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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9.08.17 문학관 시네마실 - 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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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19.01.22 [시가 있는 월요일] 스스로의 온기로 사는 나이
  12. 2019.01.22 [매일경제] 고통을 대하는 자세…이재훈 시집 `벌레 신화` 출간
  13. 2019.01.22 [시인의 집] ‘스스로의 온기’로 고통을 견디는 시인_이재훈 시인 ‘벌레 신화’
  14. 2018.05.20 [아시아경제] 귀가
  15. 2018.05.13 이재훈 시집 <벌레 신화> 광고
  16. 2018.05.13 불혹_세계일보(2016년 12월 26일)
  17. 2018.05.13 벌레_경기신문(2016년 12월 28일)
  18. 2018.05.13 악행극_아시아경제
  19. 2016.03.28 [문정희의 문학집배원] 이재훈, 남자의 일생
  20. 2015.08.27 송종찬_ <베리아의 들꽃>(낭송 : 이재훈) 2
  21. 2013.12.02 [경향시선 - 미래에서 온 詩] 동경(銅鏡)_ 박성준
  22. 2013.05.03 故김충규 시인 1주기 맞아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출간
  23. 2012.09.09 [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9) 명상하는 명왕성의 부족… 시인 이재훈
  24. 2012.01.29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씨 · 젊은 시인상 이재훈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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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2011.12.25 이재훈 시집 <명왕성 되다> 광고
  27. 2011.10.05 [아이뉴스24] 시인들은 어떤 사람일까…이재훈의 <나는 시인이다>
  28. 2011.10.04 [문장] 김선우의 문학집배원_ 재킷을 입은 시인
  29. 2011.10.04 [주간 동아 / 시인 오은의 vitamin 詩] 카프카 독서실
  30. 2011.10.04 [한국일보] 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_ 명왕성 되다

HOME  기획특집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86) 이재훈 시인의 ‘남자의 일생’

 ‘남자의 일생’
 

 - 이재훈 시인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찾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해설> 

 시의 일차적 풍경은 애벌레가 역경을 딛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한 마리 나비의 비상입니다. 어떤 생명체인들 산고(産苦)가 없을까마는,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데 / 온 생을 바쳤다”니 한 마리 나비로 날기 위해서는 이토록 많은 고통을 참고 견디나 봅니다. 

 이 시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비가 아니라 ‘남자의 일생’이지만 남자와 비유해 읽어보면 “남자의 애잔한 생애”가 너머로 보입니다. “늦은 오후, /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 그림자 찾아들고 /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면서 남자의 힘겨운 여정을 보여줍니다. 

 일찍이 프란츠 카프카는 소설 ‘변신 ’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의무의 무거운 짐을 진 벌레로 변신한 남자’를 등장 시켰습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새벽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외판원으로서 가족들의 삶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잠에서 깼을 때 그는 벌레로 변해 있었고 출근은 고사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든 벌레로 살다 그의 아버지가 등에 쏜 사과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나비 한 마리, / 공중으로 날아간다.”를 통해 고통이 비극적 사멸이 아니라 탄생으로 치환됩니다. 남자가 나비이면서 곧 비상이고, 나아가 마지막 시행 “풀잎이 몸을 연다.”를 통해 드넓은 시적 지평을 열어줍니다. 

 추운 겨울, 깊고 어두운 땅속에는 ‘나비로의 비상을 꿈꾸는 애벌레’가 고단한 몸을 뒤척이고 있겠지요. 마치 겨울 언강 밑으로 수많은 물고기가 움직이듯.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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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월요일] 스스로의 온기로 사는 나이

  • 허연 
  • 입력 : 2018.11.26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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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소년을 간신히 넘었을 뿐인데.
눈물을 참아야 하고 그리움도 참아야 하고
홀로 식당 문을 들어서는 서글픔도
지루한 술자리도 참아야 한다.
아직도 쓸쓸함을 사랑할 수 없나.
차가운 거리를 헤매다 방 안에 들어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할 때.
내 몸에 남아 있는 허약한 온기.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
엎드려 생각하는 사람.
엎드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지만
엎드리는 일은 자신을 잊는 일.
엎드려 이제
스스로의 온기로 인해 나는 살겠다.
- 이재훈作 `불혹` 중


중년이 된다는 건 눈물도 참고 그리움도 참는 일일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고, 그리움이 밀려올 때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는 건 젊음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불혹을 넘겨 중년이 되는 건 `스스로의 온기로 사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이 가슴을 친다.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겠지만 젊음과 헤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쓸쓸하다.

그래도 그 시절 눈물과 그리움을 실컷 앓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눈물과 그리움이 나를 키웠을 테니 말이다.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출처 :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737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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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고통을 대하는 자세…이재훈 시집 `벌레 신화` 출간

  • 김유태 기자
  • 입력 : 2016.08.19 15:43:30   수정 : 2016.08.19 17:27:31

 

59131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백년도 못 사는 인간으로만 살다 가는 인간이 있고 억겁의 시간에 자기를 올려두고 삶을 구경하다 가는 인간이 있다. 혹자는 후자를 시인이라 부른다.

