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대담

 

  

 

내 최초의 말이 사는 영토의 영주

 

 

 

 

 

 

이재훈 ․ 조동범

 

조동범, 이재훈

조동범 : 이재훈 시인. 안녕하세요. 이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해요. 사석에서는 친한 형동생이지만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마주하니 새로운 기분입니다.

 

이재훈 : 감사합니다. 대담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는 시인이다>라는 대담집을 출간했었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대담은 이재훈 시인이 선수겠지,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인터뷰이로서는 낯설어요. 차라리 인터뷰어가 편하죠.

 

조동범 : 그래요. 저도 인터뷰이는 힘든 것 같아요. 자기 자신 안의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니까요. 더구나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국민이 비통에 잠겨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힘겹고 조심스럽습니다.

 

이재훈 : 예. 그 사고로 인해 뉴스를 보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사고로 죽어간 학생들과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먹먹합니다. 매일 눈물이 나요. 전 국민이 이 고통을 이겨내야 할 텐데요. 이 사고가 인재라는 사실, 그리고 사고에 대응하는 안이한 태도와 구조 장면을 보면 화가 솟아오릅니다. 아직도 구조중인데 구조가 끝날 때까지 유족들이나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간절하게 기도해야죠. 인간의 사악함과 무력함을 자꾸 느끼게 되어 요즘 정신적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정서적 우울을 경험할 텐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조동범 : 이번이 두 번째 수상이죠? 2011년에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받으셨고요. 1998년에 등단을 했으니 등단한 지 16년이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수상이 많은 격려가 되었을 것 같은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혀줬으면 합니다.

 

이재훈 : 면구스럽다란 말이 딱 이럴 때 쓰이는 말 같아요. 주목받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이거 쑥스럽고 어색해서 어떡하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현대시>에서 주관하는 상이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어요. 심사위원 선생님들이나 동료 시인들에게 민폐는 아닌지 여전히 걱정되고요. 제가 “거 참…”이란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상 받는 시인들은 인기가 없다던데. 저도 이제 인기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고 거 참. 또 대담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거 참. 시상식 때 앞에 설 생각을 하니 거 참. 그럼에도 많은 시인들이 기뻐해주는 걸 보면서 다행인건가 거 참. 모 시인은 누리라고 하던데 내가 누릴 깜냥은 못되지 거 참, 하면서 이번 달을 보내고 있어요.

 

조동범 : 수상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거 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웃음) 상이란 것은 그래도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 같아요. 많은 격려가 되기도 하고요. 이재훈 시인도 이번 수상이 시를 계속 쓰게 하는 그 어떤 자극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재훈 시인의 시를 보면 자신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던데요.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경우에도 그것이 가족사나 개인사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원형적 세계와 맞닿아 있어요. 시에 가족사나 개인사를 등장시키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재훈 :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들을 받곤 해요. 왜 당신의 시에 이재훈의 구체적 삶이 보이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역으로 다시 생각해봤어요. 왜 유독 제게 그런 질문들을 공통적으로 해오는 걸까 하고 말이죠. 혹시 읽는 사람들이 제 시에서 그런 모습을 바라는 건 아닌가 생각했죠. 완전히 현실의 토대를 등지고 언어를 꾸리는 시인들에게는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때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말하죠. 아마 저는 현실과 현실 너머의 경계를 이리저리 오가니까 그런 것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봤어요. 결론을 얘기하자면 자연인 이재훈과 그에 관계된 가족사가 굳이 시에 등장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이지 않을까요. 제 구체적 삶의 모습을 시의 질료로 삼을 때 과연 어떤 매력이 있을까 생각할 때 좀 회의적이죠. 김수영은 단 한 편도 똑같은 기분으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엄청 많은 제 일상이 시에 숨겨져 있어요.(웃음) 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는 과하게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에는 너무 큰 상징이라 쓰기 힘들어서 일겁니다. 어떤 찬사와 그리움과 원망을 하더라도 부모님을 얘기하기엔 부족할 뿐이죠. 형이 잘 지적해주셨듯이 제 시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꼭 이재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거든요. 원형적 세계의 상징에 가깝죠. 제 가족사를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소설감이라고들 얘기하지만 그걸 시로 써낼 재주가 제겐 없어요. 가족사나 개인사가 저의 일부를 만든 또 하나의 장본인이니 제 언어의 토대에 그런 부분이 스며들어 있겠죠. 재주 없음의 변명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네요.

