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태관 형님. 요즘 노성은 어떤가요. 꽃들이 활짝 펴서 지천이 꽃밭이겠네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서성이는 산성 근처를 매일 오고가시겠지요. 요즘은 노성산에 둘레길도 잘 조성해 놓았다고 들었어요. ‘형수님과 손잡고 자주 거닐고 계시지요? 여름이 오기 전에 또 콧바람 쐬러 갈게요.

제가 등단 초기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형님을 알게 된 게 아닐까요. 논산이라는 시골에서 시인을 만난다는 게 어려울 때였어요. 1998년이었을 겁니다. 문학평론가 이형권 선생님이 논산 계실 때 저를 불러내었죠. 좋은 시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시며 소주 한 잔 하자고요. 그렇게 우리 셋은 식당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물론 형님은 막걸리를 드셨겠지요. 저는 이것저것 먹었을 거예요. 술도 약하니까요. 그러다 이형권 선생님 댁으로 가서 두 분은 바둑을 두시고, 저는 문학평론가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구경했어요. 무엇이든 닥치고 읽었던 시절이라 책 구경이 제일 좋았거든요. 아주 잠시 나도 바둑을 둘 줄 알았더라면 생각했지만 멋진 서가를 보는 순간 마음을 곧 빼앗겼어요.

누가 바둑에서 이겼는지는 생각이 안 나요. 진 사람이 술을 내기로 한 것은 맞겠지요. 우린 곧바로 포장마차로 갔으니까요. 그때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한 안주를 먹었지요.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빙어를 씹어 먹는 안주였어요. 대접에 빙어가 열댓 마리 놀고 있었고 그중 한 마리를 집어 들고 초장에 찍어 먹는 안주였어요. 저는 비위가 안 맞아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빙어가 너무 파닥대면 초장이 옷에 튀니 먼저 빙어대가리를 초장에 푹 넣어 기절시킨 다음 먹는 거라고 친절히 설명도 해주었지요. 시인 선배의 월권으로 이건 먹어야한다고 하여 눈 딱 감고 입에 넣고 무조건 씹었죠. 아 예상대로 별로였어요. 너무 비렸거든요. 그런데 형님은 아예 안 드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형님도 비위가 안 맞아 안 드셨던 거죠. 뭔가 당한 느낌이랄까. 내가 산 빙어 먹는 모습을 보며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아 불안했는데. 갓 등단한 어린 시인을 놀려주려는 맘도 있었겠지요. 그 시절부터 제가 형님을 따라다녔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원 진학으로 서울로 가고 이형권 선생님은 충남대로 직장을 옮겨 가셨고 모두 논산을 떠날 때도 형님은 논산을 지키셨어요.

논산 노성면 윤증고택에서 찻집을 하실 때가 너무나 선명히 떠올라요. 그때는 제가 대학원을 마치고 건양대에 출강을 할 때인데요. 강의를 마치면 자주 노성을 찾았습니다. 찻집 창문을 열고 달빛에 바라본 하얀 구절초밭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어요. 지금도 그런 황홀한 꽃밭은 본 적이 없어요. 그때 형님은 막걸리를 치고 노래를 불렀지요.

. 막걸리. 형님하면 자연스레 막걸리가 떠오릅니다. 세상에서 막걸리를 가장 좋아하는 시인. 술은 오로지 막걸리만 먹는 시인. 저도 형님 따라 막걸리를 좋아하게 되었고요. 노성에 있는 가내술도가에서 받아먹는 막걸리는 정말 최고였어요. 말통에 술을 받아서 노성산에 가서 먹었던 날도 있었어요. 제가 그랬지요? 아니 어떻게 사람이 이걸 다 먹을 수 있냐고요. 제가 조금 거들긴 했지만 형님은 그걸 해내셨어요.

제가 형님께 받은 유산이 있다면 시인으로서의 자존 아닐까요. 형님은 시인들과 잘 섞이는 거 같지만(술을 드실 때는 가장 유쾌한 사람이죠), 어딘가에 섞이지 않고 늘 외따로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실제로 그렇게 사셨죠. 시인의 이름으로 굽신거리거나 손을 비벼본 적이 없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시를 쓰고, 시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읽어주었죠. 그래서 시인들이 형님 주변으로 모이나 봐요. 시인의 태도, 시인의 삶, 남편과 아빠로서의 삶까지도 많은 얘기를 해주셨지요. 제게는 정말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되었어요.

형님은 늘 바람처럼 사신 거 같아요. 출판사도 운영해보고 시도 가르쳐보고 전기일도 해보고 황태도 다듬어보고. 모교인 충남대학교의 출판과장도 하셨지요. 전국 대학출판과장 모임에서 폭발적인 인기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죠. 그렇게 여러 일들을 했지만 늘 시를 놓거나 등한시한 적이 없었어요. 시를 삶의 가장 중심에 놓았어요. 일은 시를 위한 여러 호구지책들인 거죠. 자주 창작 레지던스에 입주하여 지냈으니까요.

