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시, 함께 늙어가는 아름다운 애인

 

 

 

이재훈 이은규

 

 

 

햇살이 없었다면/ 저물녘이 없었다면/ 늦은 밤 빗소리와/ 시를 긁적이는 펜 소리가 없었다면/ 이 우주에 어쩌다 나의 동경이 되어 버린 숱한 별들과/ 아무도 원치 않던 도시에서의 고독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방황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재훈, <명왕성 되다>, 自序에서

 

 

 

● 명상가와 시인 사이

 

이은규: 이번 <시현실> 여름호 대담에는 이재훈 시인을 모셨습니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반갑습니다. 오늘 대담 장소인 쿠스코의 분위기가 이국적이네요. 흐르는 음악도 그렇고요.(^^) 함께 말씀 나누게 될 <명왕성 되다>에 「쿠스코」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요?

 

이재훈: 「쿠스코」라는 작품이 있죠. 쿠스코는 페루의 도시인데 잉카제국의 수도였지요. 한때 1백만 명이 거주했다고 해요. 또 세계의 배꼽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고대문명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이유로 쿠스코에 대한 열망이 시로 표현되었겠죠.

 

이은규: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오늘 대담 장소와 함께 나누게 될 대화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 것 같아 흥미로워요.(^^)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약력에서 고향은 정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이신데, 선배님 기억 속에 그곳은 어떤 곳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요. 영월하면 뭔가 아득한 느낌인데 일상은 또 다르겠지요.

 

이재훈: 제가 태어난 곳이 영월 만경대산 아래 첫 동네에요. 영월군 하동면 주문리. 일명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이지요. 예전에는 그곳이 탄광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죠. 폐광된 이후로 인적이 드문 마을이 되었어요. 그곳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때까지 횡성, 인제 등 강원도 곳곳을 떠돌며 살았어요. 이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니까 헤어진 친구들에게 편지를 많이 썼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래도 수줍음이 많아서 새롭게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는 건 늘 시간이 걸렸어요.

사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영월을 떠나서 연고가 없어요. 그런데 약력에는 항상 출생지를 적게 되어 있잖아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어른이 돼서 다시 가보니 많이 바뀌어있더라고요. 집집마다 벽화를 그리고 마을을 예쁘게 가꾸어서 캠핑족들에게 인기가 많은 동네가 된 거죠. ‘6시 내고향’ 등 티브이에도 많이 출현을 했다고 해요.(^^)

 

이은규: 구름이 모이는 동네…. 그윽한 이름이 인상적인 곳이네요. 갑자기 이런 말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세요.(^^) 학창시절 선배님께서는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아요.

 

이재훈: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논산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어요. 고1 말부터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어요. 연탄불 혼자 갈면서 밥 해먹고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자취 시절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어요. 사춘기가 조금 늦게 온 것 같아요.(^^) 대학을 안 가겠다고 선언했죠. 나름 지역의 명문고였기 때문에 꼴등도 대학은 갔었거든요. 일종의 반항심이었는데 남들 다 가는 대학이라서 가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인도에 가서 명상가가 되고 싶었어요. 자신을 버리고 구도를 하는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나를 지배했던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와 실존적 물음 등 때문에 괴로웠던 시절이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 지내면서 방황을 했어요. 그때 집중적으로 난독을 했어요. 특히 서울 용산도서관이 제 문학의 성지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밥값 저렴하고. 당시 우동이 천원, 김밥이 오백 원이었어요. 하루를 지내기엔 좋은 환경이었죠. 희한하게 문예지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논산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가게 된 거죠.

 

● 펼치다,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이은규: 대학 진학 거부와 명상가를 향한 꿈이 내적 필연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첫 발성인 등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대학 재학 중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셨는데 안팎의 반응이 상당했을 것 같아요.(^^)

 

이재훈: 대학을 간다면 국문과 말고는 생각을 안 했어요. 거기가면 책 읽을 수 있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하지만 학교생활도 열심히 못했죠. 부모님께 억지로 끌려간 거라 1년 동안은 적응을 못했죠. 그러다 방위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해서 본격적으로 학교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문학은 계속 독학으로 했던 거라서 2학년 때부터 각종 문예지에 투고를 했어요. 그때 당시 우리 과에 평론가 우찬제 선생님께서 계셨어요. 작품을 보여드릴 용기가 없어서 연구실 문틈으로 작품을 밀어 넣었던 생각이 많이 나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4학년 때 등단을 했어요. 학교 설립 이후 최초의 등단자였기 때문에 교문에 플랜카드가 걸렸고 졸업할 때 상도 받았죠.(^^) 막상 등단을 하고 보니 실감이 안 났어요. 삶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거의 1년 동안 청탁도 없었고요. 하지만 내적 에너지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문학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뛰쳐나가 순교할 자세가 되어 있던 거죠. 그렇게 철이 없었어요.

