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 평론

 

 

 

돌의 시로, 물의 시로

― 시여, 새로운 무기가 되어라

 

 

장석원

 

 

 

 

 

 

세계를 향한 시인의 뜨거운 발화가, 힘찬 육성이 여기에 있다. 그는 불이 되려 한다. 그는 불 이후의 재에 대해 묵상한다. 그는 자신을 처형한다.

나는 시가 우리의 이 땅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시가 역사의 변혁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미망을 증오한다. 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인은 무력한 시민에 불과하다. 시는 언어의 혁명이라는, 시는 영혼의 등불이라는, 시는 모국어의 수호자라는, 시는 인간 정신의 극점에서 터져 나오는 고결한 것이라는 말을 부정한다. 시는 더 이상 순수 예술도 아니고, 혁명의 무기도 아니다. 시는 이 세계에 상품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기적 같은 신기루의―그래서 소중하고 아름답고 유일한―상징에 불과하다. 시여, 그대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시여, 그대의 종말을 만인에게 알려라.

이재훈은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그의 수상 작품을 읽어보자. “막막해졌네. 타인에게 무심해지고, 타인의 죽음에 무심해졌네. 모든 감정에 무심해졌네. 가르치는 자들이 내놓는 규율에 무심해졌네.”(「평원의 밤」) 이 구절은 정확하다. 내가 이렇다. 그가 살고 있는 ‘「스틱스, 서울」’의 풍경. “시청에서 개선가가 울리고/ 교회에서는 장송곡이 울린다/ 강으로부터 날아온 비명이 가득하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시체들, 우리들. 학생들의 학교 폭력을 응시하면서 언어폭력이라는 살인무기에 대해 고발하는 「디스Diss」에서 이재훈은 우리의 외면 뒤에 묻힌 죽음을 까발린다. “결국 가루가 될 아이들. 울음이 될 아이들. 빌딩에서 썩어가는 아이들”의 “뜨거운 몸뚱이는 차가운 쇳덩이에 들어가”고 “화염으로 가루고 되”고 “가루가 되어 땅속에 묻히거나 서랍에 들어가”고 있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직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재훈이 울면서 말한다. “나르치스. 사십은 늙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사랑도 예술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고백한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나무의 짐을 나눠지고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삶의 거룩함 따위는 없다고, 오늘의 세상과 살았던 자신의 과거가 전부 거짓이라고, 깨달으며, 이재훈은 “침묵하며 자꾸 울고만 싶”다고 고해한다. 그가 “이제 순례를 떠날 때가 되었”(「나르치스」)다고, 다시 시를 써야 한다고 독백한다. 그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 결단하는 ‘나’의 눈물이 죽음의 전후를 매개한다. 이재훈은 새로 태어난다.

 

내 몸이 썩고 썩어 문드러지면 폴폴 날리는 꽃잎으로 남을까. 신비한 탄생의 시간을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네. 꽃잎은 늘 가벼운 죽음이지만 난 그런 죽음이 좋네. 꽃잎은 가장 장중하게 땅에 안착하겠지. 그리곤 온 대지가 울리고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는 첫 경험을 주겠지.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땅과 함께 밤새 울 것이네.

― 「치미는 몸」 부분

 

다시 태어난 시인이 몸이 있다. “썩고 썩어 문드러지면” ‘나’에게 자유가 찾아오겠지, “폴폴 날리는 꽃잎”이 ‘나’의 죽음의 유일한 흔적이겠지, “온 대지가 울리고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는 첫 경험”의 황홀이 ‘나’를 맞이하겠지. 이재훈이 읊조린다.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증오와 자신을 처단하고 싶은 욕망의 강도는 비례한다. 「풀이 던진 질문」에서 이재훈이 찾아낸 것. “노을은 경계도 없이 제 몸을 허”물고, “그 몸 아래 조그맣게 엎드려 졸고 있는 풀 한 포기” 앞에서 그는 “선량한 바람을 맞는다.” “머리를 숙이”자 “나를 빤히 보고 있는 풀 한 포기”를 발견한다. 풀처럼 순교하는 시인. “하늘거리며 바람 속으로 제 피를 흘리고 있”는 풀 한 포기, 이재훈. 직정直情의 언어가 일어선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 시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노래가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오직 나무만이 황금빛으로 발하고 있었지

