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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30 사과나무 아래로 귀환한 오르페우스의 꿈_ 남진우 대담


사과나무 아래로 귀환한 오르페우스의 꿈


남진우  이재훈



그 새벽/나는 사과나무 아래 서 있었다//휘어진 가지마다/붉게 익은 심장이 마악 솟아오른 아침햇살을 받아 번득이고/어둠에서 풀려나온 잎사귀 끝에 맺힌 물방울이 후두둑 내 이마위로 떨어져내렸다/어디에도 과수원지기는 보이지 않았다/반쯤 무너진 황폐한 돌담 옆으로/저 멀리 소실점을 향해 늘어서 있는 사과나무들/거기 두근두근 열린 태양의 과실들//나는 손을 뻗어 붉게 익은 심장 하나를 땄다/내 손바닥 위에서 팔딱이는/붉고/동그란/심장/한 입 가득 그것을 베어물자/어디선가 맹렬히 타종소리가 울려퍼지고/보이지 않던 새들이 깃을 치며 일제히 날아올랐다//그 새벽 내가 서 있는 곳은/우물가였다 나는 마른 우물 바닥 저 밑에서 홀로/붉게 빛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꿈> 전문

만약 광기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로트레아몽 백작의 꿈이 그러하지 않을까. 백작은 새벽녘 사과나무 아래에 서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붉게 익은 심장 하나를 딴다. 그 팔딱이는 심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살펴본다. 붉고 동그란 심장. 조용히 그 심장을 한 입 가득 베어문다. 어디선가 타종소리가 울린다. 타종소리는 슬픔의 소리일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불지 않아도 살아야겠다던 열망의 심장을 한 입 가득 베어문 그의 얼굴엔 슬픔이 묻어 있다. 슬픔이 무언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그 시간은 광막한 어둠이 아니라 새벽이었다. 젊은 날 18세기 외투를 걸치고 외출한 겨울의 슬픈 꿈이 새벽녘 사과나무 아래로 다시 귀환한 것일까.
시인을 만나러 간 날은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비 온 뒤에 부는 바람은 몹시도 싸늘해서 내 입술과 정신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나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되뇌이면서 빌딩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좀 얼어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남진우 시인은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이재훈 : 우선 등단작인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작품은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가장 유니크한 시라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우울한 샹송’, ‘헝가리언 랩소디’, ‘십이사도의 주기도문’, ‘러시아의 설해림’ 등의 시어 사용과 ‘방황’으로 요약할 수 있는 낭만적 몽상으로 미루어보아 서구적인 것에서 시의 모티브를 찾고 있습니다. 등단 전후에 탐독했던 작가들이나 사상가들이 궁금합니다.

남진우 : 나의 신춘문예 데뷔작은 전형적인 문청 시절의 습작품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젊은날의 우울과 방황, 낭만과 좌절, 동경과 환멸 등이 혼숙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뭐랄까,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면서도 자신을 공기의 주민으로 여기고 싶어하는 듯한 감각, 자신의 진정한 삶이 지금 여기가 아닌 어느 먼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이 시의 저변에 깔려 있다고 봐야겠지요. 이것은 습작시절 내가 프랑스 상징주의나 독일 표현주의 계열의 시인들의 작품을 탐독한데서 기인한 면도 없지 않을 거에요. 지금 와서 보면 이런 세계의 한계가 선명히 드러나 보이고 또 그것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리적 설명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엔 이런 세계에 깊숙이 젖어 있었고 그것이 그 나름의 진정성과 진실성을 갖고 있다고 선험적으로 믿고 있었던 듯해요. 그 당시 시단의 주도적 흐름이었던 민중시나 형태파괴적 해체시에 대해선 이렇다할 매력을 느껴보지 못한 편이었어요.