 

사랑을 하라

하나뿐인 목숨으로

이 겨울

떨어진 잎이 나무의 뿌리를 덮듯

사랑을 하라

그 사랑이

모과향처럼 단단히 무르익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딱 열 번만 거푸 가슴으로 삼켜보라

그러고 나서

그 떨림을 시로 써라

그래도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술이 술독을 박차고 나오듯

시가 솟구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세상 누구도, 아니

당신 자신조차도 사랑할 자격이 없다

이태관, 떡갈나무 아래서의 시론전문(숲에 세 들어 살다, 달아실)

 

저리도 붉은 기억은 늘 형님의 삶과 사유의 사이에서 서성이이다가 시로 툭 떨어졌어요. 그땐 강과 길이 사유의 실마리를 주었는데. ‘나라는 타자를 만나면서 바람이 온몸을 관통하는 시를 보여주었고요. 최근 시집 숲에 세 들어 살다에서는 나무와 열애중이지요. 숲과 나무와 대화를 하다보면 떡갈나무 사랑학을 덧댄 시론이 탄생하는 것인가요.

요즘도 저는 서울에서 논산을 오가며 지나가는 풍경들을 유심히 보는데요. 더 정겹고 애잔하네요. 시간은 풍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나 봐요. 풍경도 오래두면 익나 봐요. 저는 언제 숲에 세 들어 살까요. 일찌감치 숲과 나무와 열애중인 형님에게 비밀을 엿들어야겠어요. 그럼 다음 주에 찾아 뵐 테니 기다리고 계세요.

출전 : <시와경계>, 2021년 여름호.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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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사회), 이성혁, 윤석정, 서윤후

 

1. 들어가면서

 

이재훈 : 안녕하세요. 시사사 좌담 사회를 맡은 이재훈입니다. 이번 계절에는 얼마 전 작고하신 세 분의 시인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좀 무거운 자리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워하는 시인은 금은돌, 이윤설, 김희준 시인입니다. 여기에 모신 선생님들은 작고하신 시인과 오랫동안 교유하며 가깝게 지내온 분들입니다. 작고 시인을 기억하고 되새기는데 누구보다 잘 얘기해주실 것으로 생각하여 모시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성혁 : 안녕하세요. 저도 이재훈 시인, 윤석정 시인, 서윤후 시인과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금은돌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재훈 시인의 초대로 이 좌담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금은돌 시인과 함께 <사월> 동인이었기 때문에 초대하신 거겠죠. 초대를 받고 얼떨결에 응낙했는데 지금은 좀 후회하고 있습니다. 금은돌 시인과 저보다 더 깊은 친분을 맺은 분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좌담 초대를 거절하기엔 너무 늦었더군요. 금은돌 시인에 대한 심층적인 기억의 자리가 다른 곳에서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윤석정 : 안녕하세요. 이재훈 시인을 비롯해 이성혁 평론가, 서윤후 시인을 오랜만에 뵙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이윤설 시인은 투병 끝에 20201010일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반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시인이 이 세상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고 시인들을 기억하고 삶과 시 세계를 조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계간 시사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인의 생은 짧았지만 시의 생은 길 것이라 봅니다. 독자들이 시인을 기억하고 시를 아껴주신다면 시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테니까요. 오늘 좌담을 통해 안타깝게 작고하신 시인들과 시들이 독자들에게 관심 받고 사랑 받길 희망합니다.

 

서윤후 : 안녕하세요. 이 자리를 마땅히 거절했어야 하지 않을까 좌담에 오면서도 계속 생각을 했습니다만, 김희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누군가가 계속 기억하고 떠올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2. 각자의 근황

 

이재훈 : 먼저 들어가기에 앞서서 각자의 근황도 궁금합니다. 코로나 시국이 2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시단의 선후배들과도 교유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고투를 벌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윤후 : 코로나 시국에 맞게 적응하며, 나름대로 생활을 돌보는 데 애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곧 새 시집과 산문집 출간을 앞두고 있어서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아침달에서 일을 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고요. 이사까지 겹쳐서 무척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이, 제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분주한 시간을 찾아다니고 있는 듯합니다. 요즘에는 예전과 다른 풍경을 아쉬워하지 않고요. 예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요.

 

윤석정 : 코로나19는 우리의 삶과 일상을 바꿔놓았습니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시단의 교유뿐만 아니라 시집 발간, 시상식 등의 축하 자리를 비롯해 애도의 자리마저 코로나에게 뺏긴 듯합니다. 가족들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들은 어린이집에 나갈 수 없을 때가 있고, 저는 재택근무해야 할 날이 늘어났습니다. 직장이 있는 빌딩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여러 번 코로나 검사를 받기도 했죠. 저절로 업무에 차질이 생겼고 직장에서 진행하는 규모 있는 사업들도 순탄치 않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모두들 피로감이 쌓였고 많이 지친 듯합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사라져 일상이 회복되고 어디든 맘 편히 여행을 떠나고 싶네요.

