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일생’
- 이재훈 시인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찾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해설>
시의 일차적 풍경은 애벌레가 역경을 딛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한 마리 나비의 비상입니다. 어떤 생명체인들 산고(産苦)가 없을까마는,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데 / 온 생을 바쳤다”니 한 마리 나비로 날기 위해서는 이토록 많은 고통을 참고 견디나 봅니다.
이 시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비가 아니라 ‘남자의 일생’이지만 남자와 비유해 읽어보면 “남자의 애잔한 생애”가 너머로 보입니다. “늦은 오후, /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 그림자 찾아들고 /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면서 남자의 힘겨운 여정을 보여줍니다.
일찍이 프란츠 카프카는 소설 ‘변신 ’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의무의 무거운 짐을 진 벌레로 변신한 남자’를 등장 시켰습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새벽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외판원으로서 가족들의 삶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잠에서 깼을 때 그는 벌레로 변해 있었고 출근은 고사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든 벌레로 살다 그의 아버지가 등에 쏜 사과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나비 한 마리, / 공중으로 날아간다.”를 통해 고통이 비극적 사멸이 아니라 탄생으로 치환됩니다. 남자가 나비이면서 곧 비상이고, 나아가 마지막 시행 “풀잎이 몸을 연다.”를 통해 드넓은 시적 지평을 열어줍니다.
추운 겨울, 깊고 어두운 땅속에는 ‘나비로의 비상을 꿈꾸는 애벌레’가 고단한 몸을 뒤척이고 있겠지요. 마치 겨울 언강 밑으로 수많은 물고기가 움직이듯.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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