이재훈 : 제가 처음으로 이 질문을 드리게 된 것은 로트레아몽의 시정신과 선생님의 시정신이 맞닿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로트레아몽이라는 인명만 차용해 왔다고 보기에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거든요. 로트레아몽의 시정신은 극한의 절대성을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도로르의 노래>는 악이 주제이고 그 악의 성격은 인간성의 부정, 신성모독, 증오, 잔인성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악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반항정신입니다. 그 반항은 결국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한계와 인간에게 이러한 한계를 덧씌워 준 신에 대한 반항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 반항의 행위가 불가능한 부분을 끝까지 추구하려고 하는 시정신이라고 한다면 선생님의 시정신도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로트레아몽의 시정신을 당시에 흠모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으로 질문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의 시적 작업 또한 이런 시정신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되어지는데요.

남진우 : 그런데 지금와서 보면 20대 초반에 로트레아몽을 비롯해서 외국 시인들의 시를 깊이 이해한 것 같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그 사람들의 시 자체보다는 시를 에워싸고 있는 이미지를 소박하게 변형하는 차원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니까 내 등단작은 제목이 워낙 거창해서 주목을 받은 것만큼이나 욕도 많이 먹었는데(웃음) 그 시가 정작 로트레아몽과 관련성을 맺고 있는 시라고는 할 수가 없죠.

이재훈 : 등단 후 <시운동> 동인 활동을 활발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시운동>은 민중시의 대척점에서 새로운 경향의 문학으로 시사에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시운동>이 작품 세계에 준 영향이 있을텐데 그것에 대해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진우 : <시운동>의 초기 멤버들은 한마디로 바슐라리언들이었다고 할 수 있죠.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 시운동 동인들은 70년대 중후반 김현이나 곽광수 등에 의해 집중적으로 소개된 바슐라르의 시학에 심취한 세대였어요. 상상력의 절대적 힘과 이미지의 마력에 대한 바슐라르의 설명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새로운 시적 수사의 창출에 고민하고 있던 젊은 세대에게 일종의 복음처럼 다가왔어요. 물론 이러한 바슐라르의 시학은 당시의 암울한 정치상황과는 길항하는 면이 있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상상력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바슐라르의 명제는 젊은 시인 지망생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어요. 바슐라르의 사상체계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시야를 획득한 지금도 나는 바슐라르에 매혹을 느낍니다. 단순한 이해와 분석을 넘어서 그만큼 시를 “살게” 해주는 이론가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이재훈 : 그러면 아직까지도 바슐라르의 상징론이나 몽상의 시학이 시작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가 있겠네요.

남진우 : 몽상을 현실과 관련없는 공상과 망상하고 혼동하지 않는다면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이 글쓰는 사람에게 주는 이해의 폭은 굉장히 넓은 것 같구요. 바슐라르적인 인간 이해, 단순한 문학론을 넘어서 바슐라르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낙관적이고 호의적인 휴머니즘적인 측면도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또한 그 시절에 김현, 곽광수, 김화영 선생을 좋아한 것도 그 분들이 바슐라리언들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분들은 텍스트의 쾌락주의자들입니다. 텍스트가 줄 수 있는 쾌락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미하고자 했죠. 텍스트의 뼈만 발라내는 게 아니고 텍스트의 살아 있는 유기체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재생산해 내는 비평가들이었다고 봅니다. 그러한 것이 나의 비평적인 모범이 되었다고 봐요.

이재훈 : 약력을 보면 전북 전주가 고향입니다. 유년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시에서는 유년 시절의 원체험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데 최근의 시집 <타오르는 책>의 해사문과 시인의 말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드러나거든요.

남진우 : 전주는 내 정신의 원적지입니다. 아름답고 자그마한 도시지요. 사람들도 억세지 않고 이웃간의 인정도 두터웠고…… 물론 이 도시도 지금은 많이 변했지요. 엄청나게 커졌고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로 가득찬,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도시로 변해버렸어요. 하지만 지금도 그 도시는 내 기억 속에선 어린 시절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던 빛과 향기와 소리로 물들여져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다가공원의 활터에서 시위를 떠난 화살이 상쾌한 대기를 가르고 날아가 과녘에 꽂힐 때 나던 딱 하는 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메아리치고 있어요. 불가능한 소망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전주천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보고 싶어요.