 

이성혁 : 저도 1년 반이 다 되어 가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삶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이렇게 오래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강의도 언택트로 진행하니까 강사로서의 보람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요. 이런 언택트가 지속되면서 삶의 의욕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씩 우울에 삶이 갉아 먹히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집에 주로 있다고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많이 쓰게 되지도 않더군요. 멍하게 유투브 보면서 시간을 날릴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과의 대면적인 만남, 그 육체성이 얼마나 삶에 큰 의미를 갖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나날입니다.

 

3. 유고시집

 

이재훈 : 올해에도 시인들의 안타까운 작고 소식이 들려와 슬펐습니다. 김형영, 유병근, 최정례, 김점용, 김길녀 시인. 그리고 이 좌담을 끝내고 퇴고하는 과정에 시사사1호 등단 시인인 김명서 시인이 별세하셨습니다. 모두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추억하는 세 분의 시인을 요절시인으로 지칭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이를 떠나 세 시인 모두 첫 시집을 상재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김희준 시인은 작고한 이후 유고시집이 나온 상황이고요. 금은돌, 이윤설 시인의 유고시집은 현재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고한 이후 유고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고심을 하셨을 텐데요. 이와 관련해서 진행상황이라든가, 기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먼저 서윤후 시인부터 얘기해 주세요.

 

서윤후 : 김희준 시인의 첫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은 지난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시집 준비 과정에서 어머니인 강재남 시인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이 들고요. 시집 발간을 준비하고 진행하신 김민정 시인의 보살핌이 무척 컸던 시집이란 생각이 듭니다. 유고 시집은 응답해줄 수 있는 시인이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에, 갈피를 못 잡거나 작업이 부연해질 수도 있는데, 그런 어려움을 서로 도와 지워가며 만들어진 시집들이기도 한 것 같아요.

 

윤석정 : 이윤설 시인은 1주기에 맞춰 문학동네에서 시집이 발간됩니다. 지난해 827, 저는 군포G샘병원 1113호실을 찾아갔어요.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이었던 그는 마지막으로 시집을 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시 원고 정리와 시집 투고를 저에게 부탁했죠. 그는 병이 깊어 삐쩍 말라 있었고 간병인 없이는 거동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간병인에게 부탁해 화장(化粧)을 하고 저를 반겨줬어요. 아마 제게 초췌한 얼굴을 보이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는 혀가 굳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는데 온 힘을 다해 말을 뱉어냈고 주변인들의 안부를 물었고 언제나 그랬듯 유쾌한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시집 원고에 대해 나희덕 시인과 의논하길 원했습니다. 저는 나희덕 시인에게 시집 원고를 전달했고 문학동네를 두드렸죠. 감사하게도 문학동네의 김민정 시인이 시집 발간을 서둘렀습니다. 시집 계약을 진행했고 추석 무렵 조판을 마쳤습니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제게 석정아, 시집 나왔어?”라고 물어봤어요. 그만큼 간절히 시집을 기다렸죠. 김민정 시인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시집을 발간하려고 했는데 시집이 그를 붙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시집 원고에 포함되지 않은 시가, 시인이 문예지에 발표했던 시가 더 나올 수 있어 1주기에 맞춰 시집을 발간하기로 했답니다.

 

이성혁 : 사실 제가 시집 출간 문제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요. 금은돌 시인의 아들인 조원효 시인이 금은돌 시인의 시 원고를 수합하여 시집 출간을 위해 어느 정도 정리해 놓았다고 알고 있을 뿐이에요. 시집 원고는 조원효 시인에게 부탁하여 파일로 갖고 있기는 합니다. 아직 출판사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고와 관련해서 제가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긴 합니다. 금은돌 시인은 시만 쓴 것이 아니라 평론도 많이 썼고 화가이기도 합니다. 금은돌 시인이 저 세상으로 가기 직전에 시와사람에 연재한 예술 에세이들을 묶어 김태형 시인이 운영하는 <청색종이>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로 계약을 맺었어요. 이 과정에 제가 다리를 놓은 일이 있어서 그나마 이 책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금은돌 시인은 이 책이 나오기 이전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금은돌의 예술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작년 12월 말에 출간되었습니다. 책에 실린 이 글들은 잡지에 연재되었을 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들이에요. 아직 유고 시집이 출간되지 않은 상태이니, 금은돌 시인을 기억하고 싶으시면 일단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시와 미술에 대해 금은돌 시인이 얼마나 애정과 열정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해박하고 깊은 인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힐 책이기도 하고요.