모든 사람들은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존재할 뿐

나 또한 한낱 이 세계의 배경일 텐데

배경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란

매일 동화 쓰는 시간을 맞이하지

희미한 달이 낡은 뱃전을 어루만지며 다가오는데

 

밤이 환상의 세계라면

저녁은 동화의 세계

 

저녁이 되면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지

광장의 사람들은 어떤 저녁을 매일 그리고 있을까

하얀 치자꽃을 꺾어 어두워가는 책상 위에 두고

달금하고 앳된 향기와 함께 조금씩 늙어가는 시간

풀어진 눈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는 시간

늘어진 삶에 끼어든 늙은 햇살이 온몸을 휘감지

나무에 몸을 기댄 자는 고독해지지

― 「동화의 세계」 부분

 

어둠 속에서 “황금빛으로 발하고 있”는 나무가 다가온다. “모든 사람들은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존재”하는 저녁이 찾아온다. 이재훈은 “나 또한 한낱 이 세계의 배경”임에 불과하다고 자인한다. 그가 타인을 응시한다. ‘나’와 ‘너’를, ‘우리’를, “배경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저녁이다. 세상이 밤길 밝힐 등을 켜는 시간, 하루의 광휘가 사그라든다. 피로와 우울의 왼손과 안도와 평화의 오른손을 합장한다. “희미한 달이 낡은 뱃전을 어루만지며 다가오는” 광경이 ‘동화처럼’ 펼쳐지는 시간. “저녁이 되면 광장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저녁을 매일” 그려낸다. 우리가 살아나는 시간, 우리의 삶에 안식이 찾아오는 시간. “하얀 치자꽃을 꺾어 어두워가는 책상 위”의 어둠을 살며시 밀어내는 시간이다. “달금하고 앳된 향기와 함께 조금씩” 하루의 삶이 소멸하는, “늙어가는”, 사라지는 것들이 잠깐 숨을 뿜어 올리지만 포르르 다시 삼키고 마는, 여린 등불의 시간이다. “풀어진 눈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는” 사람들의 “늘어진 삶에 끼어든 늙은 햇살이” ‘나’의 “온몸을 휘감”는다. “나무에 몸을 기댄 자”가 “고독해지”는 시간이다. 저녁이 찾아왔다. 이재훈은 애련에 물들어버린다. 떠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시인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무서운 사랑 때문에 그는 조금 ‘울면서’ 광장을, 그곳의 사람을, 오늘을 살아낸 우리들을 껴안는다. 생기生氣의 감정이 직핍直逼한다. 시인의 살을, 살의 온기를, 온기 속의 방향芳香을 느낄 수 있다. 이재훈의 사랑을 체험한다.

 

바람이 불면 이별하겠다

바람이 온몸을 휘젓고 나가야

간신히 나지막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꽃이 피는 것엔 이유가 없고

너의 욕망도 이유가 없다

배려는 늘 사람을 고뇌하게 만든다

그대와 나 사이

팽팽한 거리만 있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 텐데

언제부턴가 몸속에 나비를 키우며 산다

싱그럽고 건강한 몸 내음에 취한 나비떼가

몸속에서 팔랑거린다

제 몸속 나비 한 마리가 다른 몸을 찾아 가는 일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몸에 한 마리의 나비만 남을 무렵

그 퀭한 광야를 품고 다니는 저녁

 

움직임 없는 구름의 속도를

무슨 까닭으로 이리저리 책망할까

숲의 교훈도 무력하고 늦은 햇살의 위로도

눈이 따갑기만 하다

겨울이 넘어가고 있었고

신비한 그림자만 남았다

침묵하는 입술만 씰룩대었다

― 「황금의 입」 전문

 

