. 아마 나는 결코 행복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질 수거 없을 것 같으이. 솔직히 말해서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야."
두 번째 제자는 행복감에 반짝이며 첫 번째 제자에게 말했다.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다만 빛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지."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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