 

조동범 : 그럼 이어진 질문을 하죠. 성장기, 특히 문학적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한 삶의 여정을 좀 들려주겠어요? 내가 이재훈 시인을 만난 게 꽤 오래전이지만 내가 아는 이재훈은 시인 이재훈의 모습 정도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시인 이재훈뿐만 아니라 인간 이재훈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 이재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재훈 : 중학교 때까지 저는 신의 은총 가운데 자라났죠. 삶의 모든 역정을 다 경험해본 아버지의 세계와 그걸 온몸으로 품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세계 속에서 키워졌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 위에는 종교적 세계가 있었고요. 저는 촉망받는 교회의 학생신도이자 학교의 모범생이었습니다. 저의 유년은 이주의 연속이었어요.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그러다 본가가 충남 논산에 터를 잡으면서 그곳에서 오래 정착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프로야구에서 삼성과 한화를 응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는 거죠.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친구들은 저를 항상 도시에서 온 전학생으로 오해했죠. 아마도 거친 세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제 모습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운동화에 타이즈와 멜빵 반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당시 강원도 산골에서는 단연 이채로운 모습이었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저의 반항으로 인해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생활을 했어요. 거친 남자들의 세계와 짐승들의 세계를 맘껏 경험하며 살게 된 거지요. 그 이후의 삶은 하루하루가 마치 부조리 연극처럼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전리품이라면 스스로 대학포기를 선언한 것, 말도 되지 않는 사회생활을 일찍 경험한 것,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등이 있을까요.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조동범 : 얼핏 들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네요. 언제고 그 이야기를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좀 전에 원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원형적 세계에 대한 탐구는 첫 시집은 물론이고 두 번째 시집에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개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 우주나 미지의 세계와 같은 본질과 원형의 세계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재훈에게 그러한 원형성의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요? 내 생각에는 그것이 이재훈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번 수상작의 경우에도 그런 성향은 여전하고 말이죠.

 

이재훈 : 제 시를 평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바로 원형, 신화, 우주와 같은 개념어들입니다. 신화가 시 작품의 ‘최초의 말’이라는 견해들이 있어요. 신화 창조는 신화적 상상력을 언어로 표현할 때 구현되는 것이죠. 즉 시를 쓴다는 행위는 신화 창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고요. 시는 이 땅에 없는 새로운 세계를 자신의 인식 지평 하에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잖아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시의 방향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신화나 원형이라고 하면 이미 우리에게 체득된 많은 선험적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리스 로마, 북유럽 등의 신화들이 있고 탄생 설화들과 수많은 원형적 화소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시를 쓰긴 힘들어요. 그 테마들은 이미 수없이 반복된 알맹이일 뿐 내 고유한 세계는 아니니까요.

제가 신화에 대해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신화의 이미지나 신화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환경이나 조건들이 제 뇌리에 오래 남더라고요. 어렸을 적부터 읽었던 성경도 많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요. 폴 리쾨르, 조지 캠벨, 엘리아데, 샤르댕 등을 좋아했는데요. 그런 독서경험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 미적 관심이 제 언어 속에서 오래도록 내재화되었다가 시를 쓸 때 그쪽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 시원始原에 관한 대답을 스스로 던지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제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 거죠. 그것이 제 신화성에 대한 시적 구현이라고 봅니다. 그 질문의 대답은 없어요.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죠. 시원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관통하여 어디로 향할 지가 지금 제가 바라보는 시의 길입니다. 아마 물질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 ‘돌’이라는 물질을 통해 그것을 실험해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동범 : 그렇군요. 그런데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인지 이재훈 시인의 작품은 확장된 세계라는 외연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외부로 확대된 이러한 시적 개성은 첫 시집에서부터 주요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확장된 시적 지평을 추구하는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이재훈 :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데요. 제 언어습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많이 상상해 왔거든요. 하나의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의 탄생 이전이 궁금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주로까지 상상이 나아가는 거죠. 시론에서 동일성의 시학을 보면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을 쓰잖아요. 이 세계의 본질을 하나의 시적 대상에 집적시켜 시인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인데요. 저는 이 동일성이 제 자아가 자꾸 어떤 외부로 이동하고 합일해가면서 이루어지는 방식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넓게 보면 이것도 본질적으로 동일성이 되겠죠.

 

조동범 : 그렇다면 그렇게 마련된 ‘세계’로서의 첫 시집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나요? 생각이 깊었던 만큼 특별한 느낌이었을 것 같군요. 첫 시집을 출간했을 때의 소회뿐만 아니라 시집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 시집을 출간하기까지의 기간이 좀 긴 편 아닌가요?