이재훈 : 그것을 자아에 대한 집요한 탐구나 천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기 주변의 자리나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남진우 : 여유라고 하면 굉장히 긍정적인 쪽이고 오히려 슬픔에 가까운 것 같아요.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자비라고 해야 되나요? 단순한 사랑이기보다는 슬픔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그런 느낌인데요. 그러니까 슬픔을 알게 될 만큼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아요.

이재훈 : <타오르는 책>의 해설을 쓴 김주연 선생의 ‘청년 신비주의자’라는 명명은 선생님의 문학 경향을 잘 표현한 말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신비주의’는 비현실적 신비성을 시의 현실로 붙들어 놓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그 현실은 일반적인 개념의 현실이 아니라는 말로 이해됩니다. 분명 선생님의 시는 발 딛고 살아가는 외부세계의 현실보다 정신 활동에서 배태되어지는 존재론적 고민과 몽상이 더 짙게 나타나 있거든요. 어쩌면 선생님에게는 이러한 사유의 공간이 더 절박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진우 : 이런 말 하기는 조심스러운데 김주연 선생님은 내 석사논문 지도교수고 그래서 나에 대해 잘 알고 계신 한편으로 나에 대해 일정하게 어떤 고정된 판단을 갖고 계신 부분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분이 이야기하는 신비주의는 매우 포괄적이면서 또 신중심주의라는 것과 항상 대비되어 적용되는 개념인 만큼 그리 단순하게 이야기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분에게 신비주의는 가치중립적 개념이 아니라 신중심주의와 비교해서 분명하게 위계적으로 서열화된 가치론적 개념이거든요. 따라서 신비주의에 대한 그분의 설명은 이 용어에 대한 일반적 용법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선생님이 지적한 범주를 떠나 신비주의에 관한 일반적 용법에 입각해서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로 생각하지 신비주의자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군요. 낭만적 정서와 신화적 상상력이 주조음을 이루고 있는 첫시집과 달리 두 번째 시집부터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과 탐구를 시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하는 점은 또다른 규명을 필요로 하겠지만 말이죠. 아쉬운 것은 내 시 가운데 정치적 모티프나 일상생활에 바탕을 두고 창작된 작품이 적지 않은데 이들 작품이 대개 논의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죠.

이재훈 : 그럼 정치적 모티브를 가지고 쓴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남진우 : <타오르는 책>에서 <족장의 가을> 1, 2 같은 시들은 사실 김영삼 정권 말기를 그린 것이거든요. 이것이 비판을 의도했다기보다 정치적 모티브가 되어서 씌여진 것인데요. 꼭 어떤 시가 그렇다라기보다는 그런류의 시들이 상당수 있어요. 어떤 것은 정치적 상상력이고 어떤 것은 신비주의를 바탕에 두고 이렇게 딱 나눈다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설령 신비주의적인 외관을 가지고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결국 출발은 현실이라는거죠. 이걸 사람들이 종종 건너뛰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신비주의가 나쁘다란 것도 아니고요.

이재훈 : ‘죽음’에 대한 천착은 많은 평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죽음에 대한 집착은 죽음이라는 주제가 가져다주는 인식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죽음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주제이지 않습니까. 지식사회학이 가져다주는 합리성의 한계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요. 선생님이 주제로 삼은 죽음은 삶과 대극점에 위치해 있는 죽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식의 가장 극한 상황, 혹은 그 극한 상황을 넘어서려는 방법적 자각으로서의 죽음이겠죠. 이것은 분명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처절한 도전을 감행하는 영혼이 시인이니까요. 이것으로 남진우 시인은 이미 너무 멀리 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죽음의 사유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남진우 : 이 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사변적 논의를 펼칠 필요는 없겠지요. 한가지 분명한 점은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찬 두번째 시집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실린 시편들은 그 나름의 실존적 필연성에 기초해 씌어진 작품들이라는 점입니다. 서른 셋을 전후한 시절에 찾아온 시들인데 그 당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히 황폐하고 아픈 나날을 통과하고 있었거든요. 시를 통한 죽음의 예행연습이랄까. 내면적으로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을 편력한 오르페우스의 모험을 추체험해보고자 했어요. 극단까지 가보고자 한 의지의 산물이지요. 이 시집에 나오는 어떤 장면들은 지금도 그것을 쓴 당사자인 나를 무섭게 합니다.