 

4. 시인과의 만남

 

이재훈 : 시인과 첫 만남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 자리에서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추억해보려고 합니다. 삶의 이력과 시작활동을 자유롭게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윤석정 : 이윤설 시인은 1969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어요.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를 거쳐 명지대 철학과,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이어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문학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공부에 대한 열정도 매우 컸어요. 저는 2003년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처음 그를 만났습니다. ‘포에티카시 연구 모임을 함께 했죠. 당시 그는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시 합평할 때마다 시를 보는 눈이 깊어 감탄했죠. 알고 보니 그는 십 년쯤 시를 썼다가 소설로 장르를 바꿨더라고요. 소설도 곧잘 써서 공모전 최종심에 여러 번 거론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시에 대한 어떠한 경외심이 있었고 시선이 매우 따뜻했습니다. 그는 시의 단점보다 장점을 발견해 주었고 시 창작자의 잠재된 가능성을 짚어냈어요. 저는 그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 덕분에 주눅 들지 않았고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등단에 목말라 있던 그가 처음 쓴 희곡을 2004동아일보신춘문예에 투고해 등단했을 때 놀라웠습니다. 제가 2005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그해 그는 토지문학관에서 오래오래 마음에 내장된 시를 마구 꺼내기 시작했다고 했어요. 3개월 동안 시를 200편쯤 썼다고 했을 때 놀라웠습니다. 이듬해 조선일보세계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더욱 놀라웠습니다. 사실 그의 문학적 재능과 피나는 노력을 지켜봤다면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성혁 : 금은돌 시인은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책을 적잖이 냈습니다. 시집은 생전에 출간하지 못했습니다만. 사실 그의 이력을 줄줄 제가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앞에서 말한 책에서 이력을 보고 말씀드려봅니다. 금은돌 시인은 1970년 안성에서 태어났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기형도 문학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논문은 기형도에 대한 최초의 박사학위로 알고 있습니다. 2008년에 애지로 평론, 2013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올랐고요.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라는 연구서, 그리고 평론집 󰡔한 칸의 시선󰡕, 󰡔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 눕혔을까󰡕를 펴냈고 앞에서 언급한 󰡔금은돌의 예술산책󰡕이 유고집의 하나로서 출간되었습니다. 특기할 만한 일은 1인 무크지 󰡔mook󰡕을 냈다는 점과 화가로도 활동했다는 점입니다. 금 시인이 󰡔mook󰡕 출간을 말해주었을 때 저는 무척 놀라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호까지 갖고 있는데 더 출간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mook󰡕은 은돌 시인의 글과 그림, 디자인이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의 잡지입니다.

, 제가 은돌 시인과 처음 만나게 된 건 <사월> 동인이 결성되면서였어요. <사월> 동인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동인입니다. 참사 이후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무엇인가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뜻 맞는 이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2014년 말에 동인이 결성되었는데 동인지는 현재 1호만 출간된 상태입니다.(제가 원고를 내지 않아서 2호 출간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2호가 출간된다면 금은돌 시인 추모호가 될 겁니다.) 김명철 시인, 방민호 평론가, 박현수 시인, 김선향 시인, 임지연 평론가, 금은돌 시인 그리고 제가 동인 멤버였고요. 동인이 구성되어 처음 중국집에서 모이게 되었고 이때 금은돌 시인을 처음 보게 되었어요. 첫 인상은 소년 같다고 할까, 열정과 순수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서윤후 : 제가 시인동네편집장으로 일할 때, 김희준 시인이 등단하여 처음 알게 되었어요. 아주 어린 나이에 등단을 해서 제 일처럼 우려하고 걱정부터 앞섰던 기억이 납니다. 묵묵하게 주어진 것들을 해내고,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언어를 길어 올리던 착한 후배였어요. 태어나 자라온 곳에서 인정받고, 예쁨 받는 사람이었으니 희준의 성실함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이 어땠을지는 이루 말할 것이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시인을 보면서 저를 많이 돌이켜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조급해 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 언어를 쌓아 올리는 사람이었죠. 희준 시인의 낭독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데, 떨지도 않고 자신의 등단작을 또박또박 읽어가던 시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정이 많고, 친구들과 좋아하는 것들의 둘레를 넓혀가며 살아가던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5. 시인과의 교유와 품성

 

이재훈 : 시인과 함께 교유하면서 생각나는 에피소드라든지, 시인의 성품을 느끼게 한 사건이라든지, 평소의 습관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궁금합니다.

 

서윤후 : 사실 희준 시인과 오랜 시간 알았거나, 각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어떤 우정을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이 들어요. 시인이 시인을 생각한다는 것도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한다는 어떤 동료애와 존경의 마음 같은 것이 희준 시인에게 있었는데요. 2019년에 희준 시인의 초대로 통영에 특강을 간 적 있었어요. 그때 터미널에서 내리는 것부터 어떤 숙소에 지내는지 등 살뜰하게 챙겨주었던 기억이 나요. 특강 전날, 희준 시인의 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요트장에 가서 사진도 찍고 같이 무화과도 나눠 먹었던 기억도 나고요. 시원한 초가을 밤이었는데요, 희준 시인이 스마트폰 어플로 제 별자리를 비춰주었던 것도 생각납니다. 저도 그해 치앙마이 여행에서 사왔던 실크 스크린 그림 한 점을 희준에게 선물했었어요. 서로 주고받은 편지와 선물이 있었는데 어쩐지 제가 더 많이 받고 있다는 느낌, 부채감이 있어서 앞으로 함께 쓰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숙제가 더 커지게 되었지요.