 

이재훈 : 네. 등단한 지 7년 만에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출간했고, 그 이후 또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명왕성 되다>를 출간했으니 요즘의 시집 출간 간격으로 보면 늦은 편이죠. 첫 시집을 준비하면서 조급해하는 후배들을 볼 때면 제 얘기를 해줘요.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위로를 받으라고요.(웃음) 시인들은 동료들을 많이 의식하잖아요. 모두 나보다 못한 시인들이 잘되는 것 같거든요. 이런 것에 자꾸 매이면 스트레스 받아서 시를 쓰지 못하겠죠.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오래 자기의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료들과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고 얘기해 줍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세상의 모든 진실과 모종의 상관관계를 맺는다면 더 좋겠죠.

때때로 시에서의 경쟁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 동력이 되기도 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저 또한 시적 욕망이 많은 사람이죠. 그렇기에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여러 면에서 문학 외적인 부분을 되도록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런 생각들이 시집 출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첫 시집을 출간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집 출판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특히 첫 시집인 경우에는 더 힘들었죠. 몇 년 전부터 시집을 묶어 놓았는데요. 출판사 선정에서부터 출간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시집을 많이 손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초반에 넣고 싶었던 시들이 자꾸만 형편없어지는 거예요. 또 제가 추구하는 방향의 시집을 기획하려다 보니 여러 시들이 걸러져서 결국 44편만 남게 되었어요. 첫 시집은 제가 가고 싶은 시적 방향을 막연하게나마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애정이 있죠. 제 딴에는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정말 공들여 기획을 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세상에 내보내는 첫 번째 책이 첫 시집이었는데 어찌 애정이 없겠어요.

 

조동범 : 첫 책, 첫 시집이라고 하니까 제 마음이 다 두근거리네요. 저 역시 첫 시집을 내던 때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누구에게든 ‘첫’은 참으로 두근거리는, 그런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자, 그럼 이제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도록 할게요. 요즘의 근황을 좀 들려주겠어요? 많은 동료들이 이재훈 시인을 시인이자 편집자로, 대학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잖아요. 시인 이재훈이면서 동시에 <현대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편집자 이재훈이기도 한데요. 편집자로서의 일상과 선생님으로서의 일상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일상 모두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문예지 편집자와 대학에서의 강의를 병행하는 삶이 벌써 꽤 오래되었네요. 앞으로 제 삶이 분명 변하겠죠.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요즘은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느낄 때가 있어요. 제 딸 은율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사람들이 모두 놀라더라고요. 벌써 그렇게 되었냐고.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네요. 제가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편이죠. 시인들의 아내는 순교자적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겨우 겨우 가장의 흉내를 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조동범 : 그런데 <현대시> 부주간으로 일하면 문학과 관련된 모임이 많을 텐데요. 그게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는지도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거든요. 편집자로서 지내는 시간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갖는 시간과는 다를 것이고, 퇴근 후에도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고 집에 돌아가서 가장의 역할까지 하려면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거기에 더해 일상의 고단함도 있을 거고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해요. 혹시 여행 좋아하시나요?

 

이재훈 : 문학 모임에는 저의 자발적 기분에 따라 다니고요. 제가 꼭 가야 하는 문학모임은 많지 않아요. 개인적인 모임들이 많은 편이죠. 제가 시도 쓰고, 가끔씩 평론이나 에세이도 쓰고, 강의도 하고 편집자도 하니까 걱정들을 많이 하시죠.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시를 못 쓴다는 건 모두 다 핑계죠.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만 저는 혼자 영화도 보고, 프로야구 중계도 보고, 도서관에도 설렁설렁 다녀요. 자주 그러지는 못하지만 혼자인 시간, 고독한 단독자의 시간을 얻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밖에서 하루 놀았으면 다음날은 원고를 쓴다거나 혼자 논다거나 육아를 담당한다거나 해요. 이게 나름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거예요. 동범형도 자신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집안 살림을 해놓고 점수를 따놓는다거나, 밀린 원고를 후딱 써놓는다거나.(웃음)

또 낮에는 일상인의 삶이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인의 자의식으로 돌아오려고 많이 노력해요. 중요한 건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의식의 집중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메모하려고 하죠. 메모하지 않으면 내가 발견한 미적인 순간을 자꾸 놓쳐버리니까요.