제목 ‘황금의 입’은 마지막 행 “침묵하는 입술”로 귀결된다. ‘황금의 입’에서 ‘침묵의 입’으로 여행이 시작된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온몸을 휘젓고 나”갔다. “간신히 나지막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것이 이재훈의 노래이다. 우리는 ‘작은’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의 노랫말이다. “꽃이 피는 것엔 이유가 없”고, 우리의 “욕망도 이유가 없”다. ‘나’와 ‘그대’ 사이에 “팽팽한 거리만 있었다면” ‘나’는 사랑에 빠졌을 텐데, ‘나’와 ‘당신’은 ‘배려’로 엮인, 공동의 타자였으므로, ‘우리’ 사이에 사랑이 기거할 공간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배려가 뿌리 내릴 자리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배려를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고, ‘사랑’에 자신의 존재를 함몰시킨다. 사랑은 배려를 뽑아내고, 희생을 싹틔운다. 이재훈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다. 인식이 실재로 전환된다. 앎이 세계를 움직인다. 그렇다, 사랑과 희생이다. 이것을 알게 되었던 “언제부턴가 몸속에 나비”가 들어왔다. ‘나’의 몸은 ‘나비’의 집이다. 사랑의 빛이 가득 찬 “싱그럽고 건강한 몸 내음에 취한 나비떼”가 이재훈의 “몸속에서 팔랑거”린다. 이재훈이 말한다. “제 몸속 나비 한 마리가 다른 몸을 찾아가는 일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할까. 아름다움이라고 말할까. 이재훈이 우리의 질문에 답을 내놓는다. “내 몸에 한 마리의 나비만 남을 무렵/ 그 퀭한 광야를 품고 다니는 저녁”의 먹먹함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동화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넘실거리던 이재훈의 사랑이, 사랑의 나비가 우리들 어깨와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시인에게 남겨진 것은 “한 마리”뿐. 자신의 사랑을 전부 나눠준, 전부 희생한 시인의 빈 육신에 저녁의 어둠이 차오른다. 그는 “움직임 없는 구름”이 되었다. “늦은 햇살의 위로”에도 그의 눈은 “따갑기만 하다”. 그는 지쳤다. 자신의 사랑을 다 내어주었을 때, 그의 육신은 “겨울”이 되었고, 마침내 단 한 마리의 나비마저 얼어붙어 눈발로 흩어졌을 때, 이재훈의 빈 몸이 부서져 내렸을 때, “신비한 그림자만 남”겨졌다. 이재훈의 “침묵하는 입술만 씰룩대”고 있다. 그 입이 ‘황금의 입’이다. 이재훈의 입술 사이에서 나비가 날아오른다. 우리에게 사랑이 도달했다. 이재훈의 시가 반짝이는 순간이다. 저녁에 도달하여 사랑을 발견하기까지 이재훈이 지나온 한낮의 거리와 광장으로 돌아가보자.

 

플래카드엔 권유와 명령만 있을 뿐

전투력 가진 말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서 뽐을 내지

문명의 한 구석에 제 이름을 새기려는 영혼들

왕 노릇하려고, 서로 왕 노릇하려고

생명을 능가하고, 죽음을 능가하는 이웃들

나는 왕의 언어가 없고

법의 언어가 없고

왕을 심판하는 언어가 없지

부끄러움이 없는 언어의 세계를 꿈꿀 뿐이지

이 세계에 없던 언어를 찾아 나설 뿐이지

아름다운 운율은 규칙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 때문에 만들어지지

― 「거리의 왕 노릇」 부분

 

한낮의 거리에 내걸린 “플래카드엔 권유와 명령만 있을 뿐”이다. “전투력 가진 말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서 뽐을 내”고 있다. “서로 왕 노릇하려고/ 생명을 능가하고, 죽음을 능가하는 이웃들”이 “문명의 한 구석에 제 이름을 새기려” 한다. 시인의 언어는 무력하다. 그에게는 “왕의 언어가 없고/ 법의 언어가 없고/ 왕을 심판하는 언어가 없”다. 시인의 언어는 왕의 언어가 아니고, 법의 언어가 아니고, 왕을 심판하는 언어가 될 수 없다. 시인의 언어는 왕과 법과 심판의 언어가 결단코 아니라고 이재훈이 말한다. 권력에 복종하는 언어들의 질서를 부정한다. 시인의 언어는 권력을 거부한다. 시인의 언어는 권력을 파괴한다. “부끄러움이 없는 언어의 세계를 꿈”꾸기에 시인의 언어는 무기가 된다. 정해진 것, 기존의 모든 것, 이념과 권력의 시녀를 증오하는 시인의 언어는 “이 세계에 없던 언어”가 된다. 아름다운 시의 노래는 “규칙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 때문에 만들어”진다. 시인의 언어가 ‘나비’가 되어 입술 사이에서 날아오른다. 이재훈은 “중얼거리는 입술로 거리의 왕”이 된다.