 

윤석정 : “한 번 시인은 영원한 시인이다.” 이윤설 시인이 제게 했던 말입니다. 제가 생활에 치우쳐 시를 쓰지 못하는 고통을 토로했을 때 위로가 된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시인의 마음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희곡을 쓰고, 드라마를 썼던 것 같아요. 그를 참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제가 볼 땐 품이 넓은 사람이었죠. 그러나 그는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려고 했어요. 그는 가족을 족쇄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어요. 오롯이 혼자만의 창작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외로운 고투라고 봐요. 십 년 전쯤 그는 글 쓰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아이덴티티라고 말했죠.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자주 칩거했고 2008년 홀연히 호주로 떠나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6517, 그가 보낸 이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의 매일 매일의 인생을 벗과 더불어 가깝게, 즐거이, 보내고 싶다.”라고 했어요. 그는 늘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을 그리워했습니다.

 

이성혁 : 사실, 저도 은돌 시인과 각별한 사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좌담에 다른 분이 나와야했다는 생각이 또 드네요. 동인 활동을 하면서 같이 술은 많이 마셨어요. 술자리에서 은돌 시인이 하는 말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은돌 시인의 그림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몰입하며 들었어요. 그의 성향이라든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폰에 저장되어 있는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휘몰아치는 마음의 정동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은돌 시인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사람들에게 곧잘 선물로 주곤 했어요. 저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이미지를 달팽이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저도 은돌 시인에게 받기만 했네요. 각별한 사이여서 은돌 시인이 제게 선물을 준 건 아니고요, 은돌 시인은 타인들에게 무언가 주기를 좋아했어요.

제게는 금은돌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마크 로스코 전이 열렸을 때 그 전시회에 저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제가 당일 약속을 펑크 내고 말았습니다. 그놈의 밀려버린 원고 때문이었죠. 그래서 은돌 시인 혼자 전시회에 갔다 왔습니다. 나중에 만났을 때 제가 전시회 어땠냐고 물으니까 로스코 그림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 은돌 시인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제게 은돌 시인은 커다란 로스코의 추상화 앞에서 펑펑 울고 있는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은돌 시인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잔잔하게 대화를 하는 사람이지만, 제게는 휘몰아치는 열정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사람, 폭풍을 머금은 구름 같은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6. 마지막 모습

 

이재훈 : 금은돌, 이윤설 시인은 투병을 하시다가 작고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인의 마지막 바람이나 마지막 모습들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성혁 : 은돌 시인은 투병하다가 작고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어요. 그것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짜인 416일 하루 전인 415일에 말입니다. 심근경색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비보를 듣고 너무 놀라서 믿기지 않았어요. 세상을 뜨기 얼마 전에도 통화한 일도 있고 해서요. 작고하기 얼마 전에 만났을 때도 새로운 작업을 계획하면서 들떠 있는 소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쓰고자 하는 시,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많았을 겁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와 만나면 예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느껴져서 저까지도 뜨거워지게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너무 뜨겁게 살아서 일찍 세상을 뜨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 팔십 평생 살면서 발산할 에너지를 은돌 시인은 짧은 생을 통해 그 몇 배나 발산하다가 쓰러진 건 아닐까 하고요.

 

윤석정 : 이윤설 시인은 영원한 시인으로 남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바라는 시인의 영원성은 시를 통해 가능할 것이고, 시집이라는 물성이 있어야 시가 남을 수 있으니 시집을 묶고 싶어했으리라 봐요. 제가 처음 병실에 찾아갔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너처럼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즐겁게 살고 싶었는데. 그게 가장 후회돼!” 앞서 말했듯 그는 과 더불어 인생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죠.

 

이재훈 : 김희준 시인은 정말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세상과 작별하였습니다. 모두가 정말 놀라고 안타까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요. 서윤후 시인은 어떠셨는지요?

 

서윤후 : 여름 장마로 며칠 거세게 비가 내리고는 거짓말처럼 맑고 화창한 여름이었어요. 회사 앞 테라스 스툴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제가 서명이 바뀐 시집을 부쳐서, 그것을 일러주면서도 시집에 대한 감상을 곡진히 적어 보내주며 카톡을 주고받았었는데요. 이 갑작스러움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희준을 보내주는 마음이라기보다는, 희준과 계속 만나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죽음을 실감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후로 김희준 시인의 낭독회 한 자리를 맡아 그의 시를 대신 낭독하기도 했고, 희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산문으로 발표하면서 제 나름대로 희준 시인을 사람들과 함께 계속 기억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고요, 이제 안타까움 대신에 계속 그를 만날 수 있도록 생각하고 헤아리는 일이 우선이 된 것 같아요.