이재훈(44)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벌레 신화`(민음사)가 출간됐다. 시인은 이번에도 어떤 분리주의적 시각을 유지한다.
몸에서 영혼을 떼어내 나를 구경하는 `자기 분리`랄까. 떨어져서 보니 꽃 속에 갇힌 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 `꽃 속에 산다./웅덩이에 잠겨/달콤함에 취해/먹고 싸며 늙는다.`(`벌레` 부분)

벌레로의 변신은 자기비하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삶이 닮았기에 등가를 이룬다. 더 주목할 건 내부 풍경이다. 벌레는 `기근보다 더한 맨살의 고통`(`뿔` 부분)을 겪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육체`(`벌레 신화` 부분)가 되길 희망한다.

원시를 현시하는 환시로 쓰인 작품들이 눈에 띈다. 아주 먼 과거에서 왔다는 신화적 상상력이 독특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짐승처럼 왔을까.(중략)기억이란 늘 중심이 다를 텐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검은 밤의 시간을 가로질러 왔지.`(`짐승의 피` 부분)

`광석을 모르는 고대인들은 운석을 주웠다지. 별의 살 껍질을 주워 칼을 만들고.`(`녹색섬광` 부분)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시인의 발상이 시집 한 권에 가득하다.

장은수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시인에게 "세계의 쏟아지는 폭력을 웅크리고 엎드린 채 등으로 견디면서 자신의 소리를 듣는 식물적 능동"이라는 평을 헌사했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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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스스로의 온기’로 고통을 견디는 시인

<68> 이재훈 시인 ‘벌레 신화’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6.10.01 03:08|조회 : 5261

  

     


꽃 속에 산다. 
웅덩이에 잠겨 
달콤함에 취해 
먹고 싸며 늙는다. 

그곳이 지옥인 줄 알고 
기어 나올 때 

지옥을 보려고 온 사람들 
예쁘다고 기념할 때 

벌레들끼리 서로 눈 마주쳐 
징그러워 깜짝 놀랄 때 

마지막 계절은 
툭 떨어진다. 
- '벌레' 전문
 

오래 전,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흉측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 그가 벌레로 변한 이후, 가족과 직장 등 지금까지의 일상적인 관계가 완전히 변한다는, 사람에서 비천한 벌레로 변하자 기존의 관계조차 비천해졌다는 그런 슬픈 이야기.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한 이재훈 시인(1972년~ )의 세 번째 시집 ‘벌레 신화’에 수록된 여러 시편들은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시킨다.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벌레가 된 시인이 “바닥 여기저기 팔랑거리는”(‘벌레 신화’) 처지에 놓인 것은 도시의 삶과 무관치 않다. “아무도 도시에서 살라 이르지 않았”(‘향연饗宴’)지만 시인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도시에서 살고 있다. 정글 같은 대도시에서 먹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양복도 구두도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도시는 저 멀리 있”(‘미적인 궁핍’)지만 시인은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차, 집, 양복 그리고 구두가 없다는 것은 실직했음을 뜻한다. 도시에서 월급생활자는 실직하는 순간 벌레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 고통스럽게 환멸을 견뎌야 한다. 벗어나려 날개를 파닥거릴수록 삶은 점점 더 구차해진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산다고 하여 행복한 것도 아니다. 표제시 ‘벌레’에서 보듯, 꽃 속 “웅덩이에 잠겨/ 달콤함에 취해/ 먹고 싸며 늙”어가지만 거기가 천국은 아니다. 장소에 상관없이 벌레의 삶은 벌레의 삶일 뿐이다. ‘세이렌의 노래’와 같은 꽃의 아름다움에 나를 망각하고 있다가 “그곳이 지옥인 줄 알고/ 기어 나”오지만 “마지막 계절은/ 툭 떨어”지고 만다. “벌레들끼리 서로 눈 마주쳐/ 징그러워 깜짝 놀라”는 장면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언제나 고개만 숙였습니다. 변명은 늘 부끄러우니까요. 아프면 그냥 아파야 합니다. 견딜 수 없어도 견뎌야 한다죠. 게으름을 좋아하는 저는, 참는 것이 제일 쉬운 저는, 겨우겨우 살아갑니다. 다만 구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꽃이라는 말, 약속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 ‘악행극’ 부분

“채찍이 내 피부에 감겨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가시가 박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갈라”(‘벌레 신화’)질 만큼 고통스러워도 시인은 도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참고 견딘다. 변명도 하지 않는다. “아프면 그냥 아파”하며 견딘다. “참는 것이 제일” 쉽다는, “다만 구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구절에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시인의 섬약한 마음이 느껴져 시위가 붉어진다. 시인은 꽃과 “약속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던 때”, 즉 도시의 삶 이전이나 궁핍하지 않았던 시절이 그립다.