시인이 거리의 왕이 되었다. 거리의 왕, 이재훈이 지닌 무기가 그의 시이다. 이재훈이 뿔을 세우고 달려온다. 대안對岸의 사랑에 당도하기까지 이재훈이 지나온 거리를 다시 돌아본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변하지 않았”다. “구름도 흔들리고 새들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한낮의 풍경”(「악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타인의 영혼을 훔치면 왜 안 되”(「기이한 탄생들」)냐는 말이 횡행한다. “예언도 사라지고/ 초월도 사라지고/ 왜소한 지식을 입에 문 기사騎士들만 즐비한” 거리에 “자기 경험을 강요하는 꼰대들/ 침을 질질 흘리며 풋풋한 냄새를 킁킁거리는 꼰대들”(「녹색기사」)이 행진한다. 그들은 “트럭 짐칸에 가득 실인 돼지의 말을 뱉어내며 생을 즐긴다”. 이재훈은 “시가 삶의 전부라고 과장되게 눙쳤”던 자들을 떠올린다. 자신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저자를 돌아다니며 뜨거운 밥의 말을 말아 먹고” 이재훈은 “책상에 앉아” ‘꼰대들’의 언어를 살해하고, “고통의 소리 가득한 늦가을. 비에 맞아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나뭇잎 하나. 핏물을 머금은 말 한 덩이”로 새로운 ‘저자의 말’을 쓰기 위해 진력한다. 그는 “말이 죽는 법을 연습한다.”(「저자의 말」) 타락한 언어, 더러운 질서, 악령의 시를 죽이고 “머리에서 흐르는 피로 글자를 쓰겠”(「벌레신화」)다고 다짐한다. 세계를 찌를 수 있는 “변하지 않는 뼈”의 언어를 곧추세운다. 창에 옆구리를 찔리고, “꼬리는 빠져 시큰하고/ 벌건 불속에서 갈비뼈를 드러낸 채/ 울고 있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재훈은 “너덜너덜해진 빈 육체가 되어 울고 있”다. “뱀이 몸을 휘감아 숨을 쉴 수가 없”다. “일상이 일상을 읽는 밤”에, “내 몸이 불어 터져 고통을 읽는 밤”에, “뿔을 잃고 읊조리는 밤”에, “오직 죽기 위해 춤추는 날”들의 밤에 이재훈은 결의한다. 고통은 두렵지 않다. 고통이 없다면, 고통을 응시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고통에 몸을 열지 않는다면 시와 시인은 죽을 수밖에 없다. “수난이 없는 몸은 역사가 없”(「뿔」)다. 이재훈은 자문한다. 자신을 의심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짐승처럼 왔을까” “그때 우리는 참담했을까”라는 물음 앞에서 그는 “무엇을 요구할 수 없는 사십대가 된 것 뿐이”라고, “텅 빈 마음이 들어온 거”(「짐승의 피」)라고 말한다. 그리고 “허공에 통곡”을 한다. 울음이 자신을 소진시킨 후에 얻은 결의. “세계와 불화하는 가장 극적인 방법은/ 사랑임을 알지 못했”다는 후회. 이재훈은 “부패한 말들이 냄새를 피우”(「기복祈福」)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재훈은 “채찍이 내 피부에 감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가시가 박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뱃가죽이 찢어지고 창자가 흘러내려도/ 나는 기쁘겠”다고 자신을 저주한다. “내 몸이 곪아 칼로 피부를 도려내는 기쁨”에 젖어버리겠다고 다짐한다. “풍습을 거스르고 바람을 거스르고/ 스승을 거스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세계를 향해 웅변한다. “우리는 다시 이 땅으로 올 거예요/ 새로 태어난 우상들/ 땅을 호령하는 권력들에게 말하겠어요/ 대지의 증인은 우리들이며/ 흙의 몸은 바로 우리들이라고”(「벌레신화」) 외친다. 과거의 ‘나’를 처형한 후 이재훈은 눈을 뜬다. 「돌의 환」을 발견한다

 