 

7. 기억해야 할 시세계

 

이재훈 :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친구 혹은 독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시를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서윤후 : 김희준 시인의 시는 뭐랄까요, 물기가 많고 축축한 감각이 지배적이에요. 저는 그것이 김희준 시인이 세계를 태어나게 하는 문법이라고 읽었는데요. 울음과 태어남을 한 자리로 쓰면서 시인이 어떤 목소리를 터트리고 있는지 주목해보면 무척 흥미로운 듯해요. 전체적으로 목소리가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이 크고요. 잘 정제된 언어라기보다는, 어디선가 솟구쳐 오르는 언어라서 시를 읽는 내내 여러 모양의 에너지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시랄까요. 그래서 단숨에 의미를 읽어내기 어려운 시도 있고, 옆에서 말하듯이 가까운 시도 있어요. ‘들끓음에 대해 오래 생각해볼 수 있는 시집인 듯해요. 끓어오르는 것과 넘쳐흐르는 것, 시인이 품고 있는 세계의 문은 그렇게 열리는 것 같습니다.

 

윤석정 : 이윤설 시인은 발랄한 상상력을 가졌습니다. 그의 발랄함은 톡톡 튀는 시어와 유쾌한 어법에서 나온 리듬, 선명한 이미지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아마 등단 시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불가리아 여인을 읽어보시면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시집의 원고를 읽으며 마음속 깊이 가득찬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 슬픔은 지옥에서 출발할지라도 희망과 행복이 충만한 천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시인은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 지옥은 참 작기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저 세상이 가깝게보인다고도 합니다.(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만남과 이별이 등을 기대고 삶과 죽음이 서로 맞닿아 있듯 그가 감각하는 지옥과 천국은 어쩌면 같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혁 : 발랄한 상상력과 다양한 실험적인 시 쓰기. 금은돌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어서 유고 시집이 나와 독자들이 은돌 시인의 시편들을 읽어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번 좌담을 계기로 조원효 시인으로부터 유고 시집 원고를 받아 읽어보았어요. 은돌 시인의 다양한 시편들을 한꺼번에 읽기는 처음입니다. 그림을 직접 그리는 시인이어서 그런지 시 텍스트의 시각적인 실험들을 다양하게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돌 시인 시에는 아방가르드적인 측면이 있어요. 조원효 시인이 󰡔금은돌의 예술 산책󰡕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은돌 시인은 예술의 유희적 측면을 극대화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살면서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고통, 나아가 죽음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세상은 무심히 계속 돌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폭력과 고통, 죽음이 은폐되어 있는지 그의 시를 읽으면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8. 독자들에게 소개할 시 한 편

 

이재훈 : 시인의 시 중에 가장 애정하는 시 한 편씩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시를 고른 이유나 시에 대한 해설도 간략히 얘기해 주세요.

 

안녕, 낯선 사람

 

김희준

 

 

여긴 여름이야

거긴 어때?

 

여름을 잘 보내란 말은 이 여름

더 이상 만나주지 않겠다는 말

기대를 기대하는 마음과 다가올 계절에게

끝내 다가가고야 마는 감정은

어디서 태어나나요

 

밤이었어요 신열을 앓는 도시와 더위에 희석된 8월

열대야의 단면에선 약속들이 기척 없이 태어나고

나는 무의미한 약속에 의미를 부여하고야 마는

고약한 성질을 가졌지요

 

브로콜리 숲엔 죽지 않는 구관조가 산대요

갓 배운 건 말이 아니라 이름이었대요

날기 전에 태어나는 걸 배운 새처럼

손가락이 생기기 전에 먼저 잡은 손금은

쥘 때마다 운명이 바뀌기도 했대요

 

고가도로에 죽은 새는 누가 치울까

애매해질 바에 그냥 죽어버릴래

미안한데 빈칸 하나 없는 유서를 곧잘 썼거든요

당신을 만날까 했던 빈 마음과

내게만 바쁜 당신의 요일을

손가락 집어가며 헤아려보는 중이었어요

 

숲에는 초록으로 표백된 새들이

백야를 끊임없이 앓았고요

무해한 얼굴을 가진 나무의 표정을 읽느라

답장을 쓰지 못했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착한 일을 모두 하고 나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많은 약속이 있었지만 당신은 떠난 뒤었어요

나는 내가 누군인지

깨닫지 못한 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서윤후 : 김희준 시인과 여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여름에게서 오는 것들이었고, 여름이 가져다주는 풍경이었거든요. 차에서 함께 들었던 백예린의 노래 같은 것도 있었지만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 희준 시인이 우리에게 읽어주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준이 누구였는지 우리는 깨닫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시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도 떠오르고요. 여름이라는 감각을 잘 펼친 작품이, 곧 시인이 살아 있음을 명백하게 느낀 작품이라고 여겨서 고민없이 이 작품을 골랐어요.