어른은 큰소리 내지 않는단다. 
마음에 상채기를 남기고 비겁한 자가 되겠지. 
담배 연기만 뿜어 대며, 다 안다는 듯 
끄덕끄덕 대기만 하겠지. 
날 어른이라 부르는 손가락들. 
그 모든 비겁도 눈 감고 
어떠한 격정에도 미혹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 
이미 네 앞의 시간들은 결정된 것. 
가르치려 드는 꼰대들에게 
다리를 까딱거리고 딴지를 걸고 싶더라도 
어른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소년을 간신히 넘었을 뿐인데. 
눈물을 참아야 하고 그리움도 참아야 하고 
홀로 식당 문을 들어서는 서글픔도 
지루한 술자리도 참아야 한다. 
아직도 쓸쓸함을 사랑할 수 없나. 
차가운 거리를 헤매다 방안에 들어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할 때. 
내 몸에 남아 있는 허약한 온기.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 
엎드려 생각하는 사람. 
엎드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지만 
엎드리는 일은 자신을 잊는 일. 
엎드려 이제 
스스로의 온기로 인해 나는 살겠다. 
- ‘불혹’ 전문
 

시인은 “이제 소년을 간신히 넘”(이하 ‘불혹’)었을 뿐인데, “눈물을 참아야 하고 그리움도 참아야 하고/ 홀로 식당 문을 들어서는 서글픔도/ 지루한 술자리도 참아야” 하는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려놓았다. 아직 어른이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지만 “가르치려 드는 꼰대들”은 “마음에 상채기를 남기고 비겁한 자가 되”라고 훈수를 둔다.  

세상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마음 약한 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벌레처럼 바닥에 “엎드려 시를 쓰는” 일이다. “자신을 잊”고 “스스로의 온기로” 고통을 견디는 일이다. 그 고통이 생생히 느껴져 더 고통스럽긴 하지만 시인은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 벌레 신화=이재훈 지음 민음사 펴냄. 116쪽/ 9000원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6년 9월 30일 (15:08)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출처 : http://news.mt.co.kr/mtview.php?no=2016092811524779885&outlink=1&ref=http%3A%2F%2Fsear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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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귀가/이재훈

최종수정 2017.09.20 08:48 기사입력 2017.09.20 08:48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버스를 타기 전에는 맑았던 하늘인데 
 집으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린다. 
 지방 소도시의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갈 때면 늘 가혹하게 막힌다. 
 모두 저마다 집으로 가거나 
 외로움을 달랠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저녁 일터로 가는 길일 것이다. 
 휑한 마음 한구석에 빗방울이 또르륵 떨어진다.

 

 매일 보따리를 들고 어딘가로 나서는 
 장돌뱅이의 저녁이 궁금하다. 
 언제쯤 집으로 당도할까. 
 쉬어야 할 집은 멀고 
 목은 더 컬컬해진다. 
 버스 뒷자리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연유인지 생각하다 
 뒤로 가서 가녀린 등을 토닥거려 주고 싶지만
 모른 척 그냥 눈을 감는다. 
 도착할 집은 멀고 잠은 오지 않는다. 
 버스가 도착할 무렵이면 
 가까운 막걸리집부터 찾을 것이다. 
 컬컬한 목이 바짝 마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번 멀기만 하다. 아마도 집에 빨리 도착했으면 그래서 따뜻한 물에 씻고 누웠으면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제 세 정거장 남았구나, 저기 마트를 돌면 꼬마붕어빵 파는 아저씨가 보이겠지, 두 개만 먼저 먹어도 될까… 혼자 정겨운 셈을 하면서 차곡차곡 밟아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왜 이렇게 퍽퍽하고 고달프기만 한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어디 생맥주 한잔 같이할 사람은 없나 싶은 생각만 간절하다. 왜 그럴까?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다만 지금은 장돌뱅이처럼 좀 서성이다 아무 데나 들어가 아무렇게나 자고 싶고 그러다 좀 울고 싶을 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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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남자의 일생」

 

이재훈, 「남자의 일생」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찾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시·낭송 _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등이 있다.

