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원시의 시간, 라다크(Ladakh)

 

 

 

이재훈

 

 

 

 

 

모르는 시간

 

풍경은 시간을 앞선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풍경은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마치 구름처럼 하늘과 지상의 일을 슬쩍 가리고 무감하게 한다. 내게는 라다크로 가는 하늘 위가 그랬다.

값싼 여행을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다. 우리는 배고픈 여행객들이었다. 서울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델리로, 델리에서 다시 라다크의 주도인 레(Leh)로 이동하는 경로였다. 하지만 델리에서 이미 지쳐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시간만큼 환승 시간도 길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꼬박 하루를 견뎠다. 델리에서 라다크로 가는 비행기를 탄 시간은 다음날 아침이 밝기 전이었다.





라다크로 가는 하늘 위에서 여명이 밝아 왔다. 피곤에 지쳐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을 때였다. 그날의 첫 햇살이 눈가를 살살 간질였다. 눈을 뜨니 저 멀리 구름에 살짝 걸린 햇귀가 보였다. “죽인다.” 그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일출 장면이었다. 노랗게 익은 햇살이었다. 햇살 아래로 양털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하늘과 구름이 풍경의 전부였다. 그러다 이내 강렬한 빛이 창안으로 쏘아들었다. 창밖을 볼 수 없을 만큼 강한 빛이었다. 온 얼굴이 아침햇살로 뜨끈했다. 기내식 커피를 한 잔 하고 나니 햇살은 수그러들었다. 구름과 파란 하늘만이 모든 풍경을 감쌌다. 햇살은 어느새 저 하늘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아침이 찬란하게 푸르렀다. 도시에서 보았던 수직과 직선의 완고함이 이 높은 하늘에서는 무력했다. 선이 아닌 면으로 뒤덮인 구름과 하늘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러다 비행기가 낮게 깔리며 내려갔다. 산맥이 나타났다. 눈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가 서로를 맞잡고 있었다. 저 밑이 바로 히말라야다. 낮게 비행하며 바라보는 산맥은 장관이었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키를 재듯 머리를 내밀었다. 산맥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다른 산맥의 몸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런 그림자들은 서로의 산맥에 검은 덧칠을 하며 묘한 명암을 만들어냈다. 힘차면서 부드럽게 감싸는 그림자가 긴장하듯 햇살의 몸에 담겨 있었다. 원시의 경이가 있다면 이런 순간일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저 밑의 산맥을 달리고 휘돌아가면서 울렁울렁했다는 것을. 저 원시의 시간들. 내가 모르는 시간들 앞에 설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자꾸만 숨이 가빠왔다.



 

오래된 사원


라다크에서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레 근처에 있는 사원들이었다. 헤미스(Hemis), 틱세(Thiksey), 쉐이(Shey), 스톡(Stock) 사원들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라다크는 티벳 불교를 믿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인도의 힌두인들과 다르게 라다크는 대부분 불교인들이다. 라다크의 곰파들은 모두 몇 천 년 전의 건물처럼 오래돼 보였다. 돌을 쌓고 진흙을 비비고 발라 만든 사원들은 히말라야의 고원에서도 몇 백 년을 견뎠다. 대부분의 곰파는 그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졌다. 그렇기에 곰파에 가기 위해서는 늘 올라야 한다. 마치 하늘 위로 오르는 것처럼. 모든 계단과 길들이 하늘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사원의 곳곳에는 낮잠을 자는 개들이 유독 많았다. 이곳에서 개는 아무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가장 미천한 동물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향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어린 스님들의 모습은 진지하면서도 천진했다.





석양이 지는 어스름. 사원으로 전해지는 사양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저물어간다는 것은 쓸쓸하거나 때론 아름다운 일인데, 이곳에서는 성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저물어가는 사양은 대지와 숲이 아니어도 근원을 향할 수 있었다. 사원으로 오르느라 지친 얼굴에 저문 햇살의 감촉이 다가왔다. 서서히 누그러지고 넘어져가는 석양을 마음에 담느라 일행들은 모두 저마다의 시간 속에 홀로 서 있었다. 햇살이 수직에서 사선으로 제 몸을 허물다가 스스로 스러지는 일. 매일 가장 꼭대기에서부터 가장 아래로의 소멸을 겪는 일. 우리는 스러질 때에야 비로소 평온해진다. 스러지고 소멸될 즈음에야 평온해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실로 오랜만에 저물어가는 일의 감동과 흐뭇함을 천천히 음미했다. 이곳에서의 모든 소멸에게 온 맘으로 경이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몇 천 년 전의 사람들과 만나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 먼 기억을 소환하는 공간에 열흘 동안 있다 온 셈이다. 작은 도랑물 소리. 바람이 발바닥을 간질이는 나긋함. 마당을 쓰는 빗질 소리. 멀리서 들리는 야크의 울음. 옆 호텔에서 두런거리는 이방의 방언들. 나는 먼 기억으로부터 왔다. 저 우주의 행성에서 지구의 어느 땅을 밟는다면 가장 먼저 이곳을 밟으리라.