 

이 햇빛

 

이윤설

 

 

나에게 닿는 이 햇빛은 얼마나 멀리서 왔는가,

 

이 빛의 실마리 끝을 잡아 리본을 묶어서 다시 놓아 준다

 

햇빛은 처음 시작된 곳으로 되감아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가

 

나는 나의 자리가 없이 떠돌아다녀야했는데,

 

지구의 먼지조차 우주로부터 오는 중이다

 

나는 나의 돌아갈 길이 그렇게 먼 것이

 

그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두고 온 상자의 리본은 끌러보지도 못하였는데,

 

우리는 날아가며

 

내가 놓아준 빛을 우연히 조우할 지도 몰라서

 

저 태양에는 내 묶은 리본 하나가 아주 작게 있을까

 

순간이 걷히어가는 저 먼 거리까지

 

다시 묶어주고 작별인사를 하며

 

나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가 보내 온 성탄엽서 한 장처럼

 

멀리 우주로 팔랑이며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윤석정 : 이 햇빛처럼 지금 이윤설 시인은 지구를 떠나 멀리 우주를 팔랑이며 돌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8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봄호에 게재된 신작시입니다. 당시 계간지가 도착하자마자 목차를 봤는데 반가운 그의 이름이 아주 크게 보였어요. 그의 시 이 햇빛을 단숨에 읽었는데 그에게 받은 성탄엽서처럼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어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금은돌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나는 비를 맞지 않는다 빗방울은 슈퍼마켓 진열대 위에 떨어지고 감자칩 비닐봉지가 나뒹군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그대가 우산을 펼친다 우산은 빗방울을 튕겨내고 그대는 우산 속에 몸을 숨긴다 튕겨나간 빗방울이 거리를 날아다닌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그대 발자국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빗방울이 접혀지며 구두코에 달라붙는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그대는 커피숍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의자에 앉은 빗방울 의자는 물에 젖고 의자는 흘러내리고 의자는 유리창을 바라본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빗방울이 목덜미에 다가와 부딪친다 파고드는 송곳 빗방울은 살갗을 뚫고 핏줄을 베어낸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그대가 기침을 한다 손으로 입을 막고 스위치를 올린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입을 조물거린다 숨을 덜 쉬며 좁은 방에서 날숨을 내뱉는다 김이 차올라 안경이 뿌옇다 제대로 뱉지 못했던 입김이 겨우, 새가 되어 날아간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물 없는 주전자가 끓어오른다 꿈은 잠을 자르고 큰 아이는 달을 찾겠다며 무작정 맨발로 뛰쳐나간다 그대는 오지 않고 나는 안전하다 마중 나가야 할 것인가? 뱃속 아이에게 물어본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다시마를 우린 물이 여전하다 태아의 발길질이 거세지고 배를 쓰다듬는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나는 하품을 한다 후쿠시마에 비가 내리고 아이가 녹아내린다

 

이성혁 : 금은돌 시인 1주기를 맞아 <수유너머104>에서 금은돌 추모 행사를 열었어요. 은돌 시인은 세상을 뜨기 전까지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104>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고맙게도 그곳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던 것이지요. 위의 시는 이 행사에서 낭독된 시입니다. 낭독을 들으면서 강렬한 전율을 느꼈어요. 유고 시집 제목도 바로 이 시의 제목인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가 될 것 같더군요. 이를 보면 이 시에 전율을 느낀 사람이 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9. 유고시집의 의미

 

이재훈 : 장정일 시인은 그의 첫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첫 장에 세상의 시집은 모두 다 유고시집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요절한 시인들은 첫 번째 시집이 유고시집인 경우가 있습니다. 윤동주부터 시작하여 기형도, 진이정도 떠오릅니다. 첫 번째 시집은 아니지만 근래 작고한 박서영, 배영옥 시인의 유고시집도 참 좋은 시집이었습니다. 박서영, 배영옥 시인도 생전 어디에 눈치보지 않고 묵묵히 좋은 시를 썼던 귀한 시인이었습니다. 유고시집이 가진 정체성과 성과와 독자로서의 안타까움 등을 두서없이 말씀해 주세요.

 

이성혁 : 첫 시집을 유고 시집으로 남긴 시인들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가. 말하기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첫 시집만 이 세상에 남겨놓았다는 것은, 시인 개인으로 보면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불행이겠지요. 한창 시를 써나가야 할 때 맞이하게 된 죽음은 어떤 불행과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러나 남겨 놓은 시집 덕분으로 우리는 요절한 시인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시인은 언제나 젊은 시인으로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을 겁니다. 시의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시인의 초심이 담겨 있는 시편들만 이 세상에 남아 있기에 말입니다. 어쩌면 일찍 세상을 뜬 시인에게 어떤 보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가 이 젊은 시인의 이미지로만 이 세상에 남을 수 있다는 것, 이로써 그의 삶 자체가 예술 작품처럼 남아 있게 된다는 것 아닐까 합니다.

 

서윤후 : 고등학교 때 인연이 되었던 트루베르의 고태관 형이 지난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문장이 기록되어 있는 롤링페이퍼를 다시 읽어보았어요. 어떤 언어를 품고 노래하며 시를 써왔을까, 그런 막연한 상상이 필요할 만큼 멀어진 사이였지만요. 그의 시집이 곧 나온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어요. 죽음 앞에서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남겨진 사람은 언어를 두고 간 사람의 몫까지 읽어야 할 것입니다. 쓰기도 할 것이고요. 때를 놓치지 않고 유고시집으로 독자의 기억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출판 현장에서 애써주시는 동료 문인들, 편집자들에게도 왠지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그러나 유고 시집을 부지런히 읽을 일은 없었으면 해요. 세상을 바쁘게 살면서도 준비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리 곁에 있는 동안에는 살아 있다는 인기척을 마주하며, 그렇게 살아요.