 

배달하며

한밤중이 되면 몸에서 수선화가 피어난다는 시인. 깊은 동굴로 들어가 서둘러 어둠을 껴입고 찰박찰박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분다는 시인.
애벌레-나비-남자들은 낮에는 실존적인 제약과 필연 속에 넥타이를 매고 아스팔트를 달려 “매일 출근하는 폐인”이다.
나비는 시인이요, 일용근로자, 백수, 독학자이다.
그늘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아스팔트 위에서 뱃가죽이 뜯어지는 무력한 생명의 순환과 만다라를 읽는다. 「남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에 그만 몇 편의 페미니즘 시가 움찔하다가 풀잎처럼 몸을 연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명왕성 되다』(민음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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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찬, 「시베리아의 들꽃」

 

 
 


누가 내게 사랑을 물어 온다면
시베리아로 달려가 반란처럼 피어난
보랏빛 엉겅퀴 한 송이 보여주리
 
 
벌판에 십 개월 동안 눈이 쌓이고
자작나무 숲에 안개가 덮여도
원색의 야생화는 피어난다
 
 
유형의 길 떠나던 임을 따르다
눈밭에 나뒹굴던 여인처럼
길가에 맨발로 피어난 양귀비
 
 
여름은 짧고 길은 어두어도
그대에게 가야 만 하는 먼 길
사랑은 들꽃처럼 붉어지고
 
 
누가 내게 사랑을 물어온다면
그냥 시베리아로 달려가
엉겅퀴 한 송이 가슴에 물들여주리

 
 
 
 
_ 송종찬 – 196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했다. 1992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등이 있다.
 
 
낭송_ 이재훈 –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배달하며

    시베리아라는 시어는 호랑이와 횡단열차와 함께 달려온다.
    자본론을 읽고 있는 유리창에 추운 입김이 서리고, 이념의 가죽 군화 소리가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올 것 같은 시베리아. 가장 단단한 영혼과 가장 순결한 바람소리로 소스라치게 잠든 의식을 깨우고야 말 것 같은 시베리아! 광활한 대지와 그 대지가 품은 보랏빛 이념들을 떠올려본다.
    유형지를 따라 나선 맨발의 엉겅퀴와 양귀비! 들꽃이지만 지독한 사랑과 파멸을 동시에 품은 것 같아 슬며시 두려워지는 들꽃들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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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銅鏡)

 

깨진 기왓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그 속에서 비닐에 덮여 자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다. 콧대와 턱이 뿌연 비닐과 뒤엉켜, 툭 건드리면 바삭 부서질 것 같다. 팔딱팔딱, 손가락 사이로 심장 소리가 뛰어올랐다. 모든 소리들이 긴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탔다. 녹색의 밤.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밤. 나는 단지, 일생을 꿈꾸었을 뿐인데. 챙, 소리에 놀라 보니 사방에 깨진 파편들이 반짝였다. 깜박깜박, 수많은 눈동자가 길을 물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보랏빛 옷만 남겼다. 깊은 숲길에 안개가 뿌옇고, 여인은 안개를 덮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 천년을 건너온 어떤 눈동자에 손을 베인다. 스윽.

- 이재훈 (1972~ )

 


△ 시는 언어 속에 내장된 사유가 좀 더 극단적으로 외침이 된 형태이다. 이 때문에 몇몇 시인들은 언어가 생성되기 이전에 감각된 어떤 질감을 전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것을 초능력으로 비한다면,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일 수 있겠다. 사이코메트리란 사물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혼을 계측하여 해석하는 능력인데, 대개 이재훈의 시가 성립되는 방식이 그렇다.

 


깨진 기왓장을 자신의 주머니 속에 취했을 뿐인데 발화자는 기왓장과 함께 살다간 여인을 손의 촉감만으로 재구성한다. 손끝으로 뭉개진 얼굴을 지나 그네를 타고 노니는 소리의 운동성을 느끼고 잃어버린 신발, 보랏빛 옷의 감촉까지. 여인을 둘러싼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주머니 속에서 종합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오래된 거울에서 살다간 이미 지워져버린 삶의 기록들이자 주변의 역사들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생애의 파편들이다.

 

그가 자주 태초의 시공간을 자신의 언어 속에 안착시키고, 소멸해간 것들을 호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근대 시스템이 가진 폭력을 자신의 초능력으로 일격에 무너뜨리고, 또 회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픈 줄도 모르고 살다가 그의 시를 읽는다. 그에게는 시원(始原)이 있고, 자주 나의 손을 베이게 해 왜 아픈지 또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242025165&code=990100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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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낙타처럼 외롭게 떠난 그가 보고싶다

 

 

고 김충규 시인. 그가 남기고 간 59편의 시가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문학동네 제공

 

 

김충규 시인(1965∼2012)은 생전 ‘낙타 시인’으로 불렸다. 그의 시편에 낙타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의 삶 자체가 외로이 사막을 걷는 낙타 같았기 때문이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2003년 출판사 문학의전당을 차린 뒤 시집과 계간지를 왕성하게 펴냈다. ‘1인 출판’을 하며 격무에 시달렸던 그는 지난해 3월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떴다. 과로가 이유였다.