 

이은규: 문청 시절에 시인이 되신 거네요. 얼마나 벅차셨을까요. 현대시와의 인연이 등단지에서 근무지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대시>와 관련된 일 또는 사람들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학과 일상의 경계가 거의 없는 생활을 하고 계신데, 장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이재훈: 등단 후 중앙대대학원 문창과를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현대시>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현대시에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쭉 박사과정 진학을 하게 되었고 졸업한 후에는 잡지일과 강의를 하고 있지요. 30대 초반부터는 제 삶의 모든 부분이 문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은규: 문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의 삶…. 이번 기회를 통해 2005년 출간된 선배님의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다시 펼쳐 보았는데요. 심플한 표지와 긴 호흡의 표제작이 다시 봐도 신선했어요.(^^) 특히 표제작은 세상에 첫 시집을 내놓는 시인의 선언서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이재훈: 한 권의 시집은 나름 시인이 연출해낸 한 편의 연극이라고 생각한 거죠. 나름대로 기획을 하려고 고심을 했어요. 색깔 있는 시집, 이재훈이라는 텍스트만이 살아 있는 시집을 내고 싶었죠. 시를 통해서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위주로 묶었어요. 첫 시집이니까 근원과 욕망 등을 탐색하는 시들이 많았고. 일반적으로 첫 시집에는 자기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지는 자의식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첫 시집으로 많이 아팠죠.

표제작 이야기를 조금 하면 그 작품 제목이 너무 길어서 시집 제목으로는 생각을 못했어요. 당시 추천글을 써주신 조정권 선생님께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길어서 좀 망설여진다고 하니 그 제목이 시집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 조언으로 다소 긴 제목의 시집을 가지게 되었죠. 제목이 길기 때문에 제 시집의 제목을 외우는가 외우지 못하는가를 기준으로 저에 대한 애정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은규: 참고로 저는 외울 수 있답니다.(^^) 첫 시집 자서에 보면 “문학이 구원 자체는 될 수 없겠지만 구원을 욕망하게 하는 에너지는 되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지, 혹은 새로운 생각이 더해지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훈: 변함이 없다고 봐야겠죠. 시와 완벽히 논다는 개념이 제겐 없어요. 진지하고, 고민이 많죠. 세상에 놀 것들은 많지만, 진지하고 싶은 것들은 없어요. 전 숙연하게 문학을 하고 싶어요.

 

이은규: 문학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말씀이네요. 질문을 계속 이어나가자면, 시원에 대한 물음들이 주가 되어 시집 한 권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표제작인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포함하여 <사수자리>, <순례>, <나스카 평원을 떠난 새에 관한 이야기>, <공중정원> 등의 작품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여행 경험과 상상력은 어떻게 만나고 또 헤어지는지요.(^^)

 

이재훈: 아까 말씀드렸듯이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은 삶을 살아서 먼 곳에 대한 동경과 상상이 시를 통해 드러난 것 같아요. 대부분의 공간이 실제 가보지 않고 쓴 경험이 많습니다. 가보지 않고 어떻게 체험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단호히 아직 문학을 반쪽밖에 모르시는군요 하고 말하고 싶어요.

초창기에는 내 삶을 쓰는 게 너무 엄살을 떠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시를 썼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죠. 시를 통해 멋있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성향일수도 있고요. 문학을 통해 이상향을 이루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별이라든지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상상, 우주 속을 떠도는 것이 저에게는 실존적 고민이었기에 나름대로 치열했어요. 그런 치열함이 더 문학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선입견을 가지고 생각하듯이 별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제겐 치열한 실존의 대상이죠. 아직 삶을 이야기하기엔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을 어떻게 내릴 수 있나라는 생각도 했었고.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체험은 개별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아요.

 

이은규: 우주와 실존 그리고 시적 치열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어지는 질문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여행을 하다보면 마음에 담고 싶은 풍경을 사진에 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현대시>의 표지를 장식하는 수많은 문인들의 사진을 찍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이재훈: 에피소드는 아껴두기로 하고요. 대개 시인들은 사진 찍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요.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글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익숙하다보니,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것을 꺼려해요. 그런 부분에 일견 동의합니다. 나또한 그러니까.(^^) 모델을 찍는 것보다 시인을 찍는 것이 훨씬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인을 스튜디오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금방 아시겠죠.(^^)

 

시인과 평론가 사이

 

이은규: 선배님, 굉장히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2007년에는<현대시와 허무의식>을 출간하셨습니다. 허무의식이 현대시에 보편적인 인식의 방법임을 밝히고, 그 시의식이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졌는지를 고찰한 결과물로 읽혔는데요. 허무의식에 대한 천착의 이유와 특별히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 시인을 호명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재훈: 제 박사논문의 주제입니다. 박사논문을 수정 보완해서 낸 책이에요. 부끄럽고요.(^^) 허무의식이라는 주제론이 많지 않다보니 써보고 싶었어요. 유치환, 박인환, 이형기, 강은교 시인은 모두 허무의식이 가장 주요한 시의식이었어요.