 

윤석정 : 서윤후 시인도 언급했듯 작년에 세상을 떠난 고태관의 유고시집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저는 고태관 시인 함께 2007년 트루베르를 결성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기형도, 신기섭, 이연주, 여림, 진이정)들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죽은 시인의 사회> 앨범을 제작했고 2013<봉도의 어느 날> 공연으로 선보였습니다. 시인은 세상을 떠났으나 시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 독자들의 기억 혹은 마음에서 살아있다고 생각했죠. 그 독자의 기억(마음)봉도로 비유된 거랍니다. 지금 고태관 시인은 봉도에 있으리라 봐요. 물론 이윤설 시인, 금은돌 시인, 김희준 시인도요.

 

이재훈 : 오늘 추억하는 세 시인 모두 봉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시인은 떠나도 시인과 함께 나눈 작품과 숨결은 떠나지 않을 겁니다. 시인과의 기억들을 함께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독자들에게도 하늘에 있는 시인들에게도 의미있는 좌담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출처 : <시사사> 2021년 여름호


이재훈 : 1998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벌레 신화. 본지 주간.

이성혁 : 1999문학과창작, 2003대한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저서 불꽃과 트임, 서정시와 실재, 미래의 시를 향하여, 사랑은 왜 가능한가,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본지 편집위원.

윤석정 : 2005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오페라 미용실,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서윤후 : 2009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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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멍때린다는 시쳇말이 있다. 아무생각 없이 멍 하니 오래 있다는 말이다. 멍때리는 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누구나 멍을 때리니까. 멍때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마음이 허하든지, 배가 고파 허하든지, 무기력해서 허하든지. 고통이 극에 달해서 허하든지.

나도 자주 멍때리는 편이다. 깊은 밤 혼자 TV를 무심코 켰다가 멍때릴 때가 있다. 그 프로그램은 아무 때나 켜도 늘 방영된다. 아마 24시간 방영하는 것 같다. 멍때리고 싶을 때는 그 프로를 틀면 된다.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장수하나 보다. 그 프로는 희한한 구석이 있다. 일단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마치 아는 사람이 출연했어? 라고 옆에서 누군가가 물어보기라도 하듯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게 되는 것은 지금 이곳의 결핍 때문은 아닐까. 산골의 원시적인 삶이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사람은 고요를 채우고, 어떤 사람은 자유를 채운다. 어떤 사람은 싸움이 없어 좋고, 어떤 사람은 건강해져서 좋다. 나는 자연인들에게서 공통된 것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고통스러운 세속에서 벗어나 산골을 택했고 그곳에서 상처를 보듬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무욕이 가져다주는 미소가 깃들어 있다. 그것이 다분히 연출된 것이라 해도 도시에서의 파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아파본 사람, 망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삶의 중요한 목록이 있을 것이다. 그 목록이 세상과 절연한 자연인을 통해 투사되는 게 아닐까. 그 프로를 오래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연인들의 사연은 늘 비슷비슷하다. 어쩌면 시청자들에게는 그들의 사연이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그들의 사연과는 무관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둘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늘 어딘가를 꿈꾼다. 꿈은 늘 이곳에 없는 공간을 이상향으로 만든다. 도시에 살면 시골을 꿈꾸고, 시골에 살면 도시를 꿈꾼다. 나도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도시를 꿈꾸었다. 빌딩을 드나들고 지하철 타는 꿈을 꾸었다. 도시의 매연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무궁화호 기차가 서울의 한강철교를 넘어갈 때면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 꿈은 늘 지금 이곳의 결핍을 드러내준다.

꿈꾸는 유토피아가 문학에서는 아주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것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주는 기쁨을 자주 얘기한다. 하지만 자연인처럼 산속에서 혼자 사는 삶은 어떤 부분에서는 형벌에 가깝다. 도피나 유폐와 다름없는 고독한 삶이 행복할 리가 없다. 단순한 기쁨의 저자 아베 피에르 신부는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한다. 피에르는 사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목표, 즉 행복을 추구한다.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시대, 어떤 조건, 어떤 문화 속에서 생활하건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하게 마련이다. 타인들 없이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들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혼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구도가 아니라면 인간은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행복하지 않을까. 타인들과 나누고 실천하는 삶이 인간답게 사는 맛이다. 결국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요즘 나는 농가주택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자주 본다. 세속에서 찾은 유토피아이다. 바닷가 앞에 마당 있는 주택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은 산을 두르고 있는 시골의 작은 집을 보다가 흥분하기도 했다. 이천만 원짜리 농가주택도 있었다. 서울 아파트의 반 평도 안 되는 가격이다. 서울의 집은 못 사더라도 저 집은 살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요원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천만 원이라면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을까.

출처 : www.pckworld.com/article.php?aid=8878899914

Posted by 이재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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