그가 떠난 지 1년. 고인의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문학동네·사진)이 출간됐다. 유족은 유품을 정리하다 시집 한 편 분량(총 59편)의 원고 뭉치를 발견했다. “시집을 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고인이 남기고 간 원고였다. 유족과 문우들은 원고를 정리해 1주기에 맞춰 이번에 유고시집을 펴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뚜벅뚜벅 서쪽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지 못하지만/꼭 봐야 할 건 아니지/잠자면서 잠꼬대를 종달새처럼 지저귈 때/바람 매운 날 이파리와 이파리가 서로 입술을 부비듯/한껏 내 입술도 부풀지/더 깊은 잠을 자도 돼요 당신.’(시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에서)

 

고인은 영면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문우들은 치열했던 그의 삶을 기억한다. 후배인 이재훈 시인은 시집에 실린 추모 발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사막을 홀로 터덕터덕 걷는 낙타의 상징을 온몸에 분칠한 채 시에 온 생을 밀어 넣는 모습에서 시인의 가장 매력 있는 순간을 언뜻 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행복을,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 아름답게 그려냈지만 종내 남는 것은 아픈 말들이었다.’

김충규 시인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글은 그대로 유고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이 됐다. ‘허공에 바치는 시를 쓰고 싶은 밤이다. 비어 있는 듯하나 가득한 허공을 위하여. … 소멸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이다. 소멸 이후에 대해, 그 이후의 이후에 대해… 구름이란 것, 허공이 내지른 한숨… 그 한숨에 내 한숨을 보태는 밤이다.’(2012년 1월 16일 밤 10시 25분)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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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9) 명상하는 명왕성의 부족… 시인 이재훈

 

 


퇴출의 ‘고독’ 일탈로 달래다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은 태양계 행성에서 명왕성을 제외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지름이 2200㎞ 정도인 명왕성은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나,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보다도 작고 중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해당 공전 구역 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재훈(40)은 명왕성 퇴출에서 도시인의 고독을 읽어낸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명왕성 되다(plutoed)’ 부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하고 ‘소행성 134340’으로 다시 명명된 명왕성(pluto)의 수동태 동사형인 ‘be plutoed’(명왕성 되다)’는 ‘완전히 새 됐어’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면서 2006년 미국방언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방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재훈은 이 말을 캐치해서 끊임없이 도는 서울 순환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철컥철컥 계기판 없이 흐르는 그 ‘새 된 시간’을 시로 형상화했다. 궤도를 이탈한 현대인의 고독이 궤도가 불안정하고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 사건과 겹쳐진다.

이재훈은 강원도 영월군 만경대산 아래 첫 동네인 하동면 주문리 태생이다. 일명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의 탄광촌이었다. 탄광촌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 횡성, 인제 등 강원도 곳곳을 떠돌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도 수줍음이 많아 새롭게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고교 때는 생업 때문에 충남 논산에 안착한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고1 말부터 혼자 연탄불을 갈고 밥을 해먹는 자취생활을 했다. 사춘기가 늦게 왔던지, 일종의 반항심으로 나름 지역의 명문고 출신이면서도 대학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졸업 후 서울과 대전 등지를 전전하며 방황할 때 집중적으로 책을 붙들었고 문예지도 많이 읽었다. 그는 지금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밥값 저렴한 서울 용산도서관이 내 문학의 성지”라고 말한다. 당시 우동 1000원, 김밥 500원이었다.

명상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부모의 간곡한 설득으로 논산에 있는 건양대 국문과에 진학했고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했다. 2학년 때부터 각종 문예지에 투고를 했고 은사인 평론가 우찬제 교수의 연구실 문틈으로 작품을 밀어 넣기도 했다. 4학년 때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을 때 교문에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월간 ‘현대시’와의 인연은 등단지에서 근무지로 이어져 지금은 ‘현대시’ 부주간으로 있다.

“의욕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미소를 연습한다. 거울 앞의 수많은 표정들. 낯선 얼굴, 낯선 침묵.// 다른 말은 없다. 너를 자위케 하던 기호들. 새, 별, 그리고 꽃과 나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대, 라는 말을 향해.// 기록하지도 나서지도 않았던 길에 대해. 악마의 다리를 건너는 법에 대해. 꽃의 길이 아닌, 모험의 길목에 대해. 협곡 위 아슬하게 나 있는 다리에 대해. 이 땅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는 길들에 대해.”(‘매일 출근하는 폐인’ 부분)

도시 생태와 자신의 내면적 생태를 결합해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포착하는 이재훈은 욕망으로 가득 찬 도시를 배회하는 명상가이자 ‘명왕성의 부족’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 태양계 밖의 궤도를 꿈꾸고 있다. 그 궤도는 세속을 벗어나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393349&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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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씨 · 젊은 시인상 이재훈씨
  • 입력시간 : 2012.01.25 20:17:23
한국시인협회(회장 이건청)는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유안진씨를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둥근세모꼴>. 유씨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시집 <달하> <월령가 쑥대머리>, 산문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을 냈다. 제8회 젊은 시인상에는 시집 <명왕성되다>를 낸 이재훈씨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3월 24일 오후 예장동의 '문학의 집 서울'에서 열린다.