부러진 돌부리에 채인다

굴러다니는 돌이 아니라

올곧게 서 있다가, 부러진 돌

창과 칼 혹은 바람이

돌의 몸을 반동강 냈을 것이다

사방이 어둠이었고

나를 길에 내던졌던 사람들의 눈빛만

어둠 속에서 반짝하던 밤들이었을 때

발바닥 돌덩이가 내 존재를 떠받칠 때가 있다

돌이 내 집을 떠받치고,

아버지의 약속을 떠받칠 때

돌 위에 피의 흔적이 있다

돌은 깨져도 죽지 않는다

돌은 썩어갈 육체를 갖고 있지 않아

언제나 채이고 밟히고 놀아난다

돌에 의해 소멸한 것과 태어난 자리가 한 몸이 되는

이 모든 찰나를 지켜본 돌

어둠 속에서 세상이 어지럽게 돌기 시작하면

나는 흔들거리는 운명을 본다

흔적 없이 왔다간

당신의 영혼에 몰래 깃들고 마는 돌

부처의 얼굴도 만들고, 예수의, 마리아의 몸도 만드는

성육신인 돌

영원을 살고 있는 길 위의 돌

돌로 만들어진 뭇사람 하나

그 무성한 골짜기의 돌

― 「돌의 환」 전문

 

이재훈을 ‘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돌이 된 이재훈, 돌이 된 그의 시가 획득한 염결한 의지. “이 세계를 말하지 말고 써야 하네. 가르치는 언어가 아니라 감각을 일깨우는 글자들. 피부에 달라붙어 생채기를 내고 콧속으로 들어가 온몸을 서늘하게 만드는 단 한 줄의 시를 써야 하네.”(「대리자代理者」) 우리가 경험했던 이재훈의 사랑의 경로가 이러하다. 그의 시는 세상을 향해 던져진 돌이다. 그 돌이 세상에 균열을 낸다. 절망에 젖어 시의 발화發火를 부정하는 나를 불태운다. 어제의 죽은 내가 보인다.

 

벽에 귀를 갖다 대면 물소리가 들린다. 아득하다. 눈을 감으면 당신의 소리가 들린다. 나는 늘 아득한 것만을 탐했다. 물소리, 물소리. 축축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몸이 소리가 된다. 어떤 채비도 없이 탐험은 시작된다. 돌로 된 벽. 사이사이 틈. 틈 사이사이 어둠. 슬며시 그 얇은 어둠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내 몸은 돌이 되지 못하고, 역사가 되지 못하고, 흐물흐물 유형도 무형도 아닌 정욕의 애액이 되어 돌 속에 분신한다. 돌 속에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파닥거리며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돌이 흔들거린다. 돌 속에서, 돌 속의 물속에서 노래를 부르자니 숨이 가빴다. 내 몸의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다. 살갗이 울퉁불퉁하게 딱딱해진다. 온몸이 물이 된다. 물속에서 돌이 되는 순간. 물이 돌이 되는 꿈. 돌이 된 몸속에서 아득한 물결 소리가 철썩인다.

― 「고분古墳」 전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이재훈에 의해 무덤 ‘안’에서 나는 깨어났다. “벽에 귀를 갖다 대”자 “물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으면 당신의 소리가 들린다.” 당신이 나를 깨어나게 했다. 당신의 소리가 나를 되살아나게 했다. 당신의 소리가 나를 부활시켰기에 “어떤 채비도 없이 탐험은 시작된다.” “돌로 된 벽. 사이사이 틈. 틈 사이사이 어둠”을 지나 나는 간다. “내 몸은 돌이 되지 못하고, 역사가 되지 못하고, 흐물흐물 유형도 무형도 아닌 정욕의 애액이 되어 돌 속에 분신”했다. 무덤 안에서 내가 사라진 후에, 당신이 어제의 나를 멸실시킨 후에, 나는 “돌 속에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가 되었다. “파닥거리며 지느러미를 움직”이자 “돌이 흔들거린다.” “숨이 가빴다.” 기적처럼 “내 몸의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다.” “살갗이 울퉁불퉁하게 딱딱해”졌다. “온몸이 물이 되”었다. 나는 돌 속의 물이다. 나는 살갗이 딱딱한 물이다. “물이 돌이 되는 꿈”을 꾼다. 나는 곧 “물속에서 돌이 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물이자 돌이 될 것이다. “돌이 된 몸속에서 아득한 물결 소리가 철썩”이는 꿈이 이재훈에 의해 실현되었다. 나는 물이고 돌인 시를 읽었다. 나는 이재훈의 시에 의해 시의 진실과 가능성을 다시 믿게 되었다. 그의 자성自省이 나를 데운다. 그의 시는 개안開眼으로 이끈다. 부정否定과 갱신으로 나를 이끈다. 이재훈의 수상을 축하한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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