 

이은규: 어쩌면 시인들에게 ‘허무’는 일종의 공통감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허무를 어떻게 내면화시키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겠지요. 이번에는 잠시 우회로를 따라 걸어보겠습니다. 지난 3월 시집 <명왕성 되다>와 관련된 ‘북콘서트’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상상 속 독자를 직접 대면하는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더불어서 그날 사회자와 게스트로 참석해주신 신혜정, 허연, 김태형, 오은, 김안 시인 등을 보며 문우가 많으실 것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재훈: 오로지 저만을 위한 그런 북콘서트는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있을까 싶네요. 아주 즐거웠던 체험이었어요. 함께 와준 여러 시인들에게 고맙죠. 특히 사진에는 없지만 뒷풀이를 함께 한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 날이었어요. 많은 문우가 있을 것 같은 인상이긴 하지만 의외로 외롭기도 하답니다.(^^)

 

이은규: 매체에 보도된 사진을 통해서도 그날의 벅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우에 대한 말씀을 아끼시는 그 모습이 더 애틋하게 다가오네요. 그런가하면 2008년에는 <딜레마의 시학>이 출간되지요. 부 구성에도 드러나듯이 현대시의 미래에 대한 탐색과 증언, 그리고 풍경들과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시쓰기와 비평이라는 두 가지 층위의 작업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즐거움, 괴로움 동시적으로 갖고 계실 것 같아요.(^^)

 

이재훈: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평론에 대한 자의식에 대해 자꾸 물어보시면 부끄러워요. 시인이 쓴 조금 논리적인 글로 이해를 해주시면 제 마음이 편하죠. 솔직히 말하면 괴로움이 많아요. 이것저것 붙잡다가 이도저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아서. 시 쓸 때의 모드와 평론 쓸 때의 모드가 다르기 때문에 동시에 쓰지는 못해요. 시 쓸 때는 시만 평론 쓸 때는 평론만 쓰죠.

 

명왕성 되다, 이후

 

이은규: 이번에는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에 관해 말씀 나눠 보겠습니다. 여는 질문 하나드리자면 자서 말미에 등장하는 카프카 독서실은 시편 「카프카 독서실」의 공간과 같은 곳인지요?(^^) 시 속의 “팔뚝 위에 피리를 새겨 넣자/내 몸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구절을 통해 바라보면 작품의 산실인 것도 같습니다.

 

이재훈: 카프카 독서실은 제 공부방이에요.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에 얻는 저만의 시간은 참 소중하죠. 아무에게도 침해받고 싶지 않은 그 공간에게 제가 이름을 붙여줬어요.(^^)

 

이은규: 누구나 저마다의 카프카 독서실을 꿈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 제목에는 어떤 에피소드가 숨어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더불어 명왕성 등 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첫 시집부터 지속되고 있는 시원에 대한 물음의 연장선상에 있는지요.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면 어떤 변화를 염두에 두고 시도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재훈: 어떤 변화라기보다는 별이라는 대상이 제 몸에 맞는 거겠죠. 일부러 별에만 집중한 것은 아닌데요. 존재의 시원이나 신화, 도시적 삶에 대한 성찰 등의 주제가 별이라는 대상으로 수렴된다는 게 저도 신기해요.

 

이은규: 그런 현상이 시의 ‘자기운동성’이 아닌가 싶어요. 첫 시집이 도시의 생리와 주체의 내면을 결합하며 한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기록했다면 이번 시집은 소재와 착상의 범위가 더욱 넓고 풍요로워졌으며,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호흡과 리듬도 확장되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어떤 시인에게나 첫 시집은 생채기와 같은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지나온 두 번째 시집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은 어떠신 지요.

 

이재훈: 좋은 평가를 많이 내려주시니 고맙죠. 두 번째 시집에 대해서는 아마 제가 세 번째 시집을 낸다면 더 중요한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첫 시집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의 나를 발견하려고 애썼던 시집이었죠. 그 부분에서 공감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고요.

 

이은규: 말씀을 들으니 벌써 세 번째 시집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는데요. 나를 발견하려는 몸짓이 어떠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또 드러날지 궁금해집니다. 문득 김수영 시인 이야기인데요. 김수영은 “시는 나의 닻이다”라는 말을 했지요. 선배님께 시는 무엇일까요. 더불어 이유도 함께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재훈: 제게 시는 무엇일까요란 질문은 너무 어렵고 거창하고요. 저는 시가 함께 늙어가는 애인이었으면 좋겠어요.(^^) 시와 함께 아름답게 늙고 싶어요.(^^)

 

이은규: 오늘 대담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기’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 사이를 오고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대담을 마칠게요.(^^) 감사합니다.

 

이재훈: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은규 |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다정한 호칭>이 있음.

 

_ <시현실>, 2012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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