[한겨레] ‘한국시인협회상’에 유안진 시인
등록 : 20120125 19:45

 

한국시인협회는 25일 ‘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유안진(사진) 시인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둥근세모꼴>. ‘8회 젊은 시인상’은 시집 <명왕성되다>의 이재훈 시인이 받는다.

[연합뉴스] 한국시인협회상에 유안진 시인, '젊은 시인상'은 이재훈씨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국시인협회(회장 이건청)는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유안진 시인을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둥근세모꼴'.

유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시집 '달하' '월령가 쑥대머리' '봄비 한 주머니', 산문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다수의 작품을 냈다.

제8회 젊은 시인상에는 시집 '명왕성되다'의 이재훈 시인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3월24일 오후 예장동의 '문학의 집 서울'에서 있을 예정이다.

mihy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1/25 15:41 송고


[동아일보]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씨, 젊은시인상 이재훈씨

기사입력 2012-01-26 03:00:00 기사수정 2012-01-26 03:00:00

유안진 시인(71)이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둥근세모꼴’. ‘젊은 시인상’에는 시집 ‘명왕성 되다’의 이재훈 시인(40)이 뽑혔다. 시상식은 3월 24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에서 열린다.

[조선일보]

한국시인협회상 유안진 젊은시인상은 이재훈씨

입력 : 2012.01.26 01:17

유안진 시인의 시집 '둥근세모꼴'(서정시학)이 제4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또 제8회 젊은시인상은 이재훈 시인의 시집 '명왕성되다'(민음사)가 뽑혔다. 심사위원은 신달자·나태주·허형만·한영옥·박주택 시인. 시상식은 3월 24일 3시 서울 문학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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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30일, 금요일, MBC FM라디오, 아침의 행진, 시가 있는 아침]


연금술사의 꿈

 

이재훈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촛불도 아니고 감나무도 아니다.
미끈한 자동차도 아니고
달콤한 솜사탕도 아니다.
차갑고 텅 빈 사물에
쇳물을 들이붓고 싶다.
나는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었다.
꿈을 꾸면
붉은 별 하나가 내게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손이 댈까 만지지도 못한 별이
마당에 내려와 날 또렷이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
슬픔을 우스운 몸짓으로 과장하지 않겠다.
해거름에 사양(斜陽)을 보며 사흘을 울겠다.
그러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
그 비밀의 성소(聖所)가 내 집이었다.
소멸이
내 먹는 밥이었다.


*Q 배한봉 시인을 모셨습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A 오늘은 이재훈 시인의 시 <연금술사의 꿈>을 소개합니다.

*Q 이재훈 시인은 어떤 시인인가요?

*A 이재훈 시인은 [현대시]로 등단한 중견시인인데요. 최근 민음사에서 [명왕성 되다]라는 시집을 펴낸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시 <연금술사의 꿈>은 바로 이 시집의 제일 마지막에 실린 작품입니다.

*Q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A ‘mbc fm라디오 아침의 행진 가족’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 그 꿈을 금(金)이나 은(銀)과 같은 귀금속에 비유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얻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는 연금술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시 <연금술사의 꿈>은 바로 우리 모두의 꿈이자 이 시를 쓴 이재훈 시인의 꿈인 것입니다. 이재훈 시인은 시인이니까 ‘좋은 시를 쓰는 꿈’을 꾸겠군요. 그러니까 이 시의 제목을 직접적으로 한 번 바꿔보면 ‘좋은 시를 쓰려는 자의 꿈’ 정도가 될 수 있겠지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자기를 녹이고 소멸시켜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스스로를 “매일 소멸되어야 빛나는/ 뜨거운 강철”이라고 규정합니다. 그 “빛”은 바로 “꿈”속에서 “날 또렷이 노려보는” “붉은 별”의 빛입니다. 붉은 별은 바로 ‘시’의 상징인 것이지요. 시인들은 대부분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밤을 새우며 끙끙거리는 일이 다반사인데요. 이재훈 시인은 그동안 참 많이도 엎드려 울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이제는 엎드려 울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대신 “불구덩이에 내 몸을 녹이고 녹여/ 에밀레 에밀레 신명을 내겠다.”고 다짐하는군요. 그러니까 이 시 <연금술사의 꿈>은 자신을 녹여 성스러운 에밀레종을 만들어내듯 자신의 진기를 다 뽑아서 좋은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다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인 것입니다. 소멸함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 이것은 재생적이고 윤회적인 불교 정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묵은 한 해가 감으로써 새해가 시작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출근하면 종무식이며 여러 가지 일로 바쁜 일들이 많겠지요?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우리 모두 멋진 ‘연금술사’가 되어 새해에는 꼭 마음속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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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행복] 시인을 찾아서

8월 첫째주 추천 전자책…<나는 시인이다>와 <대설주의보>
2011.08.05, 금 13:21 입력

◆시인들은 어떤 사람일까…이재훈의 <나는 시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시의 일부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고 읊어봤을 대표 시이다. 국어 책에도 나온다. 몇 번을 고쳐 쓴 연애편지에 인용했던 기억들은 없는지... 괜히 맘에 드는 이성을 붙잡고 '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객기를 부린 적은 또 없는지...

