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재훈

 

우리는 그때 김광석을 광석이형이라고 불렀다. 스무 살이 되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짐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갈 데가 없었다. 친구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도 몇 있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자취방에 모여 술이나 마시며 시간을 축내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에는 무협지나 비디오를 빌려보는 게 최고의 재미였다. 자취방에는 비디오기기가 없었기에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할 수 있는 비디오기기까지 빌려주던 시절이었다. 하루 이틀 동안 열편이 넘는 비디오를 보고나면 머리가 아팠다. 대부분 홍콩영화나 헐리우드 액션영화였는데 줄거리나 영화 제목이 겹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 할 일이 없으면 음악을 들었다. 우리에게 김광석의 음악은 마치 우리의 삶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김광석을 듣고 있으면 그때의 일들이 떠올려진다.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다. 라면만 먹어 자주 설사를 했다. 밥은 먹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저마다 학원으로 업소로 공장으로 식당으로 나다녔다. 밤이 되면 두더지처럼 한 사람씩 자취방의 소굴로 기어들어왔다. 모두 지쳐있었다. 아무런 기술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그 외로움은 혼자라는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 속에서 나오는 외로움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심사가 서로 얽혀 마음을 힘들게 했다. 아무런 낙관도 없는 미래의 일들이 눈앞에 뻔히 보였다. 친구들끼리 점점 말수가 줄었다. 무협지를 읽는 일도 비디오를 보는 일도 심드렁해졌다. 그러다 밤이 깊어지면 술을 찾았다. 스무 살은 누구나 술을 물처럼 마실 나이였다. 항상 술이 부족했던 나이였다. 안주는 새우깡이나 생라면 몇 개면 그만이었다. 술을 마시면 김광석을 들었다. 왜 김광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누구도 김광석의 노래를 바꾸라고 한 일은 없었다. 술을 마실 때는 무조건 김광석이어야만 했다. 누구라도 김광석을 틀어놓는 것에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김광석을 들으며 옛 애인을 생각했다. 무료한 날들을 생각했고, 댓가없는 날들을 생각했으며, 사람은 왜 이렇게 외롭게 살아야하는가를 생각했다. 김광석을 들으며 노래가 주는 쓸쓸함을 사랑하게 되었다. 김광석의 노래가 왜 쓸쓸하게 들리는지에 대해서는 서로의 의견들이 달랐다. 그의 목소리 때문이라는 친구도 있었고 그의 노랫말 때문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그의 포크적인 음악성향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느 이유에서건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술을 찾게 되고 쓸쓸해지게 된다는 사실에서는 모두 수긍했다.

나는 김광석의 노래 중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그 노랫말이 꼭 내 얘기 같았다. 실제로 유리창에 이별한 애인의 이름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술을 마시면 꼭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울고 싶을 때 듣는 노래이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가 많다. 남자라는 무의식적 관행 때문에 울음을 많이 참는다. 혼자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세상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할 것만 같다. 또한 세상 모든 일들이 애처롭고 고맙고 미안해지게 되는 노래이다. 김광석은 김목경의 이 노래를 버스에서 듣다가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고 한다. 내가 60대가 되더라도 아직 철이 들지 못한 늙은 어린애일 테지만 이 노래만큼은 아는 척하며 꼰대짓을 하고 싶어진다.

<마루>는 어머니와 슬픔에 관한 시이다. 이 시는 그 시절을 통과해 쓴 시이다. 어쩌면 김광석과 함께한 깊은 밤의 수많은 술추렴이 이 시를 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루


이재훈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_ 출처 : <이럴 땐 쓸쓸해도 돼>(천년의 상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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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창랑포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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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사랑

산문 2017.07.18 17:38

서툰 사랑

 

이재훈

 

 