 




느림

 

레에 도착해 우리는 숙소에서 하루를 온전히 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소요했다. 고산증 때문이다. 어지러웠고 메스꺼웠고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기에 느릴 수밖에 없다. 방심하여 조금이라도 뛰면 곧바로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당기고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움직이기. 그것이 라다크에 적응하는 첫 번째 일이다. 세수를 할 때도 느릿하게 얼굴 한 번 문지르고 숨 한 번 쉬어야 한다. 몸을 씻을 때도 느릿하게 물 한 번 끼얹고 숨 한 번 크게 쉬고 비누칠 한 번 하고 숨 한 번 쉬어야 한다. 말도 천천히, 걷는 것도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것도 천천히. 천천히 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찍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내 말과 움직임이 그동안 얼마나 빨랐던 것일까. 빠르게 움직이는 몸의 감각들을 느린 감각으로 되돌려놓기. 그 느림의 시간들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라다크에서는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할 수 있는 몸을 저절로 만들게 된다. 밤에는 옥상에 올라 오래도록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최초의 시간

 

판공초(Pangong Tso)는 해발 4,350미터에 위치한 가장 높은 소금호수이다. 판공초는 마법의 호수라는 뜻이다. 이 높은 곳에 염호가 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판공초는 빙하기 시대 대륙의 판들이 솟아오르고 히말라야가 융기하면서 바닷물이 높은 곳에 고여 그대로 호수가 되었다. 소금호수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판공초는 인도와 티벳에 걸쳐져 130km나 뻗어 있는 어마하게 큰 호수이다. 우리가 본 곳은 그 일부분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끝부분에 판공초가 배경이 되기도 한다. 보통은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을 하기 마련인데, 판공초는 기대 이상이었다.





레에서 판공초로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고개 창 라(Chang La)를 넘어야 한다. 창 라는 5,360미터이다. 레에서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온종일 히말라야의 가장 높은 곳을 넘고 북쪽으로 달려야 닿는 곳이 판공초이다.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얼음처럼 차갑고 공기는 더욱 희박해져 갔다. 빙하가 흘러내리는 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저 먼 시간의 흔적을 생각하기도 했다.

판공초의 끝 언저리에 닿자 긴장했던 모든 마음이 허물어지고 에머랄드빛 호수의 색깔에 눈이 멀어 버렸다. 그저 마음을 풀어 놓고 누워 있고 싶었다. 저 호수 가까이에 가서 바람을 맘껏 쐬고 싶었다. 멍하니 넋 놓고 한참 앉아보고 싶은 곳. 내게는 그러한 장소가 또하나 생긴 것이다.





원하는 마음이 아무 것도 들지 않는 곳이었다. 혹시라도 소리 지르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곳이었다. 그립다는 말이 소용없는 곳이었으며 자꾸만 침묵 속으로 잦아들어가는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원시의 기억을 하나씩 헤집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 물과 바람과 시간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 시간이 무엇을 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도록 그 시간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어둠이 깔리자 추위가 몰려들었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곳의 호수바람은 매서운 겨울바람보다 더 사나웠다. 8월의 여름이었지만 판공초의 밤은 겨울이었다. 준비해간 겨울점퍼를 입고 달을 보았고, 장작불을 피웠다. 이전의 기억은 자꾸만 스러져갔고 추위는 점점 더 몰려왔다. 어쩌면 이곳에서 만나 함께 불을 쬐고 있는 록산과 우리는 몇 천 년 전 이곳에서 만났을 지도 모른다.

 

 

동지들

 

생각하면 열흘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먼저 동행했던 여행 동지들. 어쩌다 저쩌다 이러다 저러다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 계획된 일은 늘 계획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게 되며 우연한 인연이 동지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세상에 천재시인은 많지만 그중 천재시인이자 여행전문작가인 김선생. 혼자 떠나는 여행의 달인이며 외국인들의 이성적 로망인 신시인. 늘 감동할 줄 아는 화가이자 시적 감성이 넘쳐흐르는 송작가. 인도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믿기지 않았지만 이십대 꽃청춘이었던 현지 라다키 가이드 록산. 이들은 모두 지극했다. 김선생은 피곤에 쩐 몸을 일으켜 매일 짜이를 타주며 일행의 정신적 위로자가 되어주었다. 신시인은 말할 줄 모르는 동지를 위해 통역을 도맡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할애했다. 신시인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행 고아가 됐을지도 모른다. 송작가는 우리에게 꾸밈없는 웃음을 주었다. 순간순간 많이도 웃었다. 송작가는 카메라 없이 여행지를 모두 그림으로 담는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록산은 잘 생기고 건실하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록산의 희망은 한국을 여행하는 것이라 했다. 꼭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나의 별칭은 ‘동바’였다. 동네바보라는 뜻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실실 웃으며 때론 투정도 하며 따라다니는 동바로 살았다.





라다크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라다키인들과 인도인들과 때때로 만난 서양인들. 곰파에서 만나 우리를 거처로까지 초대했던 노스님과 어린 승려들. 누브라계곡의 훈더르, 투르툭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잠시 여행지에서 스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스친 인연이지만 그들의 웃음과 표정과 냄새와 그 배경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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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니체는 알프스 산맥 깊숙이 있는 호숫가에서 영겁회귀의 사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 쓴 문장은 한 줄이었다. “사람과 시간의 저쪽 6천 피트”. 이 한 줄의 문장이 영원회귀의 철학을 낳았던 것이다. 시간은 어떤 풍경과 만나 철학으로 남고, 때로는 한 편의 시로 남는다.

모든 기억은 허전함만을 남긴다. 라다크에서의 열흘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기억이 어떤 형상으로 남을까. 지금 여기에서 보면 그 형상이 다소 비현실적인 환상과도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들의 진실은 고이 박제될 것이다. 나는 어떤 한 줄의 문장을 쓰고 왔을까. 어떤 한 편의 시를 쓰고 왔을까. 아직 모르겠다. 앞으로 열흘 동안의 라다크를 좀 더 생각한 후에 단 한 줄의 문장이 나올 것이다.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한 편의 시가 써질 지도 모르겠다.


_ <시인동네>, 2014년 겨울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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