김춘수 시인은 의미와 무의미의 관계를 두고 시를 써 온 시인이었다. 김춘수 시인은 자신을 '역사 허무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시인은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러시아 작가)의 말을 빌려 "지금까지는 역사가 인간을 심판했지만, 이제부터는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라고 까지 했다. 그만큼 역사는 김춘수 시인에게 있어 이념이자 폭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재훈의 <나는 시인이다>는 한국의 시단을 움직여 왔던 35명의 시인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가 직접 시인들을 만나 때론 집에서, 때론 카페에서 대화한 내용을 기본으로 시인들의 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시인들에게 시의 의미는 무엇이었으며, 자신이 자라고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어떻게 자신의 시에 녹아들어 있는지를 시인들의 육성으로 직접 들어볼 수 있다.

<나는 시인이다-우리시대 시인 서른다섯 명의 내밀한 고백>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이재훈
출판사: 팬덤북스
가격: 7천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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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학광장 > 문장 > 문학집배원
이재훈, 「재킷을 입은 시인」 낭송 이재훈 | 20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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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재킷을 입은 시인>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어머니가 없는 공허한 시를 쓴다.
예술가들은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머리에 뿔을 단다. 광대의 옷을 입는다.
거친 발걸음으로 거리에 나가 거죽을 벗긴
날짐승을 전시한다.
대중은 환호하고, 예술은 진지하다.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고독한 오만으로 공허한 시를 쓴다.
재주 좋은 시인은
높은 나무에 올라 나뭇잎의 형상을 그린다.
시든 나뭇가지의 슬픔을 노래한다.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사로잡힌 유니콘의 뿔에 대해.
사랑하는 말발굽 소리에 대해.
문명인의 실험에 훼손당한 별의 슬픔에 대해.
스삭스삭 재킷의 말로 쓴다.
실상 외투는 어머니의 살로 만들어진 것.
재킷, 재킷! 하면* 어머니의 뇌와 심장이 실이 되어
올올이 풀려나온다.
재킷을 입고 추위를 견딘 나는
어머니에 대해 쓸 수 없다.
잠자는 숲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재킷을 태우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태어날 텐데.
재킷의 재가 나무에 뿌려져
울창한 숲이 되면,
앙상한 내 겨드랑이에 날개가 생길 텐데.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너무 추워 재킷을 꼭 껴입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재킷, 재킷 말을 건다.
 
 
* 아베 고보의 소설 <시인의 생애>에서.
 
 
 
시낭송_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음.
 
출전_ <명왕성 되다>(민음사)
음악_ 임승태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
 
 
아베 고보의 짤막한 단편소설 「시인의 생애」에서 모티브를 얻은 시이지만, 이 시를 즐기기 위해 그 단편소설을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 알고 계시죠? 스스로 물레에 감긴 실이 되고 마침내 재킷이 된 노파의 이야기가 나오는 아베 고보의 「시인의 생애」는 퍽 의미심장한 소설인데, 저는 아베 고보가 이 시를 보면 아주 즐거워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경로의 즐거움을 주는 시입니다. 풍자와 알레고리가 예리하게 살아있는, 어딘지 허를 꿰뚫는 느낌의 시. 이만하면 소설과 시의 상호작용이 퍽 아름다운 진경을 펼쳐보이는 셈.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읽고 임철우 소설가가「사평역」을 쓴 것처럼, 시와 소설이 서로에게 미칠 수 있는 좋은 관계들이 많이 만들어질수록 독자는 즐거워지지요. 이제 저는 흥미로운 마음으로 재킷에 몰두해봅니다. 시인이 공허한 시를 쓰는 이유는 재킷을 입었기 때문인데, 재킷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를 입어버렸으니 시인이 쓰는 시에는 어머니가 없고, 그러니 공허하고, 공허한데 아닌 척 허세를 부리고, 그러느라 점점 세상은 춥고, 재킷 없이는 추위를 견딜 수 없고, 그럴수록 시는 더 공허해지고, 나는 재킷을 더 꼭 껴입고…… 생명력 있고 진실 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재킷으로부터 해방시켜 드려야 하는데 재킷 없이 시인은 이 거리의 추위를 견딜 수 없으니, 이 모순을 어떻게 견딜까. 눈치 채셨겠지만 이것은 비단 시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당신은 어떤 재킷을 입고 있나요? 당신의 재킷은 안녕한가요? 당신의 어머니는 무탈하신가요.
 
문학집배원 김선우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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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8.16 800호(p72~73)

[시인 오은의 vitamin 詩] 


카프카 독서실



카프카 독서실


벽이다.