나는 사랑에 대해 서툴다. 사랑하는 데에는 자격이 없다. 누구든지 사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사랑에 서툴고, 힘들다. 매번 도망다니다가 끝나버린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에게 사랑은 형벌에 가깝다. 그들에게 사랑은 감정적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전해주는 감정적 격동을 이겨내지 못한다. 쉽게 아파하고 쉽게 의심하며 쉽게 좌절하고 쉽게 파탄난다. 사랑이 주는 기쁨과 행복은 짧지만 사랑이 주는 고통은 길다. 긴 고통과 짧은 행복을 맞바꾸어야 하는 사랑의 운명 앞에서 늘 울부짖는 일. 사랑은 그런 일이다. 사랑하는 자는 늘 울부짖는다. 저녁의 쓸쓸함을 아침의 허망함을 오후의 무력함을 모두 사랑의 일로 여긴다. 그런 사랑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있는가. 관념적인 사랑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한데 사랑의 실상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여전히 나는 사랑에 대해서 서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사랑에 서툴지 않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 걸까.

소년의 사랑이라고 말할까. 그녀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옆집에 살았다. 게다가 같은 교회에 다녔다. 그녀가 아침에 밥 먹는 소리까지 들렸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인사도 들을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자연스레 우리는 교회에 모였다. 당시 교회는 공식적인 남녀 모임의 장소였다. 그곳이 우리에게는 유일한 곳이었다. 교회가 아니라면 어디서 여학생들을 볼 수 있었을까. 빵집은 너무 닭살 돋았고, 롤라장은 너무 번잡했으며, 뒷동산은 너무 위태로웠다. 예배당 옆에 지어진 작은 집이 있었다. 누구나 그 집을 교육실이라 불렀다. 실제 많은 교육이 이루어졌다. 교육실에서 돌려가며 기타를 치고, 이문세나 김현식을 들었다. 때론 015B나 푸른하늘, 봄여름가을겨울을 듣기도 했다. 물론 <실로암>과 같은 복음성가도 불렀다. 교회는 인기가 많았다. 절에 다니는 애들도 교회에 왔다. 싸움하는 애들도 교회에 왔다. 노는 여자애들도 노는 남자애들도 왔고, 공부만하는 애들도 왔으며, 대체로 놀다가 간혹 공부도 하는 숨은 날라리들도 왔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린 주모의 역할을 했다. 우는 애들을 달랬고, 보채는 애들을 혼냈으며 까부는 애들을 조용히 시켰다. 우리는 늘 진지했다. 세상에 버려진 십대들의 청춘을 낭만적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매년 교회에서 열리는 문학의 밤은 낭만의 하이라이트였다. 교복에 넥타이를 매고 주찬양과 홍삼트리오를 부를 때면 모든 여학생들이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즈음부터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옆집 친구인 그녀가 옆집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라고 해야겠다. 한밤중이 되면 김희애의 인기가요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놓고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때론 그녀와 손을 잡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내 키가 십 센치만 더 컸더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컸다. 그녀 옆에 서면 늘 까치발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편지를 쓴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우리들 중 거의 대부분이 그녀에게 답장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그녀의 손을 잡아본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 게 우정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편지는 늘 편안했다. 나는 늘 편지에 대고 하소연했다. 십대의 불안함과 고독함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대해. 그리고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그녀의 고마움에 대해.

그녀와의 편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이어졌다. 물론 나만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은 게 아니었다. 내 옆의 친구도 또다른 친구도 그녀와 가끔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때론 서로 편지의 내용에 대해 캐묻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 중 누구도 그녀의 애인은 아니었으니까. 우리들 중 누구도 그녀에게 고백한 적은 없었으니까. 고백으로 인해 점점 복잡해지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아무도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애인을 만든 것일 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들 중 어느 한 사람의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 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모두 같은 생각을 했던 시간들.

그녀는 스무 살이 넘고 스물한 살이 되는 1월의 추운 겨울날, 이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일처럼. 애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변사를 당했다고 한다. 우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죽음의 일 앞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허둥지둥 그녀와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아무도 마음속에서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다. 한동안 서로 연락을 안했으며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갔다.

그때 무언가 선뜻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거라고. 어쩌면 그게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에 대해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막연하지만 무언가 알 것도 같은 그런 어렴풋한 사랑이 잠시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_ <시와 표현>,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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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창랑포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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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ranaim lee 2017.07.22 0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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