여행은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에요. 제가 어렸을 적부터 이사를 자주 다니고, 젊은 시절에 훌쩍 떠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서일까요. 낯선 곳에 대한 향수를 이젠 꽤 참을 만해요. 올 겨울엔 친구와 둘이 부산에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네요. 광안리에서 남포동, 보수동, 태종대까지 다니며 실컷 바람맞고 왔죠. 공간이 문제는 아니죠. 그날 부산의 바람은 제게 마다가스카르의 바람과 다를 바 없었어요. 아, 물론 가족들하고는 자주 다니죠. 가족이 생기다보니 이젠 혼자 떠나는 여행이 쉽지 않아요. 꿈만 꿀 뿐이죠.(웃음)

 

조동범 : 일상을 견딘다는 건 참 쉽지 않은 문제지요. 시인이 된 이후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문단에 나와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지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많은 시인들이 등장했고 사라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가 문단에 나오고 첫 시집을 냈던 2000년대 초중반의 시단의 모습과 요즘 시단의 모습은 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세대교체도 많이 이루어졌고, 시세계의 변화도 감지됩니다. 등단 이후 벌써 16년인데 최근 시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이재훈 : 많이 달라졌죠. 젊은 세대의 교체 주기도 빨라졌고요. 저는 아직도 선배시인들에게 젊은 시인으로 불리는데, 제 밑의 세대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제 저도 중견 아니면 선생님으로 불리는 세대가 된 거죠. 세대교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너무 빨리 젊은 시인들을 혹사시키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렇게 쓰다가 오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돼요. 또한 아직 자기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시단에서 저렇게 눈 치켜뜨고 주목하고 있으면 힘들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단이 시인들에게 이것저것 여러 스타일도 실험해보고, 자기 세계를 이쪽저쪽 두드려보고 하는 여유를 허락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빨리 새로운 것만 내놓으라 요구하죠. 유행이 끝나면 더 젊은 세대로 옮겨가겠죠.

어느 시대나 전통과 새로움은 서로 길항하며 발전을 해왔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이분법적 갈등이 시단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시인과 독자와의 소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혹은 전통과 전위의 시인들끼리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용인해 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인들을 바라볼 수 있겠죠. 서정과 모던으로 구획 짓는 전근대적인 구분법의 프레임에 갇혀서 정말 좋은 시인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치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가 드문 것처럼 대부분의 시인들도 서정과 모던의 경계에 있다고 보는데요. 이 경계에는 관심이 없죠. 우리 시단이 유행과 관계없이 자기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시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토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동범 :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일 텐데요. 시집을 내면서 늘 그렇듯 변화에 대한 시적 모색이 고민일 것 같아요. 특히 다음 시집은 지난 10여년을 마무리하고 새 출발하는 의미가 강할텐데 말이죠. 지난 시집이 2011년에 나오기는 했지만,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등단 이후 10여 년 동안의 문학적 궤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시적 모색이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시집을 낼 때마다 늘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신인이나 젊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변화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재훈 : 세 번째 시집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에서 추구하려던 세계를 확장하고, 두 번째 시집에서 고백했던 도시의 성찰이 더 처절하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새 출발이라는 말보다는 더 확장된다는 느낌이 강할 것 같아요. 시적 대상도 다양해지고, 어조도 조금 달라지고요. 앞으로 더 가야 할 세계의 지향점에 징검돌을 놓는 기분입니다. 이제 나를 벗어나 타자와, 다른 세계에 눈을 돌리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조동범 : 이제 중견(?)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말이죠.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도 궁금하지만, 시인으로서 어떤 문학적 삶을 살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시쓰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선배 시인들을 보더라도 문학적 삶을 지속한다는 게 참 어려워 보이거든요.

 

이재훈 : 저 아직 중견 아니에요. 중견되려면 멀었어요. 제가 중견이면 형도 중견이니 서로 그러지 맙시다.(웃음)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삶이라… 어렵네요. 시인이 꼭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죠. 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갈 텐데. 저도 아직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요. 제 시집의 자서에서 말한 대로 멋있게 늙는 것이 바라는 바고요. 추하거나 구차한 시인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며 살아야겠죠.

 

조동범 :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현대시>를 비롯한 한국시의 독자들과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이재훈 : 저는 시인들은 모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시인들을 살펴보세요. 특별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살아낼 수가 없어요. 때론 천형을 받은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그 형벌을 행복하게 받아낼 줄 아는 존재들이 시인들 아닙니까. 시인은 통각에 가장 예민하면서도 가장 강한 내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시인의 한 마디 말이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송두리째 전율시킬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말에 온 맘으로 귀 기울이면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조동범 : 긴 시간 고생했습니다. 다시 한 번 현대시작품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재훈 : 네. 감사합니다. 형과 대담을 하게 되어 참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_ <현대시>, 2014년 5월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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