이재훈 : 선생님은 <시의 종말, 종말의 시>(1998)라는 평론에서 ‘시의 종말’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90년대 이후의 시적 작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것인데요. 이것은 시의 종말 이후에 또 무엇을 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물음이자 또한 이 땅에 시를 쓰는 이들에게 묻는 물음처럼 들립니다. 그 글을 쓴 지 2년이 지났는데 ‘발전과 성장의 동학’의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남진우 : 내가 시작노트 형식의 글에서 시가 죽었다고 수사적으로 표현해 놓았더니, 어떤 아둔한 작자가, 시가 죽었다고 하는 자가 왜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느냐, 당신 기회주의자 아니냐 하는 식의 시비를 걸어와서 아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반응이 공식선상에서 제기될 정도로, 시의 종말이니 죽음이니 위기니 하는 수사들은 90년대 내내 지속적으로 유행했고 그래서 이젠 수사로서도 진부해진 감이 있죠. 하지만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한 채 진행 중인 공안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지금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시의 죽음이라는 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이것에 대한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씌어지는 시가 의미있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시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최고의 질료일 수 있으니까요.

이재훈 : 많이 받는 질문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은 시인뿐만 아니라 비평가로서도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비평은 상당히 많은 애독자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저 또한 열렬한 애독자의 한 사람입니다. 비평집 <숲으로 된 성벽>의 책 뒷면 글에서 도정일 선생은 “이 척박한 땅에서 한 젊은 평론가가 어떻게 이처럼 빛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는 그 자체로 미스터리이다.”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평론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남진우 : 개인적으로 도정일 선생님의 평가는 과분할 따름이고 그렇게 되도록 더욱 정진할 뿐이라고 말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한마디 하자면 평론 활동을 시작할 무렵 나는 내 평론이 내 시의 부록이길 바랬는데 최근 보니 거꾸로 내 시를 내 평론의 부록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적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요즘엔 그럴수록 더 열심히 시를 써야 한다는 내면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재훈 : 현재 명지대 문창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잖아요. 글 쓰려는 문학 지망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몇 가지만 말해 주세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남진우 :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찢어버리라는 것, 이것 이상 가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재훈 : 마지막으로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남진우 : 식민지 시대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특히 정지용, 오장환, 백석 같은 시인들의 시를 찬찬히 다시 읽으며 많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이들의 시에 대한 좋은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읽고 싶은 분야는 많아요. 폴 드 만을 비롯한 예일학파의 저작들, 문화인류학 분야의 고전들, 프로이트의 사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책들. 그러나 역시 최고의 선물은 아름다운 이미지로 가득찬 시집이지요. 김언희 박형준 윤의섭 전동균 이홍섭 이윤학 허혜정 고창환 조용미 김선우 박성우 등등의 시들.

이재훈 : 그럼 이것으로 현대시 대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대담이 끝난 후 문학동네 사무실 근처의 한정식 집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그때 내가 너무 조잘거린 것 같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이 무명의 시 쓰는 젊은이에게 보내어주는 미소는 내 마음을 한없이 따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시인의 뒷모습. 더 정확히 말해 시인의 어깨를 보았다. 앞에서 보여지는 남성성이 발현된 어깨가 아니라 뒤에서 보이는 고독한 시인의 어깨… 유유히 사라져가는 시인의 뒷모습과 밤거리의 배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_ 출처 : <현대시> 2001년 1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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