엎드려 잘 때마다 이곳은

바닥이 아니라 무른 껍질이라 생각했다.

배에 힘을 주면 지그시 열릴 것 같은

그 껍질을 깨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몸을 마음껏

비벼 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주장해야 했다.

쿵, 말문이 열리면 긴 오솔길이 펼쳐지곤 했다.

한참을 걸었을 때 울창한 숲이 보였다.

나는 구름을 먹고,

신성한 사랑에 대해 논했다.

풀숲에는 소리가 고여 있었다.

풀을 헤치니 소리가 서로 밥을 먹고 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나무의 텅 빈 몸에 구름을 토했다.

검은 말들이 꿈틀댔다.

가련한 밤,

문신을 새기는 꿈을 꾸었다.

팔뚝 위에 피리를 새겨 넣자

내 몸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창밖엔 십자가가 흐른다.

가로등이 떠다닌다.

감정 없이 장단만 있는 노래.

이 방은 어둠이 몸 푸는 자리,

얼굴도 없고 가슴도 없다.

빗방울도 없이

빗소리가 내리는 방.

엎드려 자고 있으면

살포시 몸에 감기는

빈 말들의 뼈.

― 이재훈 ‘명왕성 되다’(민음사, 2011)에서


빈말을 채워야 할 시간이 닥쳤다

재수 시절, 나는 학원 대신 독서실에 다녔다. 유독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독서실도 일부러 집에서 좀 먼 데로 잡았다. 그래야 마음이 덜 흔들릴 것 같아서였다. 컴퓨터, TV, 그리고 침대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독서실은 밤낮으로 어둡고 습했다. 스탠드를 켜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에어컨에선 물이 뚝뚝 떨어졌다. 눅눅해진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퍽 서글퍼졌다. 시간 가는 줄도 알고, 시간이 잘 안 가는 줄도 알던 시기였다.

혼자서 저녁 먹고 들어와 식곤증에 고개를 끄덕거리다 보면 “창밖엔 십자가가 흐”르는 게 예삿일이었다. 어떤 종교도 나를 붙잡아주지 못할 것 같았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으면 눈앞에 둥둥 “가로등이 떠다”녔다. 가로등은 점멸등처럼 자꾸 깜박거렸다. 그만큼 나는 불안했다. 기약 없는 일을 남들보다 일 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책하는 날이 늘어났다. 나는 왜 이토록 유약한가. 나는 왜 사소한 것에 쉬 휘둘리는가. 카프카가 아니어서 나는 감히 ‘성’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사방에 덫이 깔린 것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저녁 먹고 들어왔더니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이 좀 들까 해서 독서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후 8시, 여느 때처럼 가로등이 켜지던 순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뜬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릿속에 빛줄기가 흡사 빗줄기처럼 내리쳤다. 그날이었다. 내가 독서실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나는 줄기차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면서도 그게 시라고는, 시가 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다. “오솔길”과 “울창한 숲”을 요리조리 헤치고 나가는 게 그저 즐거웠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고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지만, 이미 나는 마음속으로 시원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할 말은 아직도 “풀숲”처럼 곱슬곱슬 우거져 있었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됐다. 하루가 점점 짧게 느껴졌다. 인수분해를 하고 판구조론에 대해 공부해야 할 시간에 나는 말을 처음 배우는 심정으로 단어들을 장난감 블록처럼 가지고 놀았다. “팔뚝 위에 피리를 새겨 넣”으면 “내 몸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독서실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됐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내 운명을 발견한 셈이다. 그래서 오늘도 “완성되지 않은 몸”들은 기꺼이 독서실에 간다. 시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만의 방’을 찾아든다. 지금도 분명 “빈 말”들이 “뼈”가 돼 누군가의 “몸”에 “감기”고 있을 것이다. 빈말을 채워야 할 시간이 또다시 닥친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를 꺼내야겠다. 더는 창백할 수 없는, 더없이 새하얀 것으로. 그리고 나는, 곧, 너를 채울 것이다.

 

오은 |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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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명왕성 되다(plutoed)

이재훈

입력시간 : 2011.08.21 20:39:35  수정시간 : 2011.08.21 21:36:42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아름다운 시 한 구절을 외우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미국 방언협회는 'plutoed(명왕성 되다)'를 2006년의 새 단어로 선정했대요. '태양계로부터 소외당했다'는 뜻입니다. 그 해 명왕성은 태양계의 행성 지위에서 퇴출당했거든요. 명왕성이 태양 궤도를 돌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강제로 잊혀진 별이 되었을 뿐. 깊은 피로감에 휩싸여 우리는 이탈한 적도 없으나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는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고 싶던 별같이 환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아직도 몸을 뚫지 못한 폭풍 같은 열망이 살갗에 멍을 남깁니다. 그 멍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 일상의 궤도를 향해 뛰어가지 못해요. 그냥 문이 닫혀주길 기다립